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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Oct 11. 2020

개를 위한 미술관

반려견, 미술관에 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와 함께 방문할 수 있는 전시가 진행된다고 해서 몇 달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저번 일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집에는 반려견 해피가 있다. 개와 함께 미술관에 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정말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꼭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편도 1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반려견과 함께 이동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또, 이전에 샀던 이동장도 망가져서 버린 터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새로 이동장을 구매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는 몇 년 전 이동장에 해피를 싣고 버스를 이용하려다가 승차거부당한 이후로 반려견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에 약간 트라우마가 생긴 터라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결국 이번 전시도 혼자 방문하기로 했다.


전시의 제목은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이었다. 그러나 이미 반려견과 함께 미술관까지 이동하는 것 자체부터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잠깐 살았던 독일에서는 대중교통에 개가 이동장 없이 그냥 다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모습이라 이번 일로 씁쓸한 마음이 더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물론 반려견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나 해수욕장 등이 최근 생기고 있지만, 저렇게 큰 맘먹고 가는 장소가 아니면 집 주변에 반려견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 나와서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거의 없다. 생각할수록 참 아쉬운 일이다. 


여하튼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장에는 평일 오후 시간대임에도 반려견과 함께 방문한 관람객들을 꽤 볼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전시관에서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내 뒤로 타박타박하고 지나가는 반려견들의 발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이런 청각적 경험이 너무 좋았다..) 예약 시간을 기다리며 잠시 앉아 대기하고 있던 미술관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미술관 마당에서는 반려견들이 설치물을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미술관 마당에서 반려견과 반려인이 함께 하는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이번 전시에서 개가 적록색맹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진 화분들을 볼 수 있었는데, 원래 노란색과 파란색 조합을 좋아하는 나는 '좋은 색 조합이구나~'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개는 적록색맹으로 빨간색과 녹색을 보지 못하고, 파란색과 노란색을 보기 때문에 이번 전시관 곳곳의 조형물은 이렇게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이를 이용한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는 설치 작품 몇 개와 영상 작품 몇 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특히 나는 <브리더>(데멜자 코이, 2017)라는 영상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맞춤형 애완동물을 디자인하는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인데, 아이패드에서 마치 게임 캐릭터를 고르거나 포토샵에서 사진 보정하듯이 동물의 털을 늘렸다 줄이고, 귀를 길게 늘였다 짧게 줄이고, 눈을 키웠다 줄이는 등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가지 않아도 이미 우리 곁에 있는 많은 반려동물들은 인간의 생활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 이미 품종을 변형한 것이다. 영상에 나온 예로는 화장실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되도록 방광의 크기를 늘린 것이 있었다. 누군가 나와 함께 살자고 나의 신체나 다른 무엇을 바꾸려고 한다면 정말 기분이 나쁠 텐데, 이 영상을 보니 함께 살고 있는 해피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작품은 <순수한 필연>(데이비드 클레어보트, 2016)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업은 디즈니 영화 <정글북>에서 마치 사람이 행동하는 것처럼 노래하고 춤추고 말하며 익살스러웠던 동물 캐릭터들(발루, 바기라, 카아, 코끼리 등)의 모습을 동물 본연의 모습으로 바꾸어 모든 프레임을 손으로 다시 그린 것이라고 한다. 무려 50분짜리 작업이라 모두 다 볼 수 없었지만, 영화 <정글북>에서 내가 좋아했던 캐릭터인 발루를 보기 위해 전시장 안을 헤매며 기다렸다. 사실 나는 <정글북>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고, 발루가 모글리와 노래 부르는 장면은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맞는 말이다. 실제로 곰은 그 누구도 인간처럼 노래 부르거나 춤추지 않을 것이다. 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발루는 힘 뺀 얼굴로 그저 정글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다가 물속에 들어가 아무 말 없이 헤엄을 치고, 다시 돌아다니다가 앉아서 자신의 몸을 긁었다. 이 정도가 되니 왜 굳이 동물 캐릭터를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서 봐야하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어렸을 때 토고와 발토 이야기 들어보았는가? 토고와 발토는"1925년 알래스카 극한의 추위에 전염병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면역혈청을 싣고 밤낮으로 개썰매를 끈 개들"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어느 책에서 이 이야기를 읽고 굉장히 감동받은 것 같은데, 그 결과 초등학교 6학년 학급회장 선거 연설에서 "여러분은 발토를 아십니까? (중략) 제가 여러분의 발토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초등학교 시절 나는 도대체 어떤 아이였던 것인가...) 그러한 나름 추억의 토고와 발토 조형물을 전시장에서 만나게 되어 반가웠는데, 재밌었던 것은 이 작품이 개 사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술관에 방문한 개들도 같이 공감하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사실 이 전시장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설마 없는 거야?' 걱정하며 전시실을 나섰는데, 다행히 전시실 문 바로 옆에 마지막 대망의 작품을 향해 갈 수 있는 또 다른 문이 열려 있었다. 이 작품의 제목은 바로바로 <전령(들)>(김세진, 2019). 최초의 우주 개 '라이카'를 담은 영상 작업이다. 


최초의 우주 개 '라이카'는 나의 눈물 버튼이다. 닉 아바지스가 그린 그래픽 노블 <라이카>가 있는데, 나는 이 책을 서점에서 사고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펼쳐 읽으면서 울었다.. 정말 인간은 왜 이렇게 이기적인 것일까. 그리고 개는 왜 이렇게.... 우주 개를 다룬 또 다른 작업으로는 올해 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EIDF)에서 상영된 <스페이스 독>이 있다. 모스크바의 떠돌이 개 두 마리를 따라가며 과거 우주 개들의 여정을 되짚어가는 이 다큐멘터리는 그래픽 노블 <라이카>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다큐멘터리에는 실제 우주 개들을 찍은 자료 영상들이 등장했는데, 이전까지 내가 '우주 개는 사람처럼 여러 가지 훈련을 받고 우주로 보내진다.'라고만 알고 있었다면, 실제 영상 속 우주 개의 몸에는 관과 선들이 꽂혀 있어서 그 모습을 너무 보기 힘들었다. 


'라이카' 이후의 우주 개들 중에는 지구로 다시 돌아와 자손을 낳은 개들도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우주 개 '라이카'는 애초에 지구로 다시 돌아올 계획이 없었다. 그는 과열 등으로 인해 발사 5시간 정도 후에 죽었다고 한다. '라이카', 원래 이름으로는 '쿠드랴프카(Кудрявка)'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작품 <전령(들)>은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 벽면의 커다란 스크린에서 라이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라이카를 생각하면 너무 슬퍼져서 이런 게 정말 다 무슨 소용이지? 싶다. 개에겐 냉전도, 국가의 명예와 발전, 이익도, 우주 개발도 아무 상관없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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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출처>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 팜플랫, 국립현대미술관, 2020


2020.10.10.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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