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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영 Jul 14. 2022

끝까지 해 낼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시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는 하모니카를 불었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속기를 배우고, 전화 일본어를 시작했다. 회사 방송반 사람들과 볼링과 포켓볼을 치러 다녔고, 인터넷 게임도 그때 배웠다. 정기적으로 회사 동기들에게 내가 쓴 글을 보내주는 메일링도 했었다. 자전거를 배웠고, 항공권 발권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친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했고, 다시 일본어를 공부했다. 회사를 쉬는 동안에는 삼국지를 읽었고, 업무 자격증을 취득했다. 몇 해 전에는 블로그를 시작했고, 책을 읽었으며, 기타를 배웠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플루트를 배우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나열한 것들 중에서 지금까지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몇 개나 될까? 수영과 자전거, 플루트 그리고 자격증 공부이다. 여기에 가끔씩 하는 것들을 더한다면 글쓰기와 블로그일 것이다.      


속기를 그만두고는 그 자판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아서였다. 당시 나에게는 꽤나 고가였던 그 자판을 무언가를 이루지도 못한 채 버린다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 이후로도 하다가 그만둔 것들은 늘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러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왜 내가 나를 실패자로 낙인찍고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재미없어서 읽다가 그만둔 책들, 공부하려고 사두었던 교재들, 남들이 하니까 시작했던 시간관리 다이어리, 교습소를 다닌 지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방치되었던 기타, 다이어트를 위해 샀던 선식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언젠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일본어 교재를 버리고, 다 읽지 못하고 꽂아둔 책을 버렸다. 선식들을 버리고 기타를 중고사이트에 올려 팔았다.      


이제 나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시도해 본 용기 있는 사람이었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이었다. 시작해 보았던 일들 덕분에 사람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진짜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것들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무엇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해 낼 필요는 없다. 잘 해낼 필요도 없다. 시작한 그 자체로도 용기였고, 경험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시작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시작해보자. 어쩌면 그 일이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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