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Feb 05. 2021

당신은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있나요?


여행은 가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해 계획을 하는 동안 상상을 하고 꿈을 꾸는 가운데 이미 나는 즐거운 상태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런데 그런 여행이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그 누군가가 내가 그토록 함께 하고 싶었던 연인, 혹은 친구였다면?

아마도 ‘설렘’과 ‘기대’라는 내 안에서 잠자고 있던 이 두 친구는 마치 3살짜리 어린애 마냥 내 안에서 여기저기 발을 구르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또는 친하고 즐거운 사람과 함께 가는 상상만 해도 행복한 동행이다.


누구와 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여행.

그 여행을 아버지와 단 둘이 함께 갔던 기억을 오늘 소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세상의 자녀들에게 아버지와의 여행을 권하고자 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알게 된 중요한 사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벌써 4년도 더 지났다.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갔다 온 지가.


지난날 초중고 시절에는 부모님과 여름마다 여행을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군대 제대를 하자마자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갔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는 부모님, 동생을 포함한 가족과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2016년 6월경에 tvn에서 <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을 했었다.


출처: tvn

당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추성훈, 남희석, 에릭남, 윤박 등이 아버지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일어나는 리얼리티를 그린 프로그램이었다.

10부작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1~2회 정도를 제외하고는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생각보다 다들 아버지와 서먹하고 서로 간에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저 정도로 어려운 관계인가?’

나는 평소 아버지와 대화가 많았던 관계로 tv속 연예인들의 부자지간이 사뭇 생소하게 다가오긴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내가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던가’였다.

‘한 번은 있었겠지.’

‘그래, 한 번은 있었을 거야.’


그렇게 <아버지와 나>를 마지막 회까지 봤고, 상당히 재밌게 본 나는 마음 한편이 짠했고, 무언가 한 대 맞은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여러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생긴 원망, 오해, 그리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서로에 대해 너무 몰랐던 모습들을 보면서 몇십 년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족으로서 함께 해도 모르는 것이 바로 부자지간(父子之間)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를 얼마나 알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 동안 이 고민을 했다. 아마 며칠은 했던 것 같다.

어쩌다가 한 TV 예능 프로그램 마지막 회를 잘 보고 나서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는지 살짝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살면서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라는 생각에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이 아직 너무 많다.

아버지는 2020년에 칠순을 맞이하셨다. 당시(2016년)에 칠순까지 조금 남아있었지만, 나이가 점점 드시면 같이 여행을 못 가실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음이 급했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고, 어린 시절 나와 좋지 않았던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왜 그러셨을까?

아버지와 중, 고, 대학 시절엔 정말 치열하게 다퉜다. 나와 의견 차이가 너무 컸고,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사라졌으면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너무 싫었다.

너무 강력하게 나를 옥죄셨다. 학교 성적이면 성적, 누구를 만나면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해 본인의 의견을 관철시키고자 애쓰셨다.

여동생에게는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으셨는데, 유독 나에게는 그러셨다.

나에 대해 기대도 너무 많이 하셨고, 그런 만큼 실망도 표현하셨고, 야단과 잔소리가 무척 많으셨다.

갑갑했고 싫었다.

난 늘 대화하며 울먹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그런데 그랬던 아버지가 지금은 그러지 않으신다. 나는 아버지에게 할 말 다하려고 하는 그 기질을 아직 버리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예전처럼 날 대하지 않으신다.

신기했다. 내가 한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아버지는 내 말을 잘 들어주셨고, 웃는 일도 많아지셨다. 이제야 아버지가 나를 인정하시는 건가. 나의 진가를 알아보신 건가. 내가 상당히 옳다는 것을.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예전보다 행동이 조금 느려지셨고, 말의 강함과 톤도 약해지고, 낮아지셨다.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셨다.

나이 듦.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여정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인데,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오신, 그래서 이제는 지치신, 아버지의 다소 수그러든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버지 저에게 뭐라고 하셔도 이젠 어릴 때처럼 울지 않아요. 그러니 예전처럼 말씀하셔도 돼요…’


참 고맙고 좋은 프로그램 덕분에(나에게는 그러했다.) 매 회 끝날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계속 생각해봤다.

