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님말고 Apr 10. 2019

상하이에서. #4 (완결)

지구는 둥그니까.

19.03.17 -19



"이번엔 왜 이렇게 말이 없어?"


첼시가 물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재즈바에 와서도 입을 닫은 채 공연에 집중하고 있었다. 


    "말? 무슨 말?"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어디부터 말해야 할까. 수준 떨어지는 시나리오를 몇 편 썼고, 수준이 더더욱 떨어지는 단편 영화를 하나 찍었다? 가끔은 이 모든 과정이 결국 깔끔하게 포기하는 순간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어 겁이 난다? 아니면, 두 번의 이별을 겪었고 그 중 하나는 정말 지저분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괜찮다 싶으면 슬픔이 밀려오는 까닭에 이젠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이걸 또 말해야 한단 말이야? 나 자신도 지겨울 만큼 징징댔던 이 이야기를, 또?

    "그냥... 걸었어. 되게되게 많이. 걷고. 글 쓰고. 영화 보고."

첼시에게 이렇게 방어막을 친 적이 있었나.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작년엔 정말 많이도 걸어 다녔다. 삶이 벅차서 마냥 걸었다. 가끔은 큰 소리로 흥얼거리며 걷지만, 엉엉 울면서 걷는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발걸음들에 담긴 사연을 굳이 설명하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었다. 나의 대답을 이해하려 애쓰는 첼시를 앞에 두고, 나는 한술 더 떠서 대화의 말머리를 돌려버렸다.

    


"너는? 너는 요즘 어떤데?"


그녀는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고 했다. 마음이 정리됐다 싶어 다른 사람을 사귀면 자꾸만 전 사람이 그리워지는 탓에 조금 복잡한 단계를 거쳤다고 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정리했지만, 아니나다를까 마음은 제멋대로 날뛰는 까닭에 지쳐 쓰러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또다시 입을 닫았다. 내가 겪은 일들과 비슷한 점들이 있었지만, 그 맘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오락가락하는 내 맘을 단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 지 반년이 넘었는데, 전혀 생각도 안 났었는데, 왜 어느 날 갑자기 길바닥에 쓰러져서 목이 터지게 울어야 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이전 사람에게도 미안하고 현재 사람에게도 미안했다. 언제나 죄책감과 미안함만 그득한 게 내 맘이었다. 

우리가 친해진 건 똑같은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인 걸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아니, 기분이 나빴다. 나와 첼시는 똑같은 인간들이었다. 똑같이 외롭고, 똑같이 헤매는 인간. 언제나 미안해하면서도 달라질 기미가 없는 족속들. 그래서 우리는 힘들 때면 서로를 찾았던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홍콩에 갔을 때는 맘고생이 심할 때였다. 정확히는 맘고생이 심할 때에 표를 샀다. 그런데 마음이 워낙 천방지축 미쳐 날뛰다 보니 출국할 무렵에는 말끔히 나아져 버려서, 내가 왜 왔는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출국하는 순간까지도 상태가 그다지 호전되지 않아서, 연결고리가 쉽게 보였다. 도저히 나를 속일 수가 없었다. 나는 외로워서 상하이행 표를 끊은 것이었다. 사귄 일도 없지만 헤어질 일도 없는 편리한 관계. 이 아이를 만나고 싶으면서도 만나기 싫었던 건,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였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다. 



"근데 너..."


알아야겠다 이제는.

    
    "너... 이름이 뭐야? 광둥어 이름."

잉람체. 너무나도 생소한 발음. 내겐 첼시만큼 예쁜 이름이 아니었지만, 이게 이 아이였다. 나에게는 첼시지만, 그녀는 한국의 지인들에게는 '챌시'일 것이고, 홍콩에서는 '잉람체'일 것이다. '첼시'는 우리의 시간, 몇 년 주기로 주어지는 그 밤에만 잠시 생겨날 뿐이다. 인정해야 한다. '첼시'는 없다. 

영화 속에서는 세상의 모든 화살표가 같은 곳을 가리키는 순간 마법이 벌어지곤 한다. 천 년에 한 번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한 줄로 정렬하면 차원의 문이 열린다거나. 나는 첼시와의 인연을 그런 것으로 생각했었다. 일정한 주기로 하룻밤씩 주어지는 인연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우연은 찾아오는 것이지,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홍콩에서, 상하이에서 우리는 서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쩌면 그때부터일 것이다. '첼시'는 없다. 

무대에서는 90세가 넘은 노인들로 구성된 재즈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색소폰을 부는 모습이 무척이나 벅차 보였다. 하지만 색소포니스트니까 계속 분다. 다른 방법이 없다. 

나도 계속 걷거나, 계속 울어야 할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앞으로도 첼시를 찾을 수는 없다. 그건 미성숙한 짓이야. 

마시던 김렛 잔을 들어 건배를 청했다.

첼시와의 마지막 밤이었다. 



에필로그: 이륙


엔진소리가 온몸으로 들렸다. 200개가 넘는 삶들을 짊어지고 날아오를 소리였다. 나도 이 소리에 들려서 상하이를 떠날 것이다. 5일 사이에 확실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쨌든 당장 무얼 할지는 알게 됐다.

전화기를 꺼내서 첼시의 번호를 지웠다. 잘 지내라고 문자를 남기려다 말았다. 아이메시지로 연락하던 사인데, 마침 안드로이드로 옮기게 됐기 때문에 어차피 답장이 와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첼시와의 만남은 매번 로맨틱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녈 사랑한 적이 없었다. 다만 첼시는 나에게도 영화 같은 인연이 있다는, 그래서 언젠가는 내 짝을 찾아 영화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잃지 않게 해주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건 없다. '내 짝'이란 건 영영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만난다 해도 마냥 아름답진 않겠지. 그저 앞으로도 계속 걸어야 한다. 노래하면서 걷고, 훌쩍이면서 걷고. 걷고, 글 쓰고, 영화 보고.

땅에 비친 비행기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글자 그대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아래엔 수평선이 가득히 뻗어있었다. 양 끝이 굽어있었다.

지구는 둥글었다. 언제나 그랬다. 다만 멀리, 높이 있을 때에만 보이는 것이라서 나는 그 사실을 자주 잊었을 뿐이었다.



유럽 여행기를 연재 중입니다. 브런치가 아니라 메일로 직접 보내드려요. 신청은 여기서.
작가의 이전글 상하이에서.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