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어쩌다, 동거
집으로 돌아온 소소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요. 오늘, 산책 중에 만났던 냐롱이를 생각해요.
“조잘조잘 아, 귀여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와요. 그때였어요.
“야옹, 니~~야옹.”
소소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요.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려요. 아무것도 없어요. 소소는 다시 생각해요.
‘상상만으로도 소리가 들릴 수 있나?’
소소는 다시 침대에 누워요.
“니야옹~~.”
진짜 소리예요.
“어디에 있는 거야? 냐롱아….”
또 소리가 들려요.
“야! 옹!”
소소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여요. 그리고 천천히 몸을 움직여요.
소소의 집은 굉장히 넓어요. 없는 것이 없어요. 소소는 일하는 시간을 빼고는 혼자 지내요. 친구도, 가족도 없어요. 하지만 외롭지 않아요. 소소는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요. 일을 하고 돌아오면 소소의 하루는 거의 끝나요. 아주 가끔씩 집 앞 숲 속으로 산책을 나가는 것이 자신만을 위해 쓰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소소는 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거든요.
늘 집에 돌아오면 침대와 한 몸으로 지내요. 그리고 천장을 보고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요. 명상 같은 건 아니에요.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에요. 그런데 소리가 난 거예요. 조용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소소의 집이 와장창 깨지는 것 같아요.
소소가 커다란 집에서 유일하게 쓰는 방은 딱 하나예요. 폭신한 침대가 있는 침실! 거대한 방 한가운데 커다란 침대가 달랑 하나뿐이죠. 침실의 한쪽 벽은 유리로 되어있어, 벽 자체가 창문이에요. 안에서도, 밖에서도 소소의 방은 훤히 다 보여요.
소소는 진짜 겁쟁이라, 밖을 다 봐야 했어요. 그래서 한쪽 벽을 허물고 커다란 유리벽을 만들었죠. 아주 오래전일이라, 소소가 억지로 생각해야만 떠오르는 그런 기억이에요.
소소는 조심스럽게 창 너머의 숲을 봐요. 혹시 밖에서 들리는 소리일지도 모르니까요. 한참을 두리번거렸지만 냐롱이는 보이지 않아요.
소소는 지신의 방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른 뒤 방문을 열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요.
“니!야!옹!”
소소는 작은 목소리로 말해요.
“냐롱이야?”
대답이 없어요. 소소는 눈을 감아요. 가만히 자리에 멈춰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아주 천천히 움직여요. 소소는 작고 집은 아주 넓기 때문에 눈을 감고 움직여도 부딪혀 다칠 일은 없어요.
“냐옹!”
소소는 2층으로 올라가요.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요. 2층 계단 끝에 다다랐을 때 눈을 떠요.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야.”
소소는 아래층을 내려다봐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했던 혼잣말이 문득 떠올라요.
‘2층까지 올라갈 일이 없겠지?’
그 기억이 떠오르자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와요. 잠시 머뭇거리던 소소는 다시 소리가 나는 쪽으로 한 발, 한 발 내디뎌요.
“냐~~~옹!”
소리가 가까워져요. 점점 커져요. 소소는 달려가요. 소리가 나는 바로 그 방향으로요. 심장이 쿵쿵 뛰어요.
‘귀여워.’
커다란 냉장고 앞, 냐롱이가 있어요. 냉장고를 향해 계속 야옹거려요. 소소는 다정하게 말을 건네요.
“어떻게 여기에 있어.”
“배고파, 야옹!”
소소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해요.
“어, 음… 냉장고를 한 번도 안 열어 봤어.”
“왜? 야옹.”
소소는 잠시 생각하다, 솔직하게 말해요.
“사실은, 2층에 오늘 처음 올라왔어. 여기 이렇게 커다란 냉장고 있는지도 몰랐는걸.”
“뭐! 그럼 이렇게 커다란 냉장고 속에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는 냉장고는 너무 슬퍼! 야옹!”
“냉장고가 슬퍼?”
