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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Aug 02. 2022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전

현대 사진의 거장의 국내 최초 개인전

2연속 사진전 후기라니. 심지어 이 다음에 예정된 게시물도 사진전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사진전 처돌이인가 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무서워지는 건, 나중에 회화를 다루게 될 때, 내 모자란 지식이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거...? 조용히 잠수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에 방문하였던 <안드레아스 거스키> 展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내에 있는 APMA에서 개최된, 국내 첫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개인전이다. 특히 이번 개인전이 주목되는 이유는 코로나 상황 이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스트레이프>와 <얼음 위를 걷는 사람들>이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터 그의 신작까지 함께 얘기를 나눠보자.








출처 : 아모레퍼시믹 미술관(APMA) 홈페이지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독일 태생의 사진가로, 거시적인 관점으로 수평, 수직적 요소를 강조한 특징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사실 처음부터 이러한 사진 기법만을 특정하게 고집했던 것은 아니고 1990년대 이후부터 컴퓨터를 활용한 편집 기술을 통해 극대화되었다.

그는 고해상도 위성 사진을 이용한다거나 그러한 사진들을 의도적으로 조합, 편집하는 방식을 통해 현대 사회나, 군집, 피사체를 거대하게 담으려고 하면서도 그 안에 세미한 개별의 인간, 사물들까지 쉽게 조명할 수 있게끔 한다. 이러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 기법은 초규모 사진전이라는 인화, 전시 방법과 합쳐져 작가가 사진을 통해 묘사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두드러진다.



<클라우젠파스>, 1984


초기 작품 <클라우젠파스>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초단이다. 원거리 시점을 활용해 거대 세계와 인간 간의 관계를 어떻게 탐구할 수 있을지 발견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사진을 찍은 후, 우연찮게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완벽한 별자리'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방향성이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왼) <파리, 몽파르나스>, 1993 & (오) <크루즈>, 2020


왼쪽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대표작인 <파리, 몽파르나스>이다. '몽파르나스'는 실제 프랑스 파리의 지명으로 실제 몽파르나스의 한 아파트를 찍고 편집한 것이다. 그 당시의 기술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규모의 사진을 작가는 디지털 편집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냈다. 건물 건너편에서 몇 개의 이미지로 나눠 촬영한 다음, 이미지를 조합하였다. 또한, 사진의 소실점을 제거하여 모든 창문의 크기가 일정하게 보이도록 연출하여 더욱 한 번에 찍은 듯한 느낌을 준다. 마냥 거대하기만 한 이 작품에서의 다른 관전 포인트는 건물의 창을 통해 보이는 건물 내부의 디테일에 있다. 격자 무늬의 똑같은 창문들이지만 그 안의 각기 다른 디테일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개인의 삶의 증거와 다양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역설적이게 거시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적인 작품의 특징은 추후 소개되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른쪽의 <크루즈>는 <파리, 몽파르나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비슷한 촬영 및 편집 기술이 사용되었다. 여객선 '노르웨이 블리스'를 여러 단계에 걸쳐 촬영한 후 조합하여 새로이 '노르웨이 랩소디'라 명명하였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중앙 상단에 'NORWEGIAN RHAPSODY'라고 적혀있다.) 랩소디는 '관능적이면서 내용이나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적인 기악곡'이라는 뜻인데, 촬영한 사진을 자유롭게 조합하여 관능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과 잘 어울리는 명칭인 것 같다. <파리, 몽파르나스>와 마찬가지로, 창문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는 전체와 세부의 연결성을 강조하고, 동시에 각각의 창문들은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서사적 요소로 자리한다고 설명된다.


위에 설명한 특징들을 보면 알겠지만,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은 뒷짐 지고 스쳐 지나가듯 볼 수 없다. 아쉬움이 남는다. 멀리서 한번, 가까이서 한 번은 봐야 비로소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어렴풋 알 수 있다. 멀리 떨어져 볼 때는 작품의 크기와 끝없이 이어지는 반복적이어 보이는 사진들에 경외감이, 가까이 살펴볼 때는 반대로 작은 세밀함에 존경심이 든다. 느끼는 모든 감상이 곧 그가 말하고 싶어하던 바일 것이다.



<평양 VI>, 2017


회화든, 사진이든 작가의 주관적인 이념이나 생각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순간,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려워진다. 누군가는 불편해 하기 마련. 그러한 관점에서 이 <평양 VI>이라는 작품은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개인적 견해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최대 규모 행사인 아리랑 축제 중 매스 게임의 장면을 촬영한 사진이지만 '평양'이나 '공산주의 체제'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거대한 인간 군집이 자아내는 예술적인 모습만이 담겼다.



