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동네에서 뺏으면 좀 미안했어요. 어차피 워낙 못사는 동네라, 뺏어봤자 돈이 얼마 없는 애들이거든요
Q. 그럼 그때는 미안함 정말 없으셨어요? = 전혀 없었습니다. 더 뺏고 다녔어요.
Q. 왜요? = 죄책감... 저는 화장실이 밖에 있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뭔가, 생계. 내가 이걸 안 하면 굶어 죽겠다, 큰일 나겠다 이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Q. 부모님이며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게 참 쉽지 않아요. 주눅 들고 열등감 느낄 때도 있고.
= 제가 지금 35살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설날, 추석에 큰집에 가본 적이 없어요. 왜냐면 저만 미워하는 거예요 친척들이.
제가 지금은 이렇게 사진작가도 하지만, 27살까지 배달만 했어요. 아무것도 해본 게 없어요. 대학교도 안 나왔어요. 사고만 치고, 경찰서 들락날락하고 그렇게 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친척집 가면 맨날 혼내는 거예요 저를. 모든 어른들이. 저희 부모님도 저를 미워했어요. 내놓은 자식이라고.
Q. 한참 사고 칠 때 불안함이나 조급함 같은 건 없으셨어요?
= 저는 배달할 때, 거짓말 1도 안 보태고, 매달 500만 원 이상 벌었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12시 정도까지 계속 배달하니까, 하루에 3~40 벌 때도 있고. 조금 쉬엄쉬엄 하면 15~20만 원 벌고.
통장에 계속 돈이 쌓이고 있으니까 무섭지는 않았어요.
그러다가 한 27살쯤 귀인이라고 해야 하나? 어떤 실장님을 만났는데, 사진 하시는 분인데 저한테 “너 언제까지 배달할래?” 묻길래, “전 사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이거 하는데, 기회만 있으면 저도 다른 거 해보고 싶다” 했더니, 사진 좀 배워 보라고 하더라구요.
Q. 어디서 알게 된 분인데요?
= 그냥 소개였어요. 술자리 같은 데서 만났어요. 좀 연락하고 지내다가, 제가 이상하게 살고 있으니까.
Q. 술 많이 드셨었어요?
= 저는 술 안 마셔요 한 모금도.
Q. 그럼 이상하게 산다는 게 어떤 거예요?
= 나쁜 짓을 좀 많이 했어요. 범죄. 경찰서 간 일도 좀...
Q. 진짜요? 그런데 술은 왜 안 드셨었어요?
= 몸에서 아예 안 받아요. 그래서 핑계 댈 수가 없어요. 내가 어렸을 때 사고 친 모든 것들은 내 의지였던 거예요. 술 먹고 사고 쳤다고 핑계를 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 창피했어요.
Q. 술 안 마시고도 사고를 많이 치신 거예요?
= 네 술 안 마시고도 가능하죠. 그리고 어렸을 때 만났던 사장님들이 나쁜 일 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그랬죠.
그런데 저는 그걸 후회 한 번도 안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후회 한 번도 안 했구요. 부모님도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그러시는데, 전 말해도 상관없어요.
Q. 아, 다시, 한참 막살다가 27살에 귀인 만나셨다는 이야기요
= 그 형이 요새 얼마 버냐고 묻길래, “4~500 정도 벌어요” 했더니. “내가 한 달에 200만 원 챙겨줄 테니까, 나한테 와서 같이 살면서 일 좀 도와줘” 그래요.
그랬는데 사실 전 좀 싫었어요. 200만 원 싫었어요. 배달하면 더 벌 수 있으니까.
혼자 고민도 많이 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다. 내가 뭐 언제 또 저런 일을 돈 받고 배울 수 있을까 싶어서, 가서 배워봤죠 사진을. 그 형네 집 가서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가끔씩 같이 하고, 촬영 나가면 촬영 따라가서 배우고. 아 사진 이렇게 하는 거구나.
