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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늬 Apr 04. 2020

1. 만우절처럼 사라진 나의 입사 기념일

나는 1년 전 4월 1일에, 거짓말처럼 회사원이 됐다.

꽃은 다른 이유로 받았지만 같이 두고 보니 어울린다.






이틀 전 만우절에 썼어야 할 이 글을 오늘 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 오늘은 T.G.I 금요일이고, 둘째. 이틀 연속 자정 가까이까지 야근했기 때문이다. 일주일간 꼬박 빡쳐 있었던 나는 지금 삼 일치 밀린 빨래 돌아가는 소리, 음질 낮은 유튜브의 쳇 베이커 플레이리스트, 잔뜩 기대하고 사 왔건만 맛이 없는 화이트 와인을 벗 삼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푹 익은 포도주처럼 취해서, 발행 버튼을 누르자마자 모든 번뇌를 떠나 곯아떨어질 것이다. 무려 내일 오전 열 한시까지 말이지. 뒤로 가기 버튼 누르지 마시라. 아직(은) 안 취했다.


2019년 4월 1일은 만우절, 장국영의 열여섯 번째 기일, 그리고 대학생 H가 처음으로 회사원이 된 날이다. 이틀 전 점심시간, 야근 확정 판결을 받고 분노의 키보드질을 하고 있던 찰나, 구글 캘린더도 아니고 직장 동료가 귀띔해주어서 알게 된 '나의' 입사 기념일.(심지어 팀을 옮겨서 지금은 '이전' 소속이 되어버린 부서 사람인데, 대체 나도 기억 못 하는 걸 어떻게 기억했나 싶다.) 애걔 이제 1년? 싶을 수 있지만 이틀이나 지난 4월 1일을 굳이 꾸역꾸역 기념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 열심히 살았기 때문이다. 앞에 회사원이 된 날이라고 썼던가. 사실 정확히 말하면 1년 전 4월 1일은 대학생 H가 (대학생이자 동시에) 회사원이 된 날이라고 해야 맞다.


나의 쓸모없음을 부정하고 싶은 절박함, 돈 나갈 구멍은 많은데 들어올 구멍이 없는 집안 사정, 거짓말 같이 찾아온 임원 면접의 기회가 삼위일체로 맞물려 성사된 취업은 고행이 따로 없었다.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아끼던 제자에게 배신당한 예수처럼, 나는 조금 빠른 취업과 동시에 존경했던 교수님들이 적이 되는 무시무시한 경험을 했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긴 했다. 졸업이 1년이나 남았건만 회사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겠다니, 그분들 입장에서는 귀여운 제자가 하루아침에 무대뽀 학칙 브레이커로 변신한 거나 다름없었을 테니까.


그래도 사실 상관없었다.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애정을 갖고 몸담고 있던 매체가 허망하게 사라졌고, 달콤한 자기 연민을 즐길 새도 없이 동생은 고3이 되어버렸다. 핏줄이 무섭다고 집에 돈은 없는데 나를 닮아 꾸는 꿈은 왜 그렇게 비싼지. 나는 어떻게든 그 애를 미술학원에 보내야 했고, 몸담았던 매체의 이름 없이도 내가 쓸모 있는 재원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었다. 미흡하게나마 가진 재주가 있고, 마침 손에 닿는 기회가 있는데 잡을지 말지 망설인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계약상 아르바이트 형태로 시작한 신입사원 생활은 주 4일 자택(강의실) 근무, 주 1일(공강일) 사무실 출근으로 이루어졌다. '계약상 아르바이트'라는 걸 굳이 강조하는 까닭은, 나의 어정쩡한 상황 탓에 계약 형태가 아르바이트였을 뿐 해야 하는 일은 아르바이트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일 사수 옆에 붙어 앉아 메모하고, 따라 읊으며 배워야 하는 사무의 기초적인 요소들을, 나는 원격으로 곧장 실무에 부딪히면서 감과 눈치로 배웠다. (그런데 사실 이때 내가 정상적인 출근을 했더라도 이런 배움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임원 면접에 나를 추천한 사수가 내가 입사한 지 한 달만에 퇴사하셨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입사 후 취업계를 내기까지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일을 배운 것이 오늘날 나의 배짱을 만들어준 것 같다. 텍스트는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서 표정과 손짓, 억양을 함께 들었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피드백도 메신저로 받으면 어찌나 건조하고 잔인하던지. 오프라인에서는 생기지 않을 오해들이 온라인에서는 정말이지 수시로, 숱하게 생겨났다.