‘아버지와의 단 둘이 여행이라니…, 괜찮을까.’



팀장님은 아버지와 여행을 가보셨나요?

아버지와 여행을 가기 위해 휴가를 쓰겠다고 하자 당시 팀장님은 깊은 생각을 하셨다.

‘뭐지 이 사람 휴가 쓴다는 게 좀 별로인 건가?’라는 생각을 할 때쯤,

팀장님은 나에게 말했다.

“넌 참 대단하다. 난 아직까지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데…”


‘하아… 이게 대단한 거였구나… 그렇구나...’ 솔직히 대단한 거라는 생각은 못했으나, 쉽지 않은 것은 알고 있었다.


“팀장님, 음… 더 늦기 전에 두 분이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저도 갑자기 생각이 들어서 결정한 거예요. 꼭 가세요~!”



기다리셨나?

일단, 회사 내 제휴 콘도를 먼저 예약해 두었다. 만약 아버지가 못 가시거나 안 가신다면, 다른 친구를 섭외해야겠지만, 일단 자리잡기 어려웠기에 먼저 신청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7월 0째 주 수, 목, 금 시간 되세요?”

“글쎄, 왜?”

“경주에 콘도 신청한 게 있는데 아버지와 단 둘이 갔으면 해서요.”

“음… 친구랑 가지 왜. 괜찮다 나는”

“그게…. 저…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 간 적이 없어서요. 둘이서 꼭 가보고 싶어요.”

“우리 둘이 여행 간 적이…. 없었나?”

“네”

“아…” 잠깐이었지만, 정적이 흘렀다. 이때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그래, 가자. 아들이 가자고 하는데 가야지~”

이 말을 듣는데 뭔가 큰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기쁨이 밀려왔다.

“감사해요 아버지. 어머니껜 잘 좀 말씀해주세요. 하하”

“그래 알았다. 고맙다. 같이 가자고 해서.”

“고맙긴요 아버지, 제가 많이 늦었죠…”

나도 결심해야 하지만, 아버지도 선뜻 내키지 않으실 수도 있는데, 마음을 맞춰주신 것이다.


가는 날 어머니는 “나는 왜 같이 안 가는 거냐?”라고 하시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어머니, 죄송해요. 아버지와 둘만의 여행을 꼭 한번 가보고 싶었어요. 다음에 같이 가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봐서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와 나

경주까지는 승용차로 이동했다.

아버지께서 운전을 모두 하시겠다는 것을 한사코 말려서 내가 절반을 했다.

아버지는 나와 달리 운전을 좋아하셨다. 운전을 좋아하시는 줄을 몰랐다.

가는 내내 아버지와 나는 회사 이야기, 나의 연애 이야기, 미래에 대한 생각 등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았다. 30대 초부터 독립을 해서 사실 깊은 대화할 일이 많지 않았던 터라 내가 상상했던 대로 아버지와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경주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 불국사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으로 가봤다.

이상했다.

다보탑, 석가탑이 너무 작아졌다. 불국사도 너무 작았다.

그새 축소했나…

“아버지, 여기 규모를 축소했나요? 왜 이렇게 다 왜소해 진거 같죠?”

당연한 질문을 한번 했다.

“네가 컸잖아.”

“아, 그렇죠…” 이런 사소한 대화마저도 나누고 싶었다.


경주에 숙소를 두고 포항도 갔다 왔다.

포항에는 랜드마크인 호미곶에 있는 ‘상생의 손’과 ‘새천년기념관’도 가보았다.


호미곶 상생의 손


새천년기념관에서 바라본 호미곶 광장


아버지는 그때 내가 찍어서 보내드렸던 사진 중 일부를 4년이 넘은 지금까지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뒤늦게 생각해냈다.

아버지의 카톡 배경/ 확대


‘아니 왜 카톡 사진이 그대로지?’,

‘프로필 사진을 바꾸실 줄 모르시…나? 저 사진도 내가 바꿔드린 건 아닌데… 그렇다면?’

‘아버지도 그때가 좋으셨던… 거겠지?


2박 3일이라는 기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 회사 휴가를 써서 그렇지 지금이었으면 더 길게 지내다 왔을 것 같다.