Q. 참 예상치 못한 길이었네요?
= 네 이렇게 됐습니다. 인생 어떻게 될지 정말 몰라요.
Q. 미리 걱정할 필요 없었네요. 이렇게 살고 계실 줄 누가 알았겠어요.
= 아빠는 진짜 놀랍대요. 제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게.
Q. 막살던 시절이 있으셨을 거라 생각도 못했어요.
= 그래요? 제가 외모로 봤을 때도 손님분들이 착하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Q. 아까 제 취업 하소연 들어주실 때 워낙 긍정적이시고, 마인드가 건강하시다고 느꼈었는데... 어떻게 보면, 산전수전 겪어봤기 때문일까요?
=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죽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소년원 갈 뻔했거든요. 거의 문턱까지 갔는데, 부모님이 법원 가서 무릎 꿇고 난리 났었어요. 사죄한다고 드러누우시고. 다행히 소년원은 안 가고 보호감찰 받으면서 한 1년 정도 지냈어요. 그때 어딜 다니지 못했어요. 제가 어디 있는지 다 나왔거든요.
Q.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사셨던 거예요? = 친구들하고 놀고 싶잖아요. 친구들이랑 어디 같이 놀러가고, 여름에 바닷가 가고 해야 돼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집이 되게 많이 가난했어요. 엄청 많이 가난했어요. 아 그 정도로 가난하다고? 말이 나올 정도로 가난했어요. 집인데 화장실이 밖에 있어요. 그 정도였으니까. 용돈 받고 싶은데 안 주잖아요. 없대요 항상. 용돈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나가서 애들 돈 뺏고 그러고 살았죠. 그런데 그게 한두 번이어야죠. 몇 번을 걸리니까 법원에서도 얘 안 된다고 본 거죠. 소년원 갈 뻔했는데, 부모님도 사정사정하시고 저도 뉘우치겠다면서 빌었죠. 그래서 보호감찰로 빠졌어요.
그러다가 스무 살 되자마자 친구들 막 어디 대학교 간대요. 나는 어디 가나? 생각하다가 군대나 빨리 갔다오자 하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갔어요. 어차피 갈 데가 없으니까...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 일도 겪고 이런저런 일도 겪다 보니까 만나왔던 사람들이 다 별로겠죠? 군대 전역하고 나서는 또 이상한 사장님들 만나서 밤일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렸을 때 전과 기록이 있는데..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싶어서 그래도 정직하게만 살자 해서 다시 배달로 빠졌죠. 결혼하고 나서는 이제 사람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Q. 참 다사다난한 인생이었네요. 그런데 궁금한 게, 아까 학창 시절에 친구들 돈 뺏으셨다고.. 그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 혹시..
= 모르는 사람 돈을 뺏었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뺏으면 좀 미안했어요. 어차피 워낙 못사는 동네라, 돈을 뺏어봤자 돈이 얼마 없는 애들이거든요. 2~3,000원 나오는 애들이에요.
그래서 저희 동네 말고 삼성역이나 강남역 이런 곳. 좀 잘살고, 모르는 동네 가서 돈 뺏었어요. 친구가 처음에 삼성 코엑스 가서 뺏자 그랬는데, 한번 뺏었는데 15만 원 정도 나오는 거예요. 아 여기다. 그래서 전 항상 서초 경찰서로 불려갔어요. “엄마 나 경찰서야” 전화하면, 엄마는 묻지도 않고 서초 경찰서로 바로 오셨을 정도로.
Q. 그런데 돈 뺏을 때 혹시 폭력 쓰고 그러셨으면
= 많이 때리지는 않았어요. 돈을 쉽게 안 주면 가끔 때리긴 했는데. (아 제가 이런 말까지 하네요) 돈을 안 주려고 하면. 저는 잘 못 때려요. 저도 약한 친구에 속한 편이었어요. 같이 놀던 친구들이 대신 때렸죠. 너네 학교 일짱 나와 봐 이러면서 싸우면서 놀고 그러던 친구들.
