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나는 스마트폰에 울리는 알람은 전화 수신 빼고는 전부 다 꺼둔다. 물론, 알람을 켜놔도 대출권유와 피싱 DM을 제외하면 내 스마트폰은 딱히 울리지 않는다는 다소 슬픈 현실이 있긴 하지만, 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알람을 모두 꺼둔다.
사람에게도 하루 안에 사용가능한 배터리가 존재한다. 우리의 뇌는 100%인 상태로 24시간 풀가동되는 무한 동력장치가 아니다. 때문에 집중해야 할 순간에는 다소 연비가 떨어지더라도 배터리를 일정 이상 사용해서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
그리고 집중력에는 관성이라는 것도 있어서 하나의 과제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일로 집중력을 전환하는 데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멀티태스킹도 불가능하다. 두 장면을 동시에 보고 내용과 맥락을 이해하거나, 유명 유투버의 라이브를 틀어두고 글을 읽으며 한꺼번에 정보를 취할 수 없다. 달리 말할 필요가 없는 뇌의 한계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의 알람과 스팸과, 광고, 홍보로부터 우리 스마트폰은 계속 울어댄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되지도 않는 설문조사 기관이라면서 걸려든 전화로 인해 방해를 받으면 내 번호와 정보는 어디에서 얻어냈으며, 아무 때나 막 전화를 해대는 건지 기분부터 나빠진다.
특히나 직접 나에게 의도를 가지고 연락을 주는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가장 최악이다. "박용 씨 맞으시죠? 일정 조정을 해야겠는데요."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괴한에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일정 조정을 해야 한답시고 무작정 전화를 걸어대는 상황을 종종 맞이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쉽사리 연락을 주고받는 지금 이 사회에서 무작정 연락을 하는 행위는 한참 집중해서 철로를 달리고 있는 누군가가 선로를 이탈하게 하는 주범이다. 심지어 연락이 오는 대부분의 사유도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사항으로 연락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나는 업무를 해야 하는 시간에는 업무에 허락된 연락만 주고받고, 그 외에는 알람을 일절 통제한다. 알람에 더불러 앱에 숫자도 (알람 배지)도 뜨지 않게 한다. 스마트폰은 집에 들어와 집중해야 할 때는 화장실에 스마트폰 거치대를 설치해 두고 거기에 둔다. 배터리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신경 안 쓴다. 최근 이런 식으로 몇 개월을 살아봤지만, 동료들에게 연락을 안 받는다고 욕먹은 적도, 볼맨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높은 우선순위가 없는 한. 나 또한 아무에게도 전화하지 않는다. 슬랙으로 DM을 보내놔도 바로 답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재촉하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살아보니, 일상의 작은 소음들이 중요해졌다. 노이즈 켄슬링이 되는 에어팟 덕분에 노래나, 팟캐스트, 유튜브를 틀어두지 않고 여기저기서 가만히 있는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카페에서, 회사에서. 알람이 멈춘 체 소음이 줄어든 세상에서 내 몸에서 나는 진동을 느끼거나, 가만히 서서 줄어든 소음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불현듯 내 앞길을 막는 알람으로 흐트러진 내 집중력은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방해가 될 수 있는 노릇이다. 앞으로 좀 더 능숙해진 디지털 조련사가 되어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고 나에게 중요한 하루를 살고 싶다. 나에게 집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