(왼) <99센트>, 1999 (리마스터 2009) & (오) <아마존>, 2016


또 다른,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대표작인 <99센트>는 2009년에 리마스터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99센트샵(99 cents only stores)의 내부를 찍은 모습으로 기존의 필름 사진을 디지털 편집하여 심도와 채도를 더했다고 한다. 상품 진열대의 가로선과 천장의 가로 조명들이 평행하게 이어져 있어 중간에 있는 건물의 기둥들과 함께 수직, 수평적인 그리드를 형성하고 있다. 후방에 진열된 상품들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높은 위치에서 조망하듯 찍혔다. 이는 사진 속 끝없이 늘어진 상품들을 통해 값싸고 많이, 빠르게 소비되는 문화를 비판하는 느낌도 들게 한다.


<아마존>은 <99센트>와 마찬가지로 소비지상주의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실제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를 촬영한 이 작품은, 압도적인 크기의 사진과 반비례하게 빼곡히 작게 들어찬 선반 속 상품들로 하여금 되려 크기보다는 작은 디테일에 기가 눌리는 듯한 기분도 들게 한다. 이 작품 또한 각각의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 합성 방식을 통해 하나로 조합하였다.



(왼) <바레인 I>, 2005 & (오) <스트레이프>, 2021


가장 인상 깊었던 <바레인 I>과 <스트레이프>는 서로 비슷한 편집 기법을 사용하였다.


우선, <바레인 I>은 2005년 바레인에서 열린 F1  경기장의 트랙을 헬리콥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트랙이 유난히 휘어져 보이는 이유는 작가가 다양한 각도로 촬영하여 편집하였기 때문인데, 불규칙하게 늘어져있는 검은 도로와 대비되는 미색의 사막이 마치 사진이 아닌 추상화를 연상케 한다. 다각도의 사진을 인위적으로 조합한 사진이기에 원근법이 덜 드러나, 평면적인 느낌이 강조되어 더욱 그림처럼 보여진다. 의미적으로는 아스팔트 도로와 F1 경주 차량, 그것들의 연료, 사막 국가의 부유함 모두 석유에서 비롯되었음을 은유적으로 전달함 또한 있다고 한다.


<스트레이프>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스키 코스 중 하나로 <바레인 I>과 동일하게 원근법이 무시되어 경사진 활강로의 굴곡을 평면적으로 보여준다. 코스를 이루는 하얀 눈과 짙은 숲의 대조적인 구성으로 추상적인 느낌이 강조된다. 이번 전시에서 최초 공개되는 작품 중 하나인데 코로나로 어디를 쉽게 못 놀러갔던 지난 2년인 만큼 이런 나무, 눈, 산과 같은 자연적 요소(아이러니 하게도 인위적으로 만든 스키장이긴 하다.)가 있는 사진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디지털 편집을 통해 물체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을, 직관이 해체된 그림처럼 풀어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강렬한 색을 담지 않은 풍경 사진임에도 작위적이고 뒤틀린 느낌을 주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카타르>, 2012


'거대'라는 단어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작품, <카타르>이다. 사진의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촬영 기법 내에서 거시적인 관점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카타르의 정기 수송선 안에 있는 가스 탱크가 세척을 위해 비워진 모습인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진 하단 중심부의 바로 왼쪽에 있는 인물이다. 반투명한 텐트 안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촬영하여 가스 탱크는 한껏 크게, 인간은 한껏 작게 보이게 하여 마치 그 크기에 당연하게 굴복한 느낌 마저 준다. 카타르의 부유함이 그려지는 황금빛의 내부와 대조되는, 발전하는 산업과 환경 속에서 왜소해진 인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기도 하다.



(왼) <무제 I>, 1993 & (오) <무제 III>, 1996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주로 원거리에서 사진을 촬영했다는 것을 지금껏 소개한 사진들을 통해 이미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그런 촬영 기법만을 사용했느냐 하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위 사진들이 있다. 왼쪽의 <무제 I>은 뒤셀도르프 미술관에서 촬영한 카펫의 일부이고 그 옆의 <무제 III>은 자갈이 깔린 길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춰진 모습을 밤에 촬영한 사진이다. 어느 특별할 것 없는 장소와 사물을 찍음으로써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어떤 장소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가 아니라 우리가 지나다니며 흔하게 밟았을 수도 있는 무작위의 어딘가를 담고 싶었다고 하였다.


의도치 않더라도 피사체는 작가의 생각이나 메세지가 담기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사진이 숭고하고 진중해질 수는 있으나 어렵고 복잡해진다. 그러나 철저히 '아무거나'만을 생각하고 촬영하게 된다면 가볍게 사진을 대할 수 있으며 되려 색다르게 사진을 관찰하는 관점이 뚫릴 수도 있다. 더군다나 디지털 편집 기술을 사용해 세밀한 작업을 이어왔던, 심지어 거대한 대상이 주였던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이러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마치 밥만 먹던 사람이 먹은 빵은 유독 맛있어 보이는 것처럼.) 본래 의미보다 크게 느껴진다.