Q. 그럼 그때는 미안함 정말 없으셨어요?
= 전혀 없었습니다. 더 뺏고 다녔어요.
Q. 왜요?
= 내가 돈이 없으니까. 놀고 싶은데. 오토바이도 사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데 집에서는 돈 달라고 해봤자 어차피 안 나오고.
Q. 그때는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크셨던 거예요?
= 그쵸.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리고,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거 나도 갖고 싶고. 그래야 나도 어울릴 수 있고.
Q. 그럼 그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든 적은 없으세요?
= 그 친구들 얼굴 기억도 잘 안 나요. 경찰에서 잡히고 뭐 어디 법원 가고 그럴 때도 그 친구들한테 미안한 게 아니라, 나 자신한테 화가 많이 났죠. 초범일 때는 아씨 왜 걸렸지, 어떻게 해야 안 걸리지 이 생각했어요. 다음에 어떻게 하면 안 걸리지 이 생각이나 했죠.
좀 정신 좀 차렸을 때는, 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왜 여기에 앉아있을까? 부모님 얼굴 어떻게 보지? 부모님한테 미안하다. 그랬죠.
잠깐 번쩍 했을 때가 있는데. 부모님이 원래는 경찰서 오시면 저를 엄청 때렸어요. 전화해서 아빠 저 경찰서예요. 이러면 저는 맞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데, 저한테 안 오셔요. 그냥 저를 보면서 울고 계신 거예요. 그때, 딱, 내가 잘못하고 있나 보구나 느꼈죠.
평소랑 달리 저를 안 때리시는 거예요. 왜 안 때리지? 집에 가서 때리려나? 이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아빠 우는 모습을 보는데.. 아빠도 울고, 엄마도 울고. 원래 같았으면 아빠는 저 때리면서 엄마는 말리고 그래야 하는데, 제 옆에 오지도 않으시고 멀리서 울고만 계시고.
Q. 그게 몇 살 때예요? = 그게 고3 때였어요. 고등학교 졸업을 어떻게 했나 기억도 잘 안 나요. 직업학교 같은 데 다녔거든요. 일반 고등학교가 아니고. 거긴 교복도 없었습니다.
Q. 처음부터 직업학교 가신 거예요?
= 아뇨. 처음에는 인문계 갔다가 거기서 사고를 너무 많이 치니까. 선생님들이 엄마 아빠 오라고 하시더니, 뭘 했나 봐요. 그래서 학교 전학 가라 그래서 갔죠.
Q. 괴롭힌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진짜로 없으셨었어요? 그 심리가 궁금해서
= 저는 때리거나 막 못살게 굴지 않았어요. 돈만 뺏었어요. 사실 그게 못되게 군 거긴 한데, 중고등학교 다녔을 때 같은 학교 친구들 있잖아요? 그중에 좀 약한 친구들이 저를 나이 먹고 만났을 때도 되게 살갑게 했어요. “너 덕분에 그래도 다른 애들한테 안 맞았다.” 제 친구들은 괴롭히고 때리고 하는데 제가 “야 하지 마. 우리한테 돈도 주는데 때리지는 말자.” 이렇게 말렸죠.
Q. 그래도 친구들이 때리는 거 보면
= 무조건 말렸습니다. 무조건. 아니, 그렇잖아요. 우리한테 용돈 주듯이 돈도 주는데 왜 괴롭히냐고. 차라리 돈 안 주는 애 때리라고.
Q. 그럼 고3 때 부모님 우시는 거 보고는...
= 그때 이후로 경찰서는 안 갔습니다. 아 법적으로 문제 되는 일은 하지 말자. 이렇게 했는데.
문제는, 군대 다녀와서 성인이 된 후에 하는 직접 자체가 불법이었던 거죠. 사장님들하고 같이 밤에 문 잠가놓고.
