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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n 16. 2022

청금루 주인 성찬경

응암동 물질고아원장의 작업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청금루 주인 성찬경> 展을 다녀왔다. 이 전시를 기록하게 될 줄, 심지어 그게 첫 게시물이 될 줄, 그 때는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청금루'는 어디며 '성찬경'은 또 무엇인지, 사람인 건지, 아무런 정보 없이 무지의 상태로 갔다. (아마 알았어도 안 알아봤을 거 같긴 하다.)

시인의 전시회라니. 처음 들어보는 주제였다. 다들 나와 같은 수준이라 믿고 쓰는 글임을 미리 밝힌다. 앞에서 장황하게 걱정한대로 진입 문턱이 꽤 높으니, 입구에 비치된 안내 책자를 보며 관람하길 추천한다!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성찬경은 문학과 조형 및 공연 예술을 결합한 융복합 예술가로 시인이자 그 시를 낭독하기만 한 게 아니라 '말 예술'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정립하였고 일상의 사물과 교감하며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달하였다고 한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씩 살펴보자!



청금루


이곳이 전시회 이름 속 바로 그 '청금루'이다. '청금루(淸襟樓)'는 문학과 학문에 뜻이 있는 젊은이인 '문청(文靑)'이 모이는 공간으로, 성찬경 작가의 서재이자 창작 공간이다. 이곳에는 독서대도 함께 있는데 성찬경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다. 만들 때, '발분망식 낙이망우(發憤亡食 樂以亡憂)'라는 글도 새겨 넣었는데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먹는 것조차 망각하고 즐거움으로 인해 근심조차 잊어버린다.'라는 뜻으로 학습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논어>에서 나온 말이다.



일자시


'한 글자'로 형성된 시를 성찬경 시인은 '일자시'라고 호명했다. 글자 하나가 시의 제목이며 동시에 내용이 되는 바, 기호를 최소화시키면서 그 사이 여백에서 파생되는 의미의 밀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한 절대적 언어의 전략이다. 위는 일자시 <해>의 주석이다. '해'라는 하나의 일자에서 자음 'ㅎ'은 어떠한 느낌인지, 모음 'ㅐ'는 무엇을 내포하고 있는지와 같이 시적 함의가 어떻게 산출되는지를 나타낸다. 낱말의 각 자음과 모음을 뜯어 살펴본 적이 없던지라 이 시를 읽어본 후, 평소에 곧잘 쓰던 단어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성찬경 작가가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 이런 경험이었을까.

이 외에도 성찬경 작가는 <땀>이나 <재>와 같은 제목이 곧 본문인 시와 <해>처럼 각주를 붙여 그것이 시의 의미 영역이 되게 한 <똥>과 같은 시를 통해 그가 추구한 '밀핵시'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밀핵시'란 시에서 의미의 밀도를 최대한으로 높이려는 시도이고 곧 시를 최소화하는 것을 말한다. '밀핵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요소시'와 '일장일행시'이며 그 궁극의 형태가 '일자시', 혹은 '절대시'이다.



물권시


성찬경 작가를 처음 접해본 내가 느끼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물권시>이다. 환경 보호에 앞장서거나, 앞장서진 못해도 항상 인지하고 살려고 하거나, 비건을 하는 사람들이 느는 요즘, 전시를 보러 오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오래 잡아두는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권시>가 세상으로 나온 97년도 당시 사회는 성찬경 작가가 새롭게 정의한 물권이라는 단어는커녕, 지금이라면 쉽게 이해할 '환경 보호'와 같은 단어도 감히 심각하게 생각지도 못할 때 아닌가.

작가는 일찍이 생태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1980년대 산업화의 발전으로 경제 성장은 이룩하였지만 그 경제 발전이 인류의 축복이 아닌, 그로 인한 환경 파괴는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또한,  동시대 시인들이 생태시를 환경에만 한정하였을 때, 작가는 물질에게까지 생태 의식을 부여하여 확장시켰다. 물질에 생명성을 불어넣은 점이 기존의 생태시와 차별점이었고 그 생태시가 물권시로 전개된다.

그의 '물권'을 실천한 행위는 뒤에 버려진 사물을 이용한 오브제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 하나하나가 슬프고도 파란 많은 밍크의 일대기를 엮는 담시의 장이라고나 할까.
성찬경, <밍크 방한모>, 1998



말 예술


'말 예술'은 새로운 예술 장르로써 '말을 가지고 청중에게 감명을 주려는 행위'로 작가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장르라고 한다. 시, 시조와 같은 운문과 수필, 소설 등 산문을 낭독하면서 연극적인 행위와 가요, 판, 창소리까지 선보였다. 작가는 또한, 몸에 그림을 그리거나 소품을 활용하여 청중과의 교감을 극대화하였다. 위 내용은 그 중 대표작인 <야오씨와의 대화>이다.



물질고아원


'물질고아원' 성찬경 작가의 '물권 의식' 최종 형태라고   있다. 실제로 그는 본인의 집에 버려진 물건들을 이용해 여러 조형 예술품을 만들었다. 작가는 물질을 소중히 지켜야  책무가 인간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사물 속에 숨겨져 있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캐내어 인간의 생명처럼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생명의 흐름을 풍요롭게 하고자 했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의 시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깨진 유리 파편과 쇠붙이들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물질 자체의 본질로써 받아들여지고 자유를 획득한다. 완성품의 모습으로 그들을 사용할 누군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살아있는  독립된 물질로써 생명을 부여받는다. 작가의 눈에는 고철 하나, 쓰레기 하나가 전부 개개의 인격체로 보여진  아닐까 한다.








글을 마무리하며,

사전 조사 및 기본 지식이 미약했던 분야에 첫 글이다 보니 상당 부분이 인용되었고 말매무새도 깔끔하지 않다. 더 늦기 전에 다녀온 전시를 기록하자는 취지로 가볍게 시작했지만 쓰다 보니 이 일을 스스로 '작업'이라고 부르며 어렵게 여기게 되었고 결국 정말 '작업'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 매우 만족스럽지 않고 찝찝하다. 이 감정을 반면교사 삼아 다음 글은 쓰는 동안 즐겁게,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오리. (장담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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