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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l 19. 2022

라이프 사진전 : 더 클래식 컬렉션

역사를 담은 사람들

내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더 이상 따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 게 바로 사진전이다. 알지 못하면, 관심 있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는 회화나 도예와 다르게 사진은 그 자체로 의미를 알기 쉽다. 설명 없이도 많은 말을 해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는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어려웠던 예술의 전반을 잘 알게 되...진 않았지만 즐길 순 있게 되었다. 시발점, 사진이라는 주제의 중심에 있던 여러 전시들 중 하나가 '라이프'이다. 이전에 갔던 <라이프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展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 이번 전시도 방문하게 되었다.








출처 : 뮤지엄209


포토 저널리즘, 결국 '라이프'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포토 저널리즘의 변환점을 매그넘이라고 한다면 포토 저널리즘의 정점을 라이프가 주도하였다. 1,000만 부를 훌쩍 넘는 판매부로 보도 사진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던 라이프는 1990년대 핸드폰의 등장으로 쇠약의 길을 걸었지만 그들이 기록한 사진들은 20세기 역사를 이야기하기에 증명 그 자체로 남았다.


이런 라이프의 사진들을 이번 전시에서 설명하기로는, 어느 화려한 미사여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설명할 수 있거나 충분히 그렇게 여겨져야 하는 것들이라고 하였다. 특히 전시 이름에서 나타낸 '클래식'은 그저 오래되었기 때문에 붙어진 게 아니라, 그 사진들이 지금까지도 얼마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얼마나 많은 걸 깨닫고 상기시키고 되찾게 하는지 보여준다. 앞서 설명한 의미를 농축시켜 담은,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은,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전시 중 인상 깊었던 (썰 풀기 좋은) 몇 개의 사진을 가져와봤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허블. 허블 상수, 허블 망원경 등 그의 이름이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업적이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지를 말해준다. 그의 팽창우주론은 기존에 섀플러가 주장한 '우주의 지름은 약 30만 광년일 것이다.'라는 이론을 반증하였다. 섀플러와의 일화로, 허블은 섀플러에게 편지로 그가 발견한 사실들을 설명하였고 그것을 섀플러는 본인이 지도하던 대학원생에게 전달하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여기 나의 우주를 파괴한 편지가 있네." 가설, 증명, 인정. 섀플러의 세상을 뒤집고 바꾼 이론이 정보로 변동하는 순간이었다.


위의 사진은 1937년 윌슨 천문대에서 후커 망원경의 접안렌즈를 들여다보고 있는 허블의 모습이다.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웅변가이자 그림 그리는 것에 조예가 있으며 베스트셀러의 작가이면서 정치적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있다. 아돌프 히틀러와 윈스터 처칠, 그 둘은 우울증 병력이 있었다는 점까지 꼭 닮았다. 한 시대에 이렇게 비슷한 특징을 가진 유명인이 둘이나 존재했다는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중심으로 전범이, 다른 한 사람은 추앙받는 위인이 되었다는 게 놀라운 사실이다.

아돌프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고 난 후, 1940년 총리가 된 처칠은 영국 의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국가를 위해 바칠 것은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다. 우리는 호된 시련을 앞에 두고 있다. 기나긴 투쟁과 고난의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모든 힘과 우리의 모든 능력을 다해 인류가 저지른 개탄스러운 죄악의 목록 가운데에서도 가장 극악한 폭정과 맞서 싸우겠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로 답할 수 있다. 그것은 승리다."




여기 또 다른,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두 사진이 있다.


왼쪽의 사진은 'The great white hope(위대한 백인의 희망)'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극장 앞에 서있는 무하마드 알리가 주먹을 앞으로 내뻗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위대한 백인의 희망'이라는 영화와 복서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무하마드 알리'이다. <위대한 백인의 희망>은 최초의 헤비급 흑인 복서, '잭 존슨'의 이야기이다. 그 당시의 복싱 영화와 다르게 흑인 복서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1990년대 초 백인 뿐이던 복싱계에서 챔피언을 달성하였던 흑인 복서를 향한 차별과 억압, 그 속에서 굳건히 복싱 생활을 하였던 잭 존슨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세계 권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동시에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섰던 무하마드 알리를 <위대한 백인의 희망>의 제목, 'The great white hope'와 함께 담아냈다는 건, 그 자체로 의미가 충분한 사진이다.


오른쪽의 사진은 1937년, 홍수로 인한 오하이오 강의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루이빌 지역의 사람들을 찍은 것이다. 적십자 구호소에서 나눠주는 구호 물품을 받으러 줄을 선 흑인 남성, 여성, 어린이들의 우울한 표정과 상황과 대조적으로, 뒤에 걸린 큰 선전 광고에서는 '세계 최고의 생활 수준'이라는 슬로건이 걸려있다. 해당 슬로건 밑에는 차에 타고 있는 백인 가족과 강아지, 그리고 '미국식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라는 멘트가 쓰여있어 더욱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라이프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 때는 포토 저널리즘의 정점을 달리게 하였던 종군 사진사들이 많이 활동한 190년대 초중반이 아닐까 싶다.

