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성의 재현을 넘어
<철학적 고찰 Series 1_E01 – Prelude>
매력적인 사람을 볼 때면
그의 취향을 몰래 훔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훔친 그 매력을 내 안에 새기고,
그로써 내 것으로 빚어진 그 취향을
다시 그에게 환원하고 싶다.
여기까지 우리는 훔치고, 새기고, 환원하는 과정을 하나의 ‘순환’으로 읽어왔다. 그런데 들뢰즈의 눈으로 보면 중요한 건순환 자체가 아니라, 그 순환이 만들어내는 차이다. 반복은 같은 것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다. 반복은 매번 다르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래서 “내 것으로 빚어진 취향”은 복제의 결과가 아니라, 반복을 통과하며 생겨나는 **새로운 생성(becoming)**이다. 사랑은 닮아가는 과정이면서도, 동시에 더 낯선 내가 태어나는 과정이다.
1. 반복은 동일성이 아니다 ― 같은 행위가 아니라, 다른 사건
우리는 자주 반복을 ‘습관’이나 ‘루틴’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들뢰즈는 반복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반복은 동일한 것이 재현되는 게 아니라, 동일한 형태 안에서 차이가 솟아오르는 방식이다. 같은 음악을 다시 들어도, 같은 장소를 다시 가도,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도—그 순간의 나는 전과 다르다. 그러니반복은 복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새로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래서 취향을 훔치는 행위도 매번 같지 않다. 처음엔 동경이었고, 어느 날은 경쟁이었고, 또 어떤 날은 순수한 감탄이었다. 같은 행동(훔치기) 안에서 감정의 질감은 계속 달라진다. 들뢰즈적으로 말하면, 반복은 동일성의 확인이 아니라 차이의 생산이다.
• 반복은 같은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차이를 생산한다
• 같은 대상도 매번 다른 의미로 도착한다
• 훔침의 반복은 복제가 아니라, 감각의 변형 과정
2. 재현의 함정 ― ‘닮기’가 목표가 되는 순간, 삶은 멈춘다
들뢰즈는 재현을 경계한다. 재현은 어떤 모델(원본)을 세워두고, 그와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삶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처럼 되고 싶다” “그 취향을 복제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질수록, 나는 나의 가능성을 모델의 그림자 안에 가둔다.
여기서 취향은 삶을 여는 문이 아니라, 나를 좁히는 기준이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닮아감이 ‘목표’가 되는 순간, 관계는 살아 있는 생성이 아니라 관리가 된다. 들뢰즈는 말한다. 중요한 건 닮음이 아니라, 닮음을 통과해 생겨나는 **되기(becoming)**다.
• 재현은 모델을 세우고, 유사성을 기준으로 삶을 판정함
• 닮기가 목표가 되면, 취향은 가능성을 좁히는 기준이 된다
• 중요한 건 닮음이 아니라, 닮음을 통과한 되기
3. 되기(becoming) ― “내 것으로 빚어진 취향”은 나의 생성이다
“내 것으로 빚어진 취향”이라는 표현은 들뢰즈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 문장 안에는 이미 ‘복제’가 아니라 ‘생성’이 들어 있다. 나는 그의 취향을 가져오지만, 그 취향은 내 욕망과 만나며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내 삶의 조건(시간, 몸, 상처, 기쁨)이 그 취향을 통과시키며 새로운 결을 만든다.
그래서 여기서 ‘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취향을 통해 계속 생성된다.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면서, 나는 그 좋아함에 맞는 새로운 몸과 언어를 갖게 된다. 들뢰즈에게 정체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취향은 그 과정의 흔적이고, 사랑은 그 흔적을 가속하는 사건이다.
• ‘내 것으로 빚기’는 복제가 아니라 생성(되기)
•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
• 취향은 그 과정이 남긴 흔적이다
4. 차이의 윤리 ― 관계는 합쳐짐이 아니라, 차이를 보존한 공명
들뢰즈에게 좋은 관계는 동일화가 아니다. 오히려 차이가 사라지지 않도록 두고, 그 차이들이 서로를 자극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관계다. 우리는 종종 “취향이 같다”는 말을 안정으로 생각하지만, 들뢰즈는 묻는다. 그 같음이 생명을 주는가, 아니면 생명을 죽이는가.
같아짐이 관계의 목적이 될 때, 둘은 하나의 기준에 수렴하며서로를 마르게 만든다. 반대로, 취향이 ‘차이의 생성’으로 작동할 때, 관계는 더 넓어진다. 서로의 취향은 서로를 복제하지 않고, 서로를 발명하게 한다. 들뢰즈적 사랑은 합의가 아니라 공명이다.
• 좋은 관계는 동일화가 아니라, 차이를 보존한 생성
• 같아짐이 목적이 되면, 관계는 관리가 된다
• 차이가 남아 있을 때, 둘은 서로를 발명한다
5. 출구 ― 반복을 두려워하지 말고, 반복 속 차이를 선택하기
들뢰즈 이후의 출구는, 반복을 ‘실패’로 보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같은 마음을 반복하면 초라하다고 느끼고, 같은사람을 떠올리면 뒤처졌다고 느낀다. 그러나 반복은 삶이 멈췄다는 증거가 아니라,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일 수있다. 중요한 건 반복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반복이 나를 더 좁히는가, 아니면 더 넓히는가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너의 취향을 훔치지만, 너와 같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복 속에서 매번 다른 나를 생성하기 위해서. 그때 취향은 복제의 기술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달라지는 연습이 된다.
• 반복은 퇴행이 아니라, 차이를 생산하는 사건
• 반복이 나를 좁히는지 넓히는지 방향을 점검하기
• 출구는 같아짐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새로워지는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