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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경 Mar 09. 2019

02화 체감안전도

우리 동네는 얼마나 안전한가요

안전도 심리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실제 체험을 통해 느낀 것도 중요하지만 체험을 거치지 않고 막연히 불안해하는지 여부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경찰청은 안전도 평가를 할 때 양자를 모두 조사한다. 실제 민원절차를 경험한 주민들을 상대로 조사하는 것이 있는 반면 무작위로 미경험자를 상대로 거주하는 지역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를 묻는다. 전자를 치안고객만족도, 후자를 체감안전도라고 한다.


결과를 놓고 보면 치안고객만족도는 경찰의 노력도에 따라 해 년마다 변동되는 데 반해 체감안전도는 좀처럼 변화가 없다. 통상 시골 지역은 매년 점수가 높게 나오고 대도시로 갈수록 성적이 저조해진다. 시골경찰에게는 행복한 일이지만 도시 경찰은 실컷 고생만 하고 성적은 안 좋으니 억울할 노릇이다. 시골 지역은 큰 사건사고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씩 발생하니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한데 묶어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불공정한 게임이 아닌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실질적 평등일진데,


그런 점에서 인천이라는 지역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세계 최대 도시·국가 비교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서 실시한 ‘2016년 세계 범죄 및 안전도 조사’ 결과에서 인천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1위로 뽑혔다. 더욱이 인천의 안전지수는 90.89로 세계 도시 중에 유일하게 90점대를 득하였는데도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시 인천지방경찰청에서는 이를 입이 마르고 닳도록 떠들어댔다. 전단지도 배포하고 플래카드도 걸고 지역방송으로도 알리고, 하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오히려 갈수록 태산이요 산 넘어 산이다. 한때는 ‘마계인천’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경찰관의 시각에서 보면 인천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종종 발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생을 살해하고 신체 일부를 소지하고 다니던 여중생으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했다. 또한 포대에 든 여인의 사체가 주민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는 산책로 바로 옆에서 발견된다든지 노상에 방치된 캐리어 가방 안에 할머니 사체가 발견된다든지 아무튼 꺼림칙한 사건들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온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가십성이 높고 괴담으로 발전하기도 좋은 소재들이라 언론에서도 꽤나 구미를 당겨 한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인천이 진원지인 양 다시 거론되고 동종 사건이 타 지역에서도 발생했다는 식의 보도 관행으로 인해 좋지 않은 지역 이미지가 전 국민의 뇌리에 각인되는 듯하다.


인천의 예전 중심지이자 번화가였던 구도심이 지금은 시간이 멈춘 듯 정체되고 주민들도 많이 떠나버려 날이 어두워지면 스산한 느낌마저 준다. 서울의 변두리라는 이미지도 너무 강하다. ‘잘되면 In Seoul, 못되면 Out of Seoul’인가. ‘이부망천’이라는 망언을 남긴 정치인의 말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건 특징을 잘 묘사해놓은 한편의 캐리커처를 보는 것 같아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학창시절 배웠던 인천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공산화의 나락으로 떨어지려던 대한민국을 인천상륙작전으로 극적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의 성지가 아니던가. 또한 섬과 다를 바 없는 분단 상태에서 인천은 국제공항과 항만이 모두 위치한 우리나라의 명실상부한 관문이다. 수도권에서도 한 시간이면 바다를 볼 수 있고 먹거리와 풍광이 수려한 섬들이 널려있다. 민족의 성지인 마니산과 고인돌 유적이 분포하는 등 역사적인 가치도 크다. 자연과 더불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있는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은 과하게 디스카운트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이어 더블로 디스카운트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니 ‘헬조선’도 부족해 ‘마계인천’이라는 꼬리표까지 달린 것이 아닐까. 진실은 잘 보이지 않고 선입견은 그만큼 더 무섭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아주고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다. 인천지역도, 인천 경찰도 이제는 억울한 누명을 벗어던지고 본래의 모습으로 반짝이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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