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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밸류어블 Apr 03. 2020

부끄럽지만, 숫자의 노예

1월 15일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다.

2.5개월 동안 총 20개의 글을 적었다.

20년을 넘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겁 많고 마음 여린 내가 꿋꿋하게 사회생활을 버텨내며 나와 같이 열심히 사회생활하는 여성들에게 힘과 위로가 될 수 있는 글, 셀프 브랜딩 관련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글을 쓴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 더욱 도움이 된다. 상처 받은 마음, 불안한 마음, 혼돈스러운 마음을 글로 적으면서 위로도 받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도 되고 다시 한번 이를 악 물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니까. 그러니 브런치는 내가 언제가 책을 쓰고 싶다는 목표에 한걸음 다가가게 해 준 도구이며, 내 머릿속에 엉켜있는 많은 생각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해 놓을 수 있는 공간이며, 나의 생각에 공감해주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카페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꾸 숫자가 보인다. 아니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일 수도... 얼마 전 구독자가 100명을 돌파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는 글을 열심히 쓰고 있는데, 이제야 100명이 된 건가? 다른 사람들은 몇천 명씩 구독자가 있고 글 하나에도 몇천 개의 하트가 눌러져 있는데, 나는 빨간 하트 하나 받기도 참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글의 주제를 좀 더 인기 있는, 요즘 이슈가 되는 것으로 바꿔야 하나, 내 나이의 글이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글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마음 편히 시작한 의도와 상관없이 자꾸 숫자에 연연하게 되는 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혼돈스러웠다.


블로그도 그랬다.

4년을 넘게 200개 이상을 포스팅했고 지금까지 20만 명이 방문을 했다.

시작한 지는 더 오래되었지만 약 4년 전,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시간이 많아진 나는 그동안 나의 마케팅 및 브랜딩 노하우와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그리고 브런치의 주제와 유사한 셀프 브랜딩 등의 주제로 포스팅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다양한 미국 트렌드를 공유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그저 내가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고 싶었고, 나의 기억들이 사라지는 게 싫어서 남기고 싶었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열심히 찍어놓은 사진들이 폰에서 그저 묻히는 것이 아까웠을 뿐이었다.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며 댓글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웠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으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서 고마웠다. 그런데 또 숫자가 문제다. 자주 파워 블로거들의 인기가 부럽기도 하다. 그 이름 옆에 붙어 있는 숫자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가는 그래프의 상승곡선이 부럽다. 요리 천재, 뷰티 천재, 패션 천재, 세상에 온통 하늘이 주신 재능을 타고 한 천재들이 들끓는 것 같았고 그 안에 너무나 소박한 나의 숫자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SNS는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50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콘텐츠가 그저 개인의 취향이다. 누구처럼 패션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엄청나게 먹어대고 전문가 못지않은 사진 촬영 실력과 정보 공유를 하는 것도, 또 누구처럼 젊음과 미모를 맘껏 뽐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일상에 아무리 해시태그를 열심히 붙여본들 한계가 있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럼에도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팔로워 수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이미 너무나도 많은 시절과 시행착오를 겪고 젊음의 시대를 넘은 나이임에도 이렇게 숫자의 힘에 약해지는 나 자신이 참 씁쓸하다. 내 또래의 사람들은 아예 이런 활동조차 하지 않는다. (내 글들은 읽어본 분들이라면 내가 반백살이 되어가는 나이임을 짐작할 것이다.) 난 분명 이렇게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나이의 압박에 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지금까지 노력해온 세월들을 가치 있게 남기려고 쉬지 않고 있는데, 그걸로 충분한데, 그걸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데, 그것이 분명 나의 작은 목표들이었는데, 그놈의 숫자 때문에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자꾸 나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는 게 화가 난다.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그렇게 아이디어도 넘치고, 열정도 넘치고, 재능도 많고, 거칠 게 없고 대담하고 도전적이다.

하지만 반대로, 분명히 평범한, 혹은 상대적으로 평범하다고 느끼는 나 같은 친구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세상은 유튜버 다이아몬드 버튼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보다 그 콘텐츠를 구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엄청난 숫자로 치장한 탑 오브 더 탑에 있는 사람들보다 하루하루 평범하지만 열심히 가치 있게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 세상은 움직인다.


이 글은 코로나로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지내게 되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나에게, 좀 더 열심히 글을 쓰고 포스팅을 해도 크게 변화되지 않는 숫자에 갑자기 화를 느끼고 있는 어리석은 나에게, 나잇값도 못한다고 질책과 쓴소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나처럼 숫자로 자신을 판단하고 화가 나는 친구들이 있다면 절대 그러지 말라고, 자기 가치는 자기가 만드는 거라고, 나의 소중한 목표와 노력이, 나의 가치가, 온라인상의 숫자로 판단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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