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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다움 Apr 03. 2024

미국 엄마가 아이를 설득하는 방법

민폐와 교육 그 어느사이.....

미군부대 소아과 외래에서 근무하며 가장 힘든 점을 꼽으라면 예방접종 주사를 줄 때다. 2달~1년 사이 아이들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는 아이를 보는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면 되니 난이도는 '최하'다. 

18개월~24개월 아이들은 말을 하긴 하지만 부모가 대화를 시도해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대화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미국 부모라도 2살까지는 아이를 붙잡아줘서 난이도는 ''에 속한다.


문제는 4살부터다. 궁금한 게 많아지는 만큼 말도 많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시기에 있는 4살, 특히 남자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뛰어놀아 그런지 다리힘이 장난 아니다. 4살까지는 허벅지에 근육주사를 주기 때문에 잘못하면 여기저기 빵빵 차일 수 있으므로 방심했다가는 내 몸에 멍이들 수도 있다. 


거기에 토론과 설득에 능한 미국엄마들의 설명이 시작되면 30분 이상 아이를 설득하므로 4살 이상의 아이+부모의 설득=난이도 '극상'이다.


오늘 첫 환자는 난이도 극상의 4살 남자아이였다.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며 만나자마자 스파이더맨 스티커로 기분을 끌어올렸다. 마침 스파이더맨 광팬이었던 아이는 말도 잘하고 시키는 대로 잘 따랐다.


의사 선생님의 진료가 끝나고 내가 4살에 꼭 맞아야 하는 필수접종만 남겨둔 상태에서 귀엽던 꼬맹이는 돌변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고 바지를 꼭 붙잡고 온 방을 휘저으며 도망 다녔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붙들지 않았다. 대신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이: 싫어, 안 맞을 거야

엄마: 아들아, 엄마는 네가 얼마나 두려운 상태인지 알아. 그러니 숨을 크게 내쉬고 엄마 눈을 봐. 너 아프고 싶지 않지? 친구 잭이랑 바깥에서 뛰어놀고 싶지?

아이: 응

엄마: 그러면 주사를 맞아야 해. 잭도 주사를 맞고 왔거든. 그런데 너만 주사를 안 맞으면 잭이 너 때문에 아플 수 있기 때문에 너랑 놀 수 없게 돼.

아이: 그래도 주사는 아파

엄마: 자, 이거 봐(아이 손바닥을 살짝 꼬집으며) 딱 이만큼만 아플 거야. 너도 엄마를 꼬집어봐.

.......


30분이 넘는 기다림과 설득 끝에 아이가 마음을 돌리는 듯했으나 가망이 영 없어 보였다. 이때쯤 되면 내가 슬슬 개입하며 압력을 가해야 끝이 난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열심히 아이를 설득하는 엄마옆에 다가가, 아이에게 다시 한번 '스티커를 주겠다. 주사를 맞으면 스파이더맨처럼 강한 남자가 되는 거야' 하는 운을 띄운다.


방관만 하던 간호사가 옆에 가면 엄마는 슬슬 강제로 아이를 눕히기 시작한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엄마의 허락을 구한 후 내 다리 사이에 아이 다리를 끼고 바람이 휙휙 2번 불면 상황은 종료된다.

순화된 상태의 방

다음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간호사의 입장에서 보면 속 터질 일이지만 어릴 때부터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훈련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속은 샘만 타들어갈게, 너희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 잘하는 아이들로 쑥쑥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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