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도 문뜩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제는 자존감을 더욱더 키우려고요.
나도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면 어떡하지?
문뜩 드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친구들끼리 미래에 대한 막연한 얘기를 하던 중 '결혼'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요 근래 부쩍 친구 결혼식이 많았다. 직장을 다니며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거나, 사고(?)를 쳐서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었다. 비혼 주의가 만연한 요즘 세상에 친구의 결혼식은 20대 중반인 우리들에게 정말인지 와닿지 않았다.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결혼에 대한 환상과 공포에 대해 친구들 모두 각자의 얘기를 자유롭게 꺼냈다. 그러던 중, 나도 모르게 드는 생각에 말하기가 머뭇거려졌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던데.'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면 어떡하지'
부모 모두에게 못 할 짓(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구석에 있는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가득한 20대 중반 여성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토끼 같은 자식을 낳으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결혼은 현실임을 우리 부모님을 보며 누구보다 뼈저리 깨달았건만 나는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런데 연애를 하다 보면, 가끔씩 그 당시 남자 친구들의 모습이 아빠와 닮아있을 때 문득 불안함을 느낀다.
이 남자도 아빠 같은 사람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 걸까?
실제로 엄마가 이모와 전화로 수다를 떨 던 중, 엄마가 무심코 뱉은 말이 아직도 나에겐 가슴 깊이 남아있다.
"생활력이 없었던 아버지를 만나서 우리 엄마가 더 억세 졌나 싶어.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더니 네 자매들 중 내가 제일 생활력 없는 남자와 결혼했지."
엄마는 그 말이 나에게 '불안'으로 다가올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
'가족'이라는 집단은 한 개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집단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유전의 힘 얼
마나 막강한지는 병원에서 말하는 '가족력'으로 확인할 수 있다. 흔히들 아는 탈모부터 고혈압, 심각하게는 암까지 세대를 거듭해도 똑같이 나타나는 유전의 흔적들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쉽게는 입학식, 졸업식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부모님과 똑 닮은 자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이렇듯, 부모님의 DNA는 우리의 육체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하지만, 문제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듯,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알 수 있고, 혹은 자식을 보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된다고도 한다. 그래서일까. 위인들을 보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라난 것이 많이 부각된다.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이렇게 올바르게 자랄 수 있었을까. '부모님이 제대로 돌봐주지도 못하는 환경에서' 혹은 '저런 부모 밑에서'라는 말이 나오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만큼, 사람이 성장하는 환경의 요인(재산, 친구, 가족, 병력 등등) 중에서도 '부모'는 자녀의 성장에 있어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나는 장시간 동안 폭력에 노출되어있던 가정이었다. 실제로, 2019년,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의 '생애주기별 학대 경험 연구'에 의하면 어렸을 적 부모에게 폭력을 당했거나 목격한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부모가 됐을 때, 자신의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폭력 피해가 전혀 없는 사람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많았다.
아빠가 나쁜 가장이라는 점이, 엄마가 외할머니와 비슷한 팔자라고 신세를 한탄하는 점이. 은연중에 나를 나쁜 길로 인도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씩은 불안감으로 혹은 피해의식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했 듯, 연애를 할 당시, 남자 친구가 아빠와 똑같은 말, 똑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무언가의 행동을 하면 순간 놀랐다. 너무 놀라서 비슷하다기보다 괜히 내가 좀 더 끼여 맞추기 식으로 찝찝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도 보면 오은영 박사님은 결국 부모의 어린 시절을 묻곤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상황에서 성장해왔는지. 나 역시 그 물음에 눈물이 가득 차오른다. 결혼도 하지 않았건만,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주변에 비혼 주의자 언니가 있다. 언니는 자신의 부모와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편인데, 부모의 나쁜 성향들 중 일부가 자신에게도 녹여져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특히, 엄마는 외할머니의 성향을 많이 닮고 있어 악순환을 자기에서 끊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는 절대 낳지 않을 것이라고. 비혼을 선언 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나처럼 피해의식을 느끼고 불안해하기보다 현실을 순응하고 결단을 내리는 모습이 참 멋있다.
그럼에도 나는 언니처럼 비혼을 선언하기보다 반대로, 나의 아이에겐 넘치는 사랑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고 빨리 가정을 이루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겪었던 일을 최대한 아이에게 주지 않을 거야. 어떤 마음인지 잘 알아'라고 자부하면서도 '나도 결국 우리 부모와 똑같은 부모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도 같이 심어져 있다는 것을 애써 모른척해왔다. 그리고 그게 상황에 따라 불쑥불쑥 솟아나고 있었다. 터놓고 말해서, 나 역시도 내 미래 배우자가 이혼 가정에서 자라기보다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이 좋은데, 나 자신은 괜찮은 엄마 혹은 배우자가 될 자질이 있다고 어떻게 자부할 수 있을까.
나의 모순된 마음이 결국 피해의식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누군가에게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생각하기보다 나 자신이 먼저 떳떳해지기 위해 '자존감'을 먼저 키워야 한다는 본질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은 너무 먼 미래이니 너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이면서 말이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타인의 시선으로 생각하게 되고, 나쁜 감정이 뫼비우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며 피해의식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엄마 팔자 닮는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자 그저 푸념일 뿐이고, '가정 폭력에 노출된 경우 대물림 확률이 높다는 것'은 확률이 높을 뿐 모든 사람이 그런 것도 아니다. 은연중에 부모의 사상과 가치관이 나에게 녹여져 있더라도, 내가 내 가치관으로 중심을 잡는다면 잠시 흔들릴 수 있어도 꺾이지 않는다. 내 삶이다.
이러한 고민은 사실 부모에게 못할 짓 이긴 하다. 부모의 인생과 닮을까 봐 걱정하는 자녀라니. 부모의 인생이 반면교사라니 말이다. 나 역시도 아무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혼 가정의 부모가 혹시 읽고 계시다면, 깊게 고민하기보다 '우리 아이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하나의 케이스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아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거야.' 혹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다양한 생각이 오가겠지만 적어도 아이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과 엄연히 다르다는 것 정도는 은연중에 말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는 '너'일 뿐이라고. '너'의 인생이자 '너'의 삶이라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인생, 삶이 아니다. '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