여행기간 동안 아버지는 고집도, 까다로운 식성도,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만 드시고 싶어 하셨다. 좀 더 맛있고, 평소에 잘 안 먹어본 것을 사드리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아들인 내가 먼저 둘만의 여행을 가자고 한 것이 내심 좋으셨을까? 아니면 어색한 마음이셨을까?’

여행 내내 이 생각을 했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여쭤봤다.

“아버지, 괜찮으셨어요?”

“나는 네가 같이 가자고 해서 좋았고, 숙소도, 음식도, 가는 곳도, 안 좋은 게 없었어.”

이런 극찬은 없을 것이다. 말씀이라도 그렇게 해 주신 게 아직도 감사했다.

“다행이에요. 저도 감사하고, 좋았어요~”라고 짧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그 뒤에 ‘너무 늦어서 죄송해요.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 말을 했다가는 이미 눈 앞까지 와 버린 내 뜨거운 감정이 그대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생겨나는 것

나는 가족에 대해서 특히나 부모님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늘 생각했다.

옷이라도 좀 사드리려고 말씀드리면, 옷 많으니 괜찮다고 하시고,

맛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자고 말씀드리면, 그거 안 좋아하니 괜찮다고 하시고,

두 분이서 건강하실 때 여행도 좀 다니시라고 말씀드리면, 당신 두 분은 나이 들어서 굳이 안 가봐도 된다고 하시면서 나보고 아직 젊으니 많이 다녀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평소 딱히 저런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옷도, 맛있는 음식도, 여행도 딱히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니깐.


그런데, 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그것이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그리고 모든 것에 있어서 자녀를 기다리시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집 밖에서 놀고 있는 자녀가 집에 일찍 들어오기를,

커서는 출가한 자녀가 연락을 자주 해주기를,

“저 이렇게 당당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같이 기뻐해 주세요.”라고 말해주기를,


그리고, (못 먹어본) 맛있는 음식점에 (강제로) 함께 가주기를,

(아꼈다가 자녀 본인들 쓰라고 말씀하시지만) 안 입어본 (좋은) 옷 (강제로) 자녀가 사주기를,


그리고... 여행을 같이 가자고 말해주기를…

기 다 리 신 다.




인생에 후회 없는 한 가지

아직 부모님과 함께 해외에 나가보지는 못했다. 나는 여러 군데 다녀봤는데 부모님과 함께 다녀본 적이 없었다.

나만 좋은 데 가서 좋은 음식을 먹었다. 이것도 죄송하다. (물론 부모님 두 분이서는 가까운데 나가보시긴 했다.) 사실 2020년에 유럽으로 나가볼 예정이었는데 코로나가 지금은 아니라고 애써 막았다. 그래 아직 때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시간이 계속 흐른다. 1년이란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두 분이 아직 건강하실 때 함께 나가보고 싶다.

부모님과도 더 함께 보내고 싶은데 맘 같아서는 아버지와 한번 더, 이번엔 해외에 함께 가서 추억을 쌓고 싶다. 시간이 갈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 계실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내 마음의 발은 늘 동동 구르고 있다. 내 눈앞에 계실 때 모습을 더 담고, 느끼고, 바라보고, 대화하고, 뭔가 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조금 조급하게 만든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당히 어렵고, 늘 마음 같지 않은 이상한 관계로 나타나 있다. 뭔~가 어렵다. 어색하다. 희한하게 어머니와 자녀와의 관계와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와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아버지가 보시기에 흡족할 만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또한, 나 자신이 보기에도 만족할 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이런 생각, 좋지 않다는 것은 안다.)

또한,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은 남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인생에 후회 없는 것이 한 가지는 생겼다.

아버지께 함께 단둘이 여행자고 말씀을 드려서 함께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주위에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여행에는 어색하고 힘들어도 막상 함께할 때의 뿌듯함, 감사함, 그리고 마음 깊이 채워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자녀라는 위치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도전을 드리고 싶다.

아버지와의 여행을 통해 당신의 한 번뿐인 인생에 영원히 간직할 기억을 남기시기를…


그리고, 아버지와의 여행에 도전을 권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당신의 소중한 인생에서 앞으로 여러 여행을 다니겠지만, 이 여행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불국사에서 아버지와 나


작가의 이전글 나는 누구와 체스를 두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