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은 이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용 Sep 25. 2023

009_냄새

기본의 척도

아침 8시. 집에서 악취가 진동한다. 하수구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다. 싱크대에서, 화장실에서 올라와 내 방을 점령한 이 오묘한 악취는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고, 아침부터 불쾌한 기분에 휩싸이게 한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없이 집을 나와 카페로 향한다. 지옥의 출근길을 겪을 필요가 없는 재택근무제가 빛을 발하는 순간. 나는 내 것도 아닌 승리감으로 추진력을 얻어 스타벅스로 향한다.


그렇게 오전을 지내다 악취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미치 남의 것인 것처럼, 빌려준 돈을 당당하게 받아내지 못하는 소심쟁이처럼.


다행히 악취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잔존한 하수구 냄새를 어서 환기시키고 방바닥 중앙에 누워 낮잠을 청한다. 내 몸에서 무슨 냄새가 날까? 나도 기생충의 송강호처럼 반지하 냄새가 날까?


좋은 냄새가 나고 싶은 사람 보단, 무색 무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디에든 잘 묻어나고, 잘 어울리는 무색한 그런 사람.  나는 누군가에게 절대로 악취가 나는 인간이 되지 않고자 언제나 코를 킁킁거리고 다니지만 정작 향기 나는 인간은 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향기가 난다는 건 뭘까? 결국에 자기 자신을 잘 대한다는 것의 척도이지 않나 싶다. 누군가에게 악취를 풍기지도,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강한 향수 냄새가 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하수구 냄새는 또 언젠가 아침 댓바람부터 나의 코와 머리를 공격할 것이다. 업체를 또 부르던 집주인에게 사정을 하던 해야 할 것이다. 상념에 빠지기 전에 현실을 살아갈 액션을 취하는 것이 나란 인간이 좀 더 나아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는 게 가끔씩 끔찍하리 만큼 의미가 없고, 왜 살고 있는지 모를 때 내 허벅지를 콕콕 찌르는 이쑤시개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런 작은 것들을 치우며 '나는 좁쌀만큼이라도 좋아졌다.'라고 정의 내린다.


그래, 그렇게 악취도 지우고, 향도 지우고, 무난하고 정 붙이기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이 문제를 치워버리기로 했다. 


내일은 좁쌀 두 알만큼만 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008_알람의 대가 代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