<얼음 위를 걷는 사람>, 2021


최초로 공개되는 또 다른 작품인, <얼음 위를 걷는 사람>. 2021년도 작인 것(실제 촬영은 2020년이다.)과 사람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모습으로 알 수 있듯, 코로나 시대를 반영한 사진이다. 이 작품도 작가가 편집을 통해 만들어낸 것인데, 이상하리만큼 정해진 간격으로 떨어진 것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얼마나 인위적인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이겨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비춰지며 녹아가는 눈은 겨울과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이중적으로 표현한다. 추가로, 이 작품은 <라인강 III>의 장면을 바라보는 지점의 반대편 풍경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라인강 III> 또한 가뭄으로 인한 환경 변화를 뚜렷하게 담은 작품으로, 이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시대를 기록하고 대변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전시 관람이 다 끝난 후, 여유를 찾고 둘러보니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내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 곳은 미술관 어디를 찍어도 자체가 그리드가 된다. 수평, 수직적 구조가 두드러지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과 어울리는 공간이다.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것으로 워낙 유명한 아모레퍼시픽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근래 이렇게 감각적인 미술관은 처음이라 그런지 혼자 안 갔으면 옆 사람 붙들고 소리 지를 정도로 좋았다. 진작 안 와본 내가 후회스러울 만큼.


이왕 얘기가 나온 만큼, 아모레퍼시픽 본사에 대해 조금 주절대보겠다! 유현준 교수가 말하길, 우리나라는 도시에 머무를 공간이 없다고 하였다. 공원이나 벤치가 없어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의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공원을 늘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른 제안으로 '건물 1층을 공공장소로 만들자.'가 있는데, 물론 이 또한 결코 쉽지 않다. 금전적인 이득을 생각하면 어려울 수 밖에.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무려 1층부터 3층(새로 준비 중인 듯하지만 출입에 제한이 있을 거 같진 않다.)까지 아무나 들어와서 쉴 수 있는 곳으로 쓰이고 있다. 내가 전시를 보러 갔던 날도 더위를 피하러 손에 커피, 음료, 아이스크림을 들고 들어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중앙에 있는, 동그란 인포메이션 데스크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공항에 온 듯한 기분도 든다. 꽤 넓은데다 '한옥 같은 사옥'이라는 서경배 회장의 요청대로 만들어진 중정 같은 건물의 중심부는 당연 최고다. 가운데 채광이 훤히 들어 개방감이 든다. 내가 다니는 회사가 여기였음 좋겠다는 망상을 했다. 건축 이야기는 말이 또 길어지니 다음으로 미루고 이만 줄이겠다.


다시, 안드레아스 거스키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번 전시는 국내 첫 개인전이라는 것에 매우 의미가 있다. 소제목 그대로 그는 현대 사진의 거장이기에, 그의 작품을 실제로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값어치 있는 전시이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한때 가장 비싼 사진을 찍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라인강 II>은 201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3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지금은 만 레이의 <앵그르의 바이올린>이 지난 달 1240만 달러, 즉 한화 160억에 판매되어 기록이 깨졌지만, 여전히 최고 경매가로는 Top 10 안에 든다. 이런 현시대 사진 분야의 최고 권위 작가가 살아생전 개최하는 전시회이니, 사진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가야 후회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해보겠다.


더불어, 사전 정보가 아무것도 없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의 자금력과 기획력을 꼭 말하고 싶었다. 모든 작품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빠짐 없이 알찼던 오디오 가이드는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작품은 그 하나의 단위가 몇 cm가 아니라 몇 m로 세어야 할 정도로 사이즈가 엄청난데 그 크기를 품는 공간의 규모과 어색함 없이 잇는 구성이 있기에 방해 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외에 이렇게 진행할 수 있는 전시장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싶었다. 참고로 나는 APMA 측으로부터 아무것도 제공 받지 않았다. (이거 맞죠? 저 잘했나요, 아모레?) 아무튼 주접 떨 정도로 추천한다는 말이다. 이번 전시 이후에 열릴 다른 전시들도 벌써부터 기대된다. 아, 맞다. 방문하실 분들은 교환한 티켓 버리지 마시고 'APMA GUIDE' 어플을 미리 다운로드 받고 가시길!








글을 마무리하며,

나만의 2주 단위 글 발행 미션도 4번째를 맞아 어느덧 2개월에 접어들었다. 사실 조금 밀려 거의 두달 하고도 반 정도가 지났다. 늘 나만의 마감일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다. 하지만 원래 영감이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게 아니라 마감이 만들어주는 것. 여유롭게 쓰게 된다면 하염없이 미루다 질만 낮은 글이 될 수도 있다. (핑계다.) 이제는 소재가 떨어지는 또 다른 위기가 생기려 하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로 남았다. 없는 시간 쥐어짜내어 수업료를 써제끼러 다녀야 할 것 같다. 아님 던져준 아이디어대로 K-POP에 대해서도 다루게 될 지도... 언젠간 커밍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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