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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길 Dec 10. 2021

가장 약한 생명체

말티즈, 그 약함에 대하여

나는 이 녀석이 야생에서 지내던 시절이 궁금하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놀랍게도 자연 발생한 견종이란다. 다른 수많은 견종처럼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거꾸로 다른 견종의 조상인 경우가 많았다. 기원전부터 로마나 그리스에서 키우던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만 있을 뿐이다. 너무 흔하게 봐오던 견종임에도 정확한 기원을 모른다니 왠지 낯설기도 하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라는 말이 있지만, 체중 2.5kg, 키 20cm의 약하디 약한 이 녀석을 보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물론 몸집이 작아서 약하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쥐나 곤충, 파충류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를 보면 종마다 납득할만한 생존 방식이 있어서, 전혀 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 녀석은 좀 다르다. 

화면 속 호랑이를 보고 짖는 기가 막힌 위험 감지 본능, 강한 상대에게도 절대 굴하지 않는 입질 본능, 수시로 짖어 모두에게 존재를 강렬하게 알리고 마는 당당함까지 온통 생존에 도움이 안 되는 특성들 뿐이다. 분명 야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는 종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도시환경에 잘 적응했다고 하기도 어렵다. 신호등은 전혀 개의치 않고, 언제든 도로로 뛰어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실내를 제외하고선 이 종의 생존능력은 제로에 가깝다. 같은 반려동물인 고양이와 비교해봐도 터무니 없이 낮은 생존능력을 지닌 아주 특이한 종이다. 


상상 속의 몰타섬

 여러 가지 설 중의 하나지만 서식지가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 아래에 위치한 몰타섬이라는 곳인데, 말티즈라는 이름도 몰타라는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말티즈의 생태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닿기 전의 몰타섬을 가보고 싶다.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강한 포식자들 사이에서 지금은 잊어버린 뛰어난 생존능력을 뽐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무리 생활은 개과 동물의 특성이니까, 아마도 무리 생활을 하고 있을 숲 속의 산신령들을 다큐로 찍어내면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작은 늑대

늑대와 개는 유전적으로 99.96% 일치한다. 백인과 황인보다 유전적으로 가깝다. 그러니 늑대의 본능 대부분이 개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하나의 예로, 개들이 주인의 옆에 붙어서 자고 싶어 하는 것도 동굴 속에서 무리와 부대끼며 자던 늑대의 본능이라고 한다.


야생에서 위협은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고, 위협을 효과적으로 써먹었던 늑대의 본능 역시 개에게 전해졌다. 중형견부터는 훨씬 사정이 낫지만, 말티즈 같은 소형견의 위협은 별로 위협적이지 않고 하찮기만 하다. 겁먹기는 커녕 '말티즈는 참지않긔' 같은 밈이나 만들고 앉아있다. 통하지 않으니 점점 더 온 힘을 다해 위협해야 하므로 말티즈 입장에서는 억울할만한 일이다. 말티즈가 참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까...

일본의 공포 만화가 이토 준지가 그린 부모님 댁 몰티즈. 말티즈는 참지않긔..는 글로벌이다. 


늑대의 본능을 품었지만 가장 약한 생명체, 태생적인 약함을 안고 살아가는 소형견들이 오늘따라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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