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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벌머니 박타 Apr 03. 2023

EP3. 기꺼이 겪는 성장통

영화 머니볼을 보고 난 후 고등학교 시절 회상


중학교 때 내신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때 입학시험 성적이 부진했음에도 심화반으로 올라갔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터라 남들은 선행학습을 할 때 나는 중3 겨울방학을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던 나에게 바로 한 학년 선배인 형에게 조언을 구했다.


“너 모의고사 볼 때 모르는 건 어떻게 하고 있어?”
“그래도 성적은 받아야 하니 찍고 있죠.”
형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더니
“네가 정말 성적을 올리고 싶으면 다음부터 모르는 건 그냥 빈칸으로 해서 내봐!”
라는 조언을 하고 이내 헤어졌다.


그렇게 다음 모의고사를 치를 때 나는 심각한 갈등에 빠졌다. ‘찍으면 미약하나마 점수가 올라가 심화반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있을 텐데, 내가 빈칸으로 낸다면 심화반에서 떠나야 할 수도 있다.’ 형의 조언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정작 내 가슴은 다른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나는 3년이라는 세월 동안 내가 무엇이 부족한 지 모른 채 그저 허울 좋은 심화반에 계속 머무를 수 있었지만 역대급 불수능 앞에 처참하게 깨질 수밖에 없었다. 심화반, 사람들의 평판의 유혹에 빠져 난 그렇게 평생 헤어 나오지 못할 후회의 늪에 빠져버렸다.


 갑자기 우울한 고등학교 이야기를 왜 꺼내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그저 “머니볼”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그때 당시 나를 되돌아보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와서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지독한 열등감에 시달렸었다. 중학교 때의 승리에 취해 고등학교 나의 실력을 냉철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나. 그때 당시 빌리 빈 단장 같았던 선배가 해줬던 조언을 들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조금 더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아트 하우 감독 같은 사람이었다. 빌리빈 단장이 해티버그를 1루수에 올리라 했는데 아트 하우 감독은 그동안 1루수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페냐를 계속해서 올렸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가 두려웠던 감독은 기존에 자신이 써왔던 방법을 고수할 수밖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빌리빈 단장은 페냐와 지암비를 다 이적시켜 버림으로써 기존의 대안을 제거해 버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를 통해 볼 때 유혹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유혹 자체를 제거해 버리고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마지막에 레드삭스 구단주가 빌리빈 단장을 스카우트하려는 과정에서 오래된 틀을 깨려면 아픔이 따른다고 이야기하며 기존의 팀을 해체하고 재조직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당시 125억이라는 거액의 연봉을 제안하며 유혹했지만 빌리빈 단장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남기로 결심한다. 훗날 사업을 하고 싶은 나로서 ‘다른 큰 기업이 우리 회사를 거액에 인수한다고 할 때 나는 내 회사가 더욱더 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믿고 끝까지 밀고 갈 뚝심이 있을까?’ 돈은 그저 상징에 불과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누구나 때가 되면 애들 게임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그게 언젠지는 알 수 없다.”는 스카우터의 말을 듣고 스탠퍼드 대학교 4년 장학금을 포기하면서까지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빌리빈 단장을 보며 계속해서 어린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은 유혹이 크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른들의 게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자신의 한계는 자신의 마음이 규정짓는다는 말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제레미의 악몽을 보며 자신이 홈런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1루수로 달려가 몸을 내던졌던 그가 나의 모습은 아닐까 반성도 해보았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퍼포먼스도 잘 내고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곤 하나 막상 내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하는 방법을 믿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빌리빈 단장, 우리의 방식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프로답게 행동하라는 말이 정말 멋있었다. 비록 지금 겉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승리의 팀이니 승리자답게 싸우라는 자기 확신과 언더독 정신. 그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애쓰거나 걱정할 필요 없다. 인생이라는 쇼를 한바탕 즐기다 가면 된다. “인생이 꿈이라면 그 꿈을 잃지 말고 잘 꾸어야 하고, 인생이 한바탕 연극이라면 멋진 연극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후스 선생의 말이 떠오른다.


[빌리빈 단장의 딸이 쓴 노래 가사]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네

인생은 미로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갈까

떠나려 했지만 혼자선 자신 없어

왜 그럴까

난 길을 잃은 작은 소녀

두려움을 남에게 보이긴 싫어

인생은 너무 어려워

그래서 우울해

이제 걱정은 떨쳐버릴래 그냥 쇼를 즐길 거야

늦춰야만 해 멈춰야만 해

안 그러면 심장이 터질 테니까

내가 아닌 그 무엇이 되려고

애쓰는 건 너무 힘들어

나는 사랑에 목마른 바보

언제나 사랑은 원하고 또 원하지

아빠는 루저야 그냥 쇼를 즐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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