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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Mar 01. 2024

4. 내 연애는 왜 이렇게 힘들까?

반복되는 애착관계


정말, 제목 그대로다. 내 연애는 항상 왜 이렇게 힘이들까? 연애 상태가 될때마다 생기는 내 내면의 폭풍을 생각하면 정말 잠이 안온다. 친구가 예전에, 연애를 하면 머리 한구석에서 스파이웨어가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딱 그 말이 맞다.



여러가지를 차치하고 가장 최근에 하나 깨달은건, 나는 그냥 존재하기 보다 어떤 역할을 무척 잘 하려고 노력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가족관계에서도 그랬기 때문에 특히 가까운 관계가 되면 더 그렇다. '좋은 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력하게 생기는 것이다. 그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인이란 무엇인가? "경청하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 그러나 이 두가지엔 어딘지 모르게 수동적인 데가 있는 것 같고, 금지적인 면모가 있는것 같다. 좋은 연인이라면 '부정적 대답을 하지 말아야해' 혹은 '꼭 편을 들어줘야해' 라는 걸로 귀결되거든. 근데 부정적 대답이 하고싶고 편 들기 싫을수도 있잖아, 그럼 어떡해? 



그리고 이게 아이러니한게, 대개 나는 과한 칭찬 머신이라서 누구든 편을 아주 멋지게 들어준다. 취미로 팟캐스트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그걸 듣더니 "정말 모든 문장을 칭찬으로 귀결시킬수 있다"는 평을 내놨다. 엣헴. 그런데 누구던 슬슬 가까워지기만 하면 걱정의 목소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사람이란건 피부로 외부와 내부가 나누어지고, 그 피부 안에 목소리들이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는 존재라 생각하는데, 가까운 사람이 어렸을 때 긍정적 문장을 내면에 넣어주지 않으면,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문장들이 조금 잔인해지고 비판적이게 계속 울려퍼지게 된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넣은 부정적 문장들을 희석시키기 위해 스스로 칭찬머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누구든 가까워지기만 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마치 시를 잘 쓰는 사람이 친구이면 너무 멋있다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친해지면 얘, 그래도 월급 받는 직업을 가져야하지 않겠니 이런 식인것이다. 아마 누군가와 가까워질수록 나와 남의 분리가 잘 안되는 편이니까, 가까운 사람에겐 엄마가 하던 '걱정만 하는 버릇' 이 나오고 나는 그런 내 모습을 견디기가 좀 괴롭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인'이고 싶은 내 욕망에 괴리가 있는 것이다. 이러면 나는 둘 중 하나를 바꿔야 한다. 혹은 둘을 조금씩 조정할 수도 있겠다. 지금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자. 걱정이 되는 내 모습을 인정하되,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할 때 내가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나는 그 때 숨막혔다. 그러니까 상대에게도 그런 기분을 주고 싶지 않고, 또 매사 걱정만 하는 것은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는 친구가 절벽가서 한번 뛰어내려 보려고 하면 어 안전벨트 메고가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만 말리지는 않는다' 정도로 나의 애티튜드를 정해볼 수 있겠다. 혹은 안전벨트 메고 같이 가자고도 해볼 수 있겠다. 그리고 좋은 연인이고 싶은 마음도 조금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겠다. 무조건 닥치고 경청하고 편들어주는 것만이 좋은 연인인가? 자기의 생각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사람은 좋은 연인이 아닌건가? 그리고 애초에 뭘 억지로 내가 할 수는 있나? 그러고 싶나?






안전벨트 메고가 친구야









나는 관심없는 얘기에는 귀가 저절로 닫혀버리고 상대가 미친 소리를 하거나 답답하게 굴면 정신차리란 말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애인이 되는 것은 진정한 내 모습이랑은 병행이 불가하다는 결론이 났다. 애인이 미친소리를 하는데 "야 정신좀 차려~~" 를 못했더니 이번에도 4개월간 가슴속에 홧병을 꿍꿍 안고 잠을 못자다가, 그 말을 확 해버리니까 눈에 생기가 돌고 어깨에 짐이 확 내려가며 속이 마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 한국인의 위장처럼 개비스콘 되는 것이었다. 말을 해버리는 것이 나에게는 귀신 쫓는 부적인 것이다. 말을 못하는 것이 귀신인 것이다, 귀신은 무서워 너무 무서워. 한국인의 홧병은 하고싶은 말 못하기 아니던가, 그거 안하려고 조국을 떠나온게 아니던가! 






아 속시원해









그러면, 이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개다. 1) 내 기준 '좋은 애인'의 정의를 바꾸어서 계속 좋은 애인이 되려고 노력할 수도 있고, 2) 좋은 연인이 되자는 욕망 대신 진정한 내가 되자는 욕망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점은 '좋은 애인이 되지말자' 라거나 '좋은 연인이 되자는 욕망을 버리자' 는 부정의 방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이런 지점에서 아주 소년만화 재질같기 때문에 부정형을 기억 못한다고 한다. 무엇을 하자! 라고 하든 하지말자! 라고 하든 상관없이 '무엇!' 만 기억한다고 한다. 바보.



이번에도 둘 다 조금씩 해볼수 있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애인'은 아무리 하기 힘든 말이라도 거짓말하지 않는 연인. 혼자 걷기 무서운 길을 같이 걸어주는 연인. 그것은 충분히 멋있고 또 해볼수 있는 일인것 같다. 그리고 좋은 연인과 진정한 내모습 두가지 역할이 싸울때, 후자를 선택하도록 우선순위를 정해둘수도 있다. 왜냐하면 얼마전에 연인이랑 싸움을 했는데, 나보고 내가 그렇게까지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하는거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존재가 모두 흔들리는 것처럼 무서웠는데 다음날 일어나니까 마음 한구석이 너무 편한거야. 이 사람은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좋아하는구나? 라는게 의외로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나는 그냥 내가 되고싶은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좋은 ㅇㅇ가 되기 위해 너무나 많이 노력했는데, 이 크디큰 에너지를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다 쏟아부으면 나는 어떤 버전이 될까? 너무 궁금해. 



내가 내 자신이 아니었을때, 좋은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서 경청하는 척을 하려고 할 때, 그 때 나는 박스 속에 몸을 구겨넣는 고양이같다고 느꼈다. 고양이는 대체로 아주 작은 박스에만 몸을 구겨넣기 때문에 그 박스는 머지않아 터지게 되어있다. 나는 그런 박스들의 운명을 아주 많이 봐왔다. 그렇게 몸을 구겨넣으면 꼬리가 삐져나오고 털이 삐져나오고 발이 삐져나오듯이 나의, 스스로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한 부분은 병의 형태로 나타났다. 면역계 이상, 원인미상의 피부병, 잦은 감기, 수면장애, 우울증과 골반의 만성 통증. 아픈 것은 싫다. 나는 아프고 싶지 않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구부리거나 접히거나 잘리지 않고 다른 사람과 가까이 걸으며 팀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볼 수 있을까? 그것이 내가 연애와 파트너십에 대해 끝까지 가지고 있는 화수분같은 궁금증이자 희망인 것 같다. 사람이 그리고 사랑이 언제나 가장 재미있다. 






스스로 좋은 여자친구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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