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윤서는 집 앞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쳤지만 마음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지난 며칠간 이어진 감정들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가슴 한가운데서 매듭처럼 엉켜 있었다.
왜 나는 돈 얘기만 나오면 이렇게 작아질까.
작게 누르는 듯한 그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집에 도착해 코트를 벗고 소파에 앉자,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켰다.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던 도중, 화면 상단에서 손이 멈췄다.
‘경자코치’라는 계정.
최근 며칠간 계속 눈에 들어오던 그 아이디였다.
이번에는 짧은 릴스 영상이 자동 재생되고 있었다.
잔잔한 배경음악 위로 자막이 천천히 떠올랐다.
“돈 앞에서 불안한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해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윤서는 무심코 화면을 멈추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심장 안쪽을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해석…?”
영상은 이어졌다.
“은행 앱 속 숫자들은 당신을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흐름’을 보여주는 지도일 뿐입니다.”
“돈 공부는 숫자가 아니라 ‘언어’를 배우는 일입니다.”
“당신은 이미 잘하고 있어요.
방향만 잡으면 됩니다.”
18초짜리 영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 한 줄 한 줄이 오래 머물렀다.
그제야 윤서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자신은 ‘돈=평가’라고 믿고 있었다는 걸.
잔고가 적으면 가치가 낮아지는 것처럼 착각했던 걸.
눈을 감았다 뜨자,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어제까지 자신을 짓누르던 감정들—‘부끄러움’, ‘작아짐’, ‘불안’—이 멀찍이 물러난 듯했다.
윤서는 천천히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 펼쳤다.
손은 약간 떨렸지만 펜을 잡고 글을 적기 시작했다.
[오늘의 기록 – 돈의 언어]
숫자는 평가가 아니라 ‘흐름’
나는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배우는 사람
돈 공부 = 해석력 키우기
글자를 적을수록 숨이 조금씩 깊어진다.
글씨는 삐뚤빼뚤했지만, 기록할수록 마음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때 카톡 알림이 울렸다.
지훈이었다.
지훈:
오늘 밤 통화 괜찮아?
우리 지난번 얘기 조금 더 말해보고 싶어.
카톡창을 오래 바라보던 윤서는 천천히 대답을 눌렀다.
윤서:
응. 괜찮아.
나도 말하고 싶은 게 있어.
조금 있다가 연락할게.
이상하게, 가슴이 예전처럼 쪼그라들지 않았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 불안이 자신을 ‘압도’하지는 못했다.
윤서는 다시 노트를 펼쳤다.
→ 돈 앞에서 위축되는 건 ‘나의 문제’가 아니다.
→ 해석력이 생기면 감정은 줄어든다.
펜 끝에서 나오는 문장이 자신을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잠시 후, 그녀는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경자코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당신은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
방향만 잡으면 됩니다.”
오늘.
윤서는 아주 작은 방향 하나를 얻었다.
삶의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돈이 나를 평가한다’는 오해에서
조금은 벗어난 것 같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 따뜻해졌다.
★ 경자코치 메모 ★
〈돈 공부는 숫자가 아니라 ‘언어’를 배우는 일입니다〉
잔고는 ‘평가표’가 아니라 ‘흐름 지도’입니다.
불안은 숫자가 아니라 ‘해석의 부재’에서 옵니다.
지출·잔고·결제 패턴은 모두 “언어”입니다.
숫자를 보며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감정은 자연스럽게 가벼워집니다.
기록은 해석력을 키우는 가장 빠른 루틴입니다.
지출표를 펼친 윤서, 드디어 자신의 ‘돈의 얼굴’을 마주하는데... (5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