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가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해 계획을 하는 동안 상상을 하고 꿈을 꾸는 가운데 이미 나는 즐거운 상태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런데 그런 여행이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그 누군가가 내가 그토록 함께 하고 싶었던 연인, 혹은 친구였다면?
아마도 ‘설렘’과 ‘기대’라는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이 두 친구는 마치 3살짜리 어린애 마냥 내 안에서 여기저기 발을 구르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또는 친하고 즐거운 사람과 함께 가는 상상만 해도 행복한 동행이다.
누구와 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여행.
그 여행을 아버지와 단 둘이 함께 갔던 기억을 오늘 소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세상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와의 여행을 권하고자 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벌써 4년도 더 지났다.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갔다 온 지가.
지난날 초중고 시절에는 부모님과 여름마다 여행을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군대 제대를 하자마자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갔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는 부모님, 동생을 포함한 가족과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2016년 6월경에 tvn에서 <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을 했었다.
출처: tvn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추성훈, 남희석, 에릭남, 윤박 등이 아버지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일어나는 리얼리티를 그린 프로그램이었다.
10부작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1~2회 정도를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생각보다 다들 아버지와 서먹하고 서로 간에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저 정도로 어려운 관계인가?’
나는 평소 아버지와 대화가 많았던 관계로 tv속 연예인들의 부자지간이 사뭇 생소하게 다가오긴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내가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던가’였다.
‘한 번은 있었겠지.’
‘그래, 한 번은 있었을 거야.’
그렇게 <아버지와 나>를 마지막 회까지 봤고, 상당히 재밌게 본 나는 마음 한편이 짠했고, 무언가 한 대 맞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여러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생긴 원망, 오해, 그리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던 모습들을 보면서 몇십 년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족으로서 함께 해도 모르는 것이 바로 부자지간(父子之間)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얼마나 알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 동안 이 고민을 했다. 아마 며칠은 했던 것 같다.
어쩌다가 한 TV 예능 프로그램 마지막 회를 잘 보고 나서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지 살짝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살면서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라는 생각에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직 너무 많다.
아버지는 2020년에 칠순을 맞이하셨다. 당시(2016년)에 칠순까지 조금 남아있었지만, 나이가 점점 드시면 같이 여행을 못 가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음이 급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고, 어린 시절 나와 좋지 않았던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왜 그러셨을까?
아버지와 중, 고, 대학 시절엔 정말 치열하게 다퉜다. 나와 의견 차이가 너무 컸고,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너무 싫었다.
너무 강력하게 나를 옥죄셨다. 학교 성적이면 성적, 누구를 만나면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애쓰셨다.
여동생에게는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으셨는데, 유독 나에게는 그러셨다.
나에 대해 기대도 너무 많이 하셨고, 그런 만큼 실망도 표현하셨고, 야단과 잔소리가 무척 많으셨다.
갑갑했고 싫었다.
난 늘 대화하며 울먹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그런데 그랬던 아버지가 지금은 그러지 않으신다. 나는 아버지에게 할 말 다하려고 하는 그 기질을 아직 버리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예전처럼 날 대하지 않으신다.
신기했다. 내가 한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아버지는 내 말을 잘 들어주셨고, 웃는 일도 많아지셨다. 이제야 아버지가 나를 인정하시는 건가. 나의 진가를 알아보신 건가. 내가 상당히 옳다는 것을.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예전보다 행동이 조금 느려지셨고, 말의 강함과 톤도 약해지고, 낮아지셨다.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셨다.
나이 듦.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여정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인데,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오신, 그래서 이제는 지치신, 아버지의 다소 수그러든 존재감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