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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유진 Mar 18. 2024

구의 증명

최진영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먹는다. 그 사람 없이 살기 위해 그 사람을 내 몸 안으로 끌어들인다. 부모님이 물려준 빚에 허덕이던 구는 허망하게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담은 그런 구를 데려와 씻기고 그의 시체를 먹는다. 회상과 구를 먹는 담이 번갈아서 제시되며 구와 담의 인생을 그려낸다.

책을 읽다가 문득 "구"라는 이름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모서리 하나 없는 원형의 "구"라는 단어와 그의 인생이 대비돼서 보였다.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온갖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대. 근데 거기 희망은 왜 있었을까.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항아리 안에 있었을까. 이 얘기를 담에게 꼭 해주고 싶었는데 해주지도 못하고 나는 죽었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이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이 말을 왜 해주고 싶었냐면, 나는 아무 희망 없이 살면서도 끝까지 죽는 순간에도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데, 그건 바로 담이 너 때문에 희망 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수많은 굴곡과 모서리뿐인 구의 삶에서 유일한 "구"는 담이었을 것 같다.

우연히 거리에서 담이를 마주친 순간부터 둘이서 집에서 설탕을 찍어 먹던 순간, 노마와 함께 셋이 귀가하던 순간들은 구의 인생이 유일하게 원형에 가까운 순간들이 아니었을까. 구와 담은 교차적으로 서로가 함께 했던 순간들과, 서로를 떠올렸던 순간들을 나열한다. 마치 구의 인생이 원형의 “구”였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처럼, 

할아버지, 노마, 이모, 구 마음을 줬던 사람들을 차례대로 잃은 담은 구를 먹는다. 구를 먹어서 구를 간직한다. 처음엔 시체를 먹는다는 사실만 봤을 때는 좀 거북했다. 그저 시체를 먹는다는 사실에 초점이 갔기 때문이다. 근데 점점 담이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구는 이제 기억 속에 만 존재하고, 담이에게 남은 것은 구의 차가운 육체뿐이다. 담은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여러 차례 겪었고, 그 사람들이 기억 속에선 점멸해간다는 걸 알기에, 나약하게 흐려질 기억만으로는 구를 간직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을 것 같다.눈앞에 선명하게 존재하는 구의 육체를 먹음으로써 구를 좀 더 선명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떤 순간에는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원하고, 어떤 순간에는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원한다. 담에게 구를 먹던 순간은 전자였을까 후자였을까. 잘 흘러가지 않는 시간과, 쉽게 흘러가버릴 시간들 속에 남겨진 담이가 너무 초라하고 처량해서 슬펐다.

내가 담이었어도 구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나라도 구를 먹었을까

구의 수많은 모서리들을 껴안고 기꺼이 구의 인생에 원형이 되어줄 수 있었을까. 

그 어떤 것들로도 막기 힘들것 같은 구의 인생에 비처럼 내리는 불행들을 나는 같이 맞아 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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