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밸류어블 Mar 24. 2020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마케터여서 행복했기때문이다

지난 11월 쯤 받은편지함에 쌓인 수많은 메일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월간 리쿠르트에서 온 서면 인터뷰 요청메일이었다. 브런치를 통해 내 글을 읽고 보내준 메일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내 메일함에 쌓이는 메일들은 거의 대부분 쇼핑몰의 세일 정보나 다른 정보성 메일이었다. 하루에도 수십통씩 업무 메일을 받고 답변하고 업무진행사항을 체크하던 지난 세월들에 비해 스트레스 전혀없는 메일들은 오히려 나에게 편안함 대신 무료함을, 업무스트레스 대신 또다른 스트레스를 가져다 주었다.

내가 내가 아닌듯한 스트레스, 무료함이 주는 스트레스, 미래의 내가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


20년을 넘게 회사일과 가사일을 병행하며 워킹맘으로 살아온 나에게 4년간의 미국의 삶은, 남들이 말하는 달콤한 휴식만은 될 수 없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감사한 기회였고 남편과 아들을 위해 잠시 내 일을 내려놓고 오롯이 가정과 교육에 힘쓰고 미국의 문화와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일하는 나를 너무나 사랑했던 나에게, 일하지 않는 나는 마치 생산성 다 떨어진 가치없는 기계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휘날리며 평생 포기하지 못한 하이힐로 자존심을 한층 업해주고 뛰어나와 사무실에 도착하여 경희궁을 바라보며 라테한잔을 마시며 오늘의 할 일을 다이어리에 메모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나. 가끔은 눈물을 쏟을 만큼 상처도 받았고, 때로는 내가 숨을 목구멍 위로만 쉬고 있구나 느끼며 깊은 숨으로 숨 고르기를 할 정도로 바쁘기도 했고, 아이가 아파도 아이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기고 했고, 주말에도 일이 있으면 아이와 놀아주지 못하고 출근을 해야하기도 했다. 경쟁에 치이기도, 남자들의 기에 눌리지 않으려고 천성의 여림을 감추고 쎈 언니 코스프레를 하기도, 누군가에게 지지 않으려고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취업을 하고 20년 넘게 일하던 나는 몰랐던 새로운 미국에서의 일상.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를 깨우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 어지러진 아이방을 치우고 침대를 정리하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이제 아이가 오는 2시반까지 주어지는 자유시간, 아이가 오면 학원이나 봉사활동 등등 라이드하고 저녁 준비하고 정리하면 끝나버리는 하루의 일상. 지루했고 무료했다.


그냥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미래지만 준비해야 한다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보자라고 결심했고 미국에 오면 꼭 해 봐야겠다고 적어놓은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실현해보았다. 영어 공부하기, 책 읽기, 골프 배우기, 여행하기, 맨해튼 골목골목 다니며 트렌드 익히기, 그리고 블로그에 기록 남기기 등등, 그리고 하나가 책 쓰기 였다.

꾸준함이 가장 중요했고, 시작은 어렵지만 한번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확실히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씩 하나씩 시작하여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고 소중하게 계획하며 채워나갔다. 책 쓰기는 쉽지 않아 그저 끄적 끄적 메모해놓는게 다였는데 브런치를 만나 그동안의 메모를 글로 하나하나 완성해나갔다. 그렇게 미국의 삶을 버티게 해 준 것이다.


자기의 직업에 만족하면서 산다는 것, 자기의 일이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 힘들고 그만두고 싶어도 나를 붙들어주는 매력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상황이 변하고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와도 나를 붙들고 다짐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있다는 것, 정말 감사할 일이고 축복이다.


마케터라는 직업

이 직업이 나에게 어떤 부귀 영화를 준 것도 아니다.

그저 나랑 궁합이 잘 맞고 내가 행복하게 일 할 수 있고, 커리어의 공백과 나이의 부담감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천직임을 느끼게 하여 나를 버티게 해주고, 다시 일할 준비를 하게 해 준 것 뿐이다.


일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순간 불행하다.

일은 나의 삶을 채워주고 나의 행복을 만들어주는 '소중한 자산'임을 다짐하며 힘들어도 버티길 바란다.


이런 버팀의 시간속에 나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해주고 나의 글을 멋지게 정리해준 월간 리크루트에 감사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