제2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 전쟁, 걸프전까지 위험한 전쟁의 순간 속에서 사진을 세계에 나르던 종군 사진사들의 역할은 절대 작지 않았다. 방송사와 같은 기관들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그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이제는 그 역할을 일반인들이 휴대폰으로 이어받아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남은 사진과 동영상들은 잡지에서 TV로, TV에서 인터넷으로, 인터넷에서 SNS로 각종 매체를 통해 세계로 전달되어 전쟁의 참혹함과 교훈을 알려주고 있고, '전쟁'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요즘 세대들에게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영화 <국제시장>을 본 사람이라면 알 수도 있을 이 사진. 바로 영화 초반의 배경이었던 '흥남부두 철수 작전' 때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배우 황정민이 연기한 주인공, '덕수'가 아버지와 여동생과 헤어졌던 장소가 이 흥남부두이다.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초입에도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에'라는 가사가 있다. 가사에 나온 대로 눈보라가 휘날리는 한겨울인 12월 중순부터 말에 진행한 작전으로 피난민 10만 명이 대피했던 대대적인 작전이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고 영화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려보니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그 순간, 경교장 마당을 살해의 현장이었던 방 안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 작가가 있던 내부에서는 김구 선생의 시신이 수습되고 있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인 만큼,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비통함과 그동안의 업적에 대한 존경심이 이 사진 한 장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김구 선생에 얽혀있는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자면,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라는 인물은 이미 이전에도 암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세 번째의 시도 끝에 성공한 암살 이후,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곧 감형되었고 그마저도 6.25 전쟁이 발발하자 풀려나 원래의 직업이었던 군인으로 복무했다. 전쟁 때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만 결국 1996년 박기서라는 버스 기사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사망한다. 박기서는 자수 후 가졌던 기자 회견에서 '당연히 처벌되어야 할 사람이나 역사가 그 일을 하지 않으니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안두희를 죽임으로써 역사가 무섭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의 종군 사진가 래리 버로우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항상 양심과 싸웠다. 혹시나 내가 남의 슬픔을 이용하지나 않는가 하고." 사진 <독수리와 소녀>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가 캐빈 카터는 수단의 비참한 상황을 알리려 애썼지만 보도 윤리에 대한 사람들의 비난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캐빈 카터의 이야기는 추후 다른 글에서 자세히 푸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저널리즘과 윤리 사이에서 사진사들은 많은 갈등을 겪고 우리 또한 그들의 사진을 보며 같은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가지 확실한 , 그들이 알리고자  사진들은  구호, 역사, 정의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장의 사진이 시사하는 바가  수밖에 없다. 예술성과 작품성이 도드라지는 사진전들과 다르게 포토 저널리즘의 특성이 강한 사진전의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함축적이기에 부가 설명 없어도 사진 자체가 전부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같은 라이프 사진전이지만 이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기획했던 <라이프 사진전 : 더 라스트 프린트> 展에 비해 이번 전시는 아쉬움이 많았다.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건물 3층에 위치한 'MUSEUM 209'에서 진행되었는데 햇빛이 많이 드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의 커버가 빛이 반사되는 소재라 사진을 온전히 감상하기 어려웠다는 것. 무언가 부족하다 느껴졌던 사진 셀렉부터 후반부에 쏟아지듯 몰아놓은 오디오 가이드까지. 전시 기획력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좋았던 점도 분명히 있었다. 오디오 가이드의 녹음을 성우, 배우, 큐레이터가 아닌 각 사진과 관련된 직업군의 인물들이 맡았다는 점은 ( 기준) 본 적 없던 기획이었다. 녹음에 있어 전문적이지 않고 전달력이 덜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진 속 인물에서만큼은 전문적이고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덕분에 내용이 한껏 풍성하게 느껴졌다.

약간의 실망이 있었지만 다음 라이프 사진전은  어디서 열릴지, 어떻게 기획될지 늘 기대된다. 라이프 사진전으로 타이틀이 같기 때문에 비교하기 용이. 도장 깨기 하듯 다녀봐도 재밌을  같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번에도 겨우 힘겹게 끝낸 것 같은 느낌인데 앞으로 더 바빠질 날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다. 두어 달 정도 뒤에 내 브런치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해진다. (멈춰있으려나...) 과연 퇴근 후, 그 빽빽한 스케줄을 다 소화해가며 시험도 준비하고 2주에 한번 글을 기재할 수 있을 것인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Alex Prager, Big West> 展은 포기한지 오래... 다음 글은 <안드레아스 거스키> 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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