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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통역사 Apr 02. 2019

‘고모라고 하지 말고 엄마라고 불러, 알았지?’

일일 엄마와 소풍을.

그날은 유치원에서 엄마와 함께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가 없었다. 내가 세 살 무렵 아빠 엄마는 이혼했다. 나와 동생은 한 동안 할머니와 작은 고모의 손에 맡겨졌다. 그런데 있지도 않은 엄마를 오라고 하니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내가 유치원생이던 삼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혼은 말 그대로 ‘흉’이었다. 사람들은 보수적이었고, 요즘처럼 이혼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로 여기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큰고모는 나의 ‘일일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를 가장한 큰고모의 손을 잡고 유치원 소풍에 가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본의 아니게 속여야 했다. 혹여 실수로라도 ‘고모!’라고 부를까 봐 나는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유원지 화장실에 갔을 때 나는 거울로 흘깃 내 얼굴을 보았다. ‘TV유치원 하나, 둘, 셋’에서 본 피노키오의 길어진 코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코끝이 괜스레 찌릿해졌다. 공포와 더불어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진짜 엄마와 웃고 떠들고 싶은데. 내 엄마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여느 한부모가정의 아이들과 달리 한쪽 부모가 없다고 놀림받거나 무시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부모님이 헤어졌다는 사실만은 반드시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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