여름방학 이후 취업계 제출과 함께 인턴으로 풀타임 출근을 하기 전까지, 어쩌면 팀장님과 우리 팀 선배들은 내가 알아서 나가떨어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기로 매일을 버텼던 것 같다. '교수님과 동기들도 날 아니꼽게 생각하는데, 내 사회생활의 첫 팀원들마저 날 싫어하는군.' 이것은 당연히 근거 없는 나의 피해의식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에서 이 악물고 버티는 법을 배우게 해 준 살아있는 교육(?)이 되었다. 덕분에 정규직 전환 후에는 그 서먹함을 견디지 못하고 팀을 옮겼지만...


하루 세 시간 자는 게 당연했던 대학교 4학년을 보내고, 올해 3월 초 정식으로 학교 : 회사 사이의 양다리를 청산하고 나니 정말 다양한 감정이 차오른다. 주말에는 주간에 학교 수업을 듣느라 다 못한 일을 하는 것이 의무였는데, 학교를 졸업하니 주말을 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부작용이 있다면, 이제는 이 쉼이 낯설고 불안해서 주말에 개인적으로 일할 거리를 만든다.) 그뿐이랴. 급하거나 난이도가 있는 업무 스케줄이 아니고서야 어지간해서는 정시퇴근을 하는 일상도 낯설다. 야근이 특수 해지는 회사생활이라니. 꼭 회사 때문이 아니라, 쉬어도 되는 주말이 있는 삶을 나는 평생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얼마 전에는 팀을 이적한 후 새로 투입된 프로젝트에서 정식 데뷔하는 콘텐츠의 취재를 다녀왔다. 이 글의 맨 앞에 언급한 연일 지속 미드나잇 야근이 이 놈의 기사 때문이었는데. 어제는 가만히 일을 하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게도 '특수한 상황'이 되어버린 야근에 씩씩대는 스스로가 우스워 한참 동안 몸을 배배 꼬았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 불과 한 두 달 전까지 내 일상이었던 루틴도 서는 자리가 바뀌면 이렇게 의미가 달라진다.


술을 먹고 쓴 글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두서도 없고, 그래서 구성이 엉망인 것 같다. 그런데 기-승-전-결 구조에 맞춰서 기깔나게 쓰는 글은 한 달 31일 중 20일 이상 쓰잖아. 오늘은 그냥 멋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 괜찮은 글을 쓰고 싶었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이번 주는 유독 힘든 한 주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던 기사를 털어냈고, 주말이 오고 있으니까. 술을 먹고 마음껏 취해도 괜찮은 날이니까. 아주 잠깐은, 글 한 편 정도 할애하는 정도만큼은, 내가 나를 다독여도 괜찮은 날인 것 같으니까.


이틀 전 무자비한 야근과 함께 사라졌던 입사 1주년 기념일을, 기어이 와인의 힘으로 소환하고 말았다. 내년 4월 1일의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글을 끝내려는 지금 나는 꽤나 취했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부터 1년이 흐른 뒤에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하고, 그곳이 어디건 쓸모 있게 쓰이는 나를 자랑 스러이 여기며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난 몰라. 내일 이 글 지우면 어떡하지. 글쎄, 그건 또 내일의 내가 하지 않을까. 그냥 다 모르겠고 나는 너무 애쓰며 살아온 나에게 수고했다고, 입사 1주년이라는 낯간지러운 명분을 통해서 말해주고 싶다. 용케 잘 버텼어. 오늘도 잘 견뎠구나. 내일도 잘 견디겠지. 내일도, 그다음 날도 오늘만큼만 잘 견디며 나아가자고. 그 누구보다 너를 응원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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