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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 Jun 06. 2019

14화 BJ

개인방송 전성시대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은 선망의 대상이다. 말 한마디, 제스처 하나가 유행이 되고 연예인이 걸친 액세서리나 의상은 패션이 된다. 어딜 가나 오빠 부대들이 따라다니고 연예인들은 이리저리 피해 다니기 바쁘다. 하늘의 별 부럽지 않은 그야말로 ‘스타’다. 개중에는 너무 극성맞다 싶을 정도로 스토킹을 하고 심지어 일부 광팬은 정말로 미쳐서 숭배의 대상인 ‘교주님’을 해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사생활 침해는 물론 안전이 위협받는 지경까지 이르자 아무리 공인이라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류의 기사를 본지가 꽤나 오래된 것 같다. 어찌 된 일일까. 요즘 청소년들이 부모들 세대보다 의식이 성숙해진 걸까 아니면 연예인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연예인에 대한 열광과 로망은 갈수록 뜨거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건 아닐까. 중고등학생 장래 희망 중에 1위가 연예인으로 나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객석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의 도약을 꿈꾸는 세대들, 여기에 PC, 모바일과 초고속 인터넷 등 IT 기술도 한몫하였다. 누구나 방송인이 되어 영상을 쏠 수 있는 이용자 참여형 생중계 방송 서비스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아프리카TV, 판도라TV, tv팟 등이 대표적이다. 신종직업인 일명 ‘BJ(Broadcasting Jockey)’들의 탄생이다.


파워블로거나 인강(인기 강사)처럼 이들도 스타 BJ가 되면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린다고 한다. 몸값도 조회 수에 따라 올라간다는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닌가 보다. 중국에서도 수년 전부터 온라인상 유명인사라고 하는 왕홍(网紅) 열풍이 대륙을 휩쓸었다. 왕홍이 소개하는 화장품을 너나없이 따라 바르고 황홍이 구매하는 의상은 다음날이면 동이 난다. 이런 파워를 아는 기업들은 고액의 이적료를 제시하며 유명 왕홍들을 모셔가기에 바쁘다.


근래 가장 핫하게 뜨고 있는 펑티모라는 BJ는 이른바 대학교수 출신 BJ로도 유명하다. 북경사범대학을 나와 대학에서 단기중국어 강좌를 맡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방송에 나와 노래를 불렀는데 본인의 끼를 재발견하고 본격적으로 BJ로 전향하였다고 한다. 외모 못지않은 빼어난 노래 솜씨로 인기가 폭발하였고 그 인기는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자동차광고 CF를 찍고 정식가수로 데뷔하여 음반도 냈다고 한다. 2018년 한해에만 86억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니 조만간 연봉 100억대 스타가 되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다. 이런 성공신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대박을 쫓는 BJ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경쟁이 워낙 치열해지다 보니 별다른 실력이나 재능이 없으면 인기가 시들해지고 억지로라도 이목을 끌기 위해 점차 자극적인 방송을 감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급기야 시청률 상승과 별풍선을 위해서는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게 된다. 술에 취해 사람을 죽이러 간다며 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방송에서 자기 아내에게 손찌검하기도 한다.


음주운전으로 젊은 나이에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한 윤창호 상병의 죽음으로 인해 음주운전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한 BJ가 보란 듯이 음주운전을 해 남친과 함께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을 방송에 올려 공분을 사기도 했다. 나중이야 어찌 됐든 작정하고 노이즈마케팅이라도 감행한 것이고 의도한 바는 십분 달성했다.


또한 남녀 BJ들이 한 아파트에 같이 생활하면서 각자 방송을 하다가 남자 BJ가 여자 BJ를 성폭행하는 것처럼 꾸며 이를 본 시청자들이 줄줄이 112로 신고를 하였다. 그런데 여자 BJ가 피해 진술청취를 위해 여성 경찰관과 함께 다른 방으로 옮겨 단둘이 남게 되자 갑자기 여성 경찰관을 발로 차는 등 폭행을 가해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혔다. 더구나 이 BJ는 전과 9범으로 6개월 전에도 공무집행방해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 처분을 받아 누범 기간 중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결국 구속되었다.


돈이 되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의 행태를 보며 씁쓸함을 느낀다. 팬이 많든 적든 인기가 있건 없건 간에 대중 앞에 서면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져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팬이 많아지고 인기가 오를수록 처신을 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남이 잘되면 시기하고 배 아파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인간 심리 중 하나다. 무난해 보이는 연예인들이 안티와 악성 댓글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하물며 잘못된 언행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딱 맞는 사례가 있다. 리거라는 중국 여성은 우리나라 인구수 가까운 팔로워를 거느린 한때 ‘거물급’ 왕홍이었다. 그런데 개인 방송을 하면서 자신의 개인 아이디를 3,000위안(한화 49만 원가량)에 팔았다고 한다. 3,000위안이면 전자코인으로 30,000 코인인데 이때부터 리거는 네티즌들로부터 ‘리삼만’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그 후로도 그녀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은 계속되었는데 결정적인 사건은 개인 방송 중에 중국의 국가를 장난스럽게 따라 불렀고 이를 항의하는 네티즌과 설전을 벌이기에 이르렀다.


결국 네티즌의 신고로 모든 영상과 계정은 삭제되고 구류 5일 처분까지 받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대중들의 비난을 받게 되면서 기업들로부터 각종 위약금을 포함해 2.6억 위안(한화 424억 원가량)이라는 거액의 채무를 짊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방송 당시 네티즌에게 제대로 사과만 했더라면 이 지경까지는 안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사소한 부주의와 오만함이 빚어낸 참극이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라는 게 노력만 하면 누구든지 부자가 될 수 있는 매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반면에 돈이 된다면 뭐든지 저질러질 수 있는 폭력성도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일탈을 저지른 당사자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선정적, 자극적인 것을 탐닉하고 대리 만족을 느끼며 별풍선을 던져주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는가. 나름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여 이를 충족시켜 주고 그 대가를 가져가는 메커니즘은 여타 상업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자신을 표현할 자유와 이에 동참하는 자유, 따분한 일상에서의 탈출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 해소는 우리 삶에 여유와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고 활기찬 생활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불건전함을 넘어선 일탈과 범죄행위는 남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병들게 한다. 하물며 별풍선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던져주며 방조해서야 되겠는가.


주는 사람이 없다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붉은 악마건 촛불 혁명이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기적을 일구었듯이 BJ 문화도 BJ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이용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고 생각한다. 건전하고 성숙한 ‘1인 방송’이 문화로 정착되어 또 하나의 유익하고 감동을 주는 국민 활력소로 거듭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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