Q. 네? 그 사장님들은 또 어쩌다가 만나셨어요?
= 그냥 인터넷에서 알바 찾고 있는데 페이가 좀 쎄길래. 일반적인 건 아닌 것 같긴 한데 일단 가보니까 업소 이런 곳.
저보고 면접을 보래요. 아가씨들을 뽑으래요. 원래 젊은 애들이 뽑아야 잘 뽑힌다고.
어떻게 뽑아요? 했더니 뽑는 거에 대한 커미션 받고, 월급 따로 받고. 그랬죠.
그런데 정말 조심하셔야 됩니다. 피팅 모델, 바텐더 구합니다. 이렇게 공고 올려놓고 꼬시는 거예요. 정말 조심하셔야 돼요.
Q. 그럼 거기 오는 분들은..
= 되게 평범하고, 되게 착한 학생들. 스무 살짜리도 있고. 아무것도 몰라요.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냥 바텐더로 대화만. 바텐더인데 스킨십 없다고, 전혀 접촉할 일이 없다고 써놔요. 그런 거 보고 와요. 시급 8천 원 1만 원 주니까. 당시 시급 4천 원일 때니까 두 배죠. 그런 식으로 꼬시는 거예요 그쪽으로 빠지게끔.
Q. 그런 일을 몇 년 하셨어요?
= 2년 정도 했습니다. 그 사장님 같은 경우에는 사실 저번 주에도 만났어요. 지금은 다 접고, 학원 차렸어요. 신기하죠? 그런 일 하던 사람이 학원을 차렸어요. 학원 네 개 있어요.
Q. 그 사장님은 업종을 왜 바꾸셨대요?
= 벌금 너무 많아서. 나라에서 규제가 너무 많이 들어온대요. 스트레스 받는다고.
Q. 그럼 작가님은 그 일은 어떻게 그만두셨어요?
= 2년 정도 하다가, 무서웠어요. 또 경찰서 갈까 봐.
그리고 제가 꼬셔서 일을 시작하게 만든 여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에 한 명이 저한테 나가면서 한 마디 하더라구요. “오빠 때문에 내 인생이 뭔가 잘못돼가고 있는 것 같아”. 그때, 와 씨,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싶더라구요.
Q. 그런데 그 일로 유인한다는 게...
= 너무 쉬운 거예요. 일단, 나를 안 무서워 해요. 웃으면서 혹시 담배 피세요? 묻고. 핀다고 하면, 같이 피면서 얘기해요. 담배 피면서 면접 보고. 저를 편하게 생각했나 봐요.
Q. 그때도 혹시 죄책감 안 느끼셨어요?
= 죄책감... 저는 제가 살면서 사실, 화장실이 밖에 있을 정도로 가난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뭔가, 생계. 내가 이걸 안 하면 굶어 죽겠다, 큰일 나겠다 이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군대 갔는데 엄마 아빠 면회 한 번도 안 왔습니다. 거의 그렇게 살았습니다.
상대방을 걱정할 수가 없어요. 나 사는 게 급급하니까. 그것까지 생각하면 제가 더 힘들어요.
물론 부모님을 미워하진 않았어요. 부모님도 항상 일에 치여계셨어요. 전화 가끔 해서 엄마 바쁘지? 아빠 바쁘죠? 그러면 늘 자고 계셨어요. 새벽에 일찍 나가서 일하시니까. 전 부모님이 밉지 않아요. 다 이해해요. 아빠가 지금도 막노동이라고 하죠. 노가다를 하세요 지금도. 연세가 엄청 많으신데.
Q. 지금 부모님 뵈면
= 지금은 되게 마음 아프고 짠하고, 제가 도와드리고 싶고 하죠. 그런데 부모님들도 제가 와이프랑 찾아 뵙고 이런저런 얘기하면, 옛날 얘기하면서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세요. 자식을 낳기만 했지, 뭔가 교육이나... 이런 걸 신경을 못 써줬다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그럼 저는 “아 됐어 뭘 미안해, 나이가 이제 35살이야 그런 얘기 하지 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