소소는 냐롱이가 퉁명스럽게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또 귀여워요. 웃음이 자꾸 나요. 소소는 냉장고 문을 여는 시늉을 하며 냐롱이를 다정하게 쳐다봐요.
“그래도 열어 볼까?”
냐롱이는 소소를 힐끔 한번 훔쳐보고, 생각해요.
‘바보일 수도 있겠어.’
소소가 다시 문을 여는 시늉을 하며 또 말해요.
“열어볼까? 응? 열까? 말까?”
냐롱이는 ‘진짜 바보였어!’라고 생각하며 소소에게 답해요.
“그래, 열어 봐. 야옹!”
소소가 커다란 냉장고문을 힘껏 열어요. 바로 그 순간!
“뭐여! 누구여~ 남의 집 문을 함부로 팍~ 여는 겨어! 예의 없게!”
냐롱이가 재빨리, 재빠른 마음으로 소소의 뒤에 숨어요. 아니, 숨으러 가는 거예요.
소소는 움직일 수 없어요. 자신에게 느릿느릿 기어 오고 있는 냐롱이를 바라볼 뿐이에요. 소소의 커다란 눈동자만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움직여요.
“꼬맹이들, 아녀~ 계속 문 열고 서 있을겨어?”
소소가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냐롱이가 대신 대답해요. 소소의 뒤로 완전히 숨어서요.
“배고파요! 야옹!”
소소는 깜짝 놀라요. ‘배고파요!’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뒤에 숨어 있는 냐롱이가 살짝 거슬려요. 눈을 지그시 감고 큰소리로 말해요.
“죄송합니다. 문 닫아드릴게요!”
“잠깐만안~ 냉장고 문을 열 땐, 이유가 있지이?”
“어, 음… 제가 문을 열긴 했는데요….”
냐롱이가 소소의 답답한 모습을 보고 끼어들어요. 얼굴만 쑥 내밀고요.
“배고파요! 야옹.”
소소가 재빨리 다시 말해요.
“괜찮아요… 문 닫아드릴게요.”
“아녀어, 가만있자아, 오랜만에 손님이라, 뭐가 있나, 찾아볼게. 거시기 기다려봐아.”
냐롱이가 소소를 툭 치며, 씽긋 웃어요. 좀 전까지도 설레고 귀여웠던 냐롱이가 아니에요.
냉장고 속에서 굵고 두툼한 손이 쑥 나와요.
“여기, 봐봐. 사과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디, 꼬맹이라.”
냐롱이가 사과를 찡그린 눈으로 쏘아보며, 크게 대답해요.
“하나만 더 주세요. 야옹!”
냉장고 속에서 굵고 두툼한 손 하나가 또 쑥 나와요.
“꼬맹이라고 편견을 가졌네. 여기, 사과혀. 사과 하나 더. 하하하.”
소소와 냐롱이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지만 열심히 따라 웃어요. 소소가 작은 목소리로 말해요.
“냉장고 문 닫아드릴게요.”
“그려. 또 와아! 얼른 더워 죽것네.”
소소는 1층으로 내려오면서 혼잣말을 해요.
“뭐야, 이제까지 나만 이 집에 있었던 게 아니었어… 혼자 있었던 게 아니었다고….”
갑자기 눈물이 펑펑 나요. 어떤 감정인지 소소는 알 수 없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뒤따라 천천히 내려오던 냐롱이가 다정하게 한마디 해요.
“배고파, 울지 마.”
*냉장고 속에 누가 살고 있을까요? 아주 뻔한 분? 이 살고 있답니다. 별로 중요한 등장인물은 아니어서, 다음 4화에 딱 한 문장으로 알려드릴게요. 눈 크게 뜨고, 재미있게 찾아보세요.
-어쩌다 우리가 만나는 모두가, 나와 다른 생각과 관점을 갖고 있을지라도 우린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연 또는 악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관계의 시작이 늘 싱그러운 봄햇살처럼 따스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모든 우연을 위로와 함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