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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Jun 10. 2023

눈물이 날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여행소회 (30) -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날은 120km 여정의 마지막 날이었다. 산티아고 순례자 흉내를 낸 지 5일 차 되는 날이기도 했고. 혼자서 오르는 언덕 위에 가느다란 두 개의 선이 교차해서 만들어낸 십자가가 있었다. 허파가 물기를 품은 바람에 감겼다. 그곳까지 오기 위해 걸었던 며칠이 생각났다.



발은 여정 내내 가벼웠다. 날아올랐다. 한낮 스페인 북부의 태양은 생각보다는 다정했고, 걱정했던 세찬 비도 내리지 않았다. 고지대의 길을 걸을 땐 바람이 꽤나 강했는데 그마저도 등을 밀어주며 나를 독려했다. 가끔 나비와도 걸었다. 길이 내내 나를 지켰다는 생각을 감히 했다.



짧은 전투나 사건으로 급격하게 성장한 히어로는 흔한 얘기다. 내가 누군가를 구하는 히어로는 못 되겠지만, 서울에서의 나를 구할 정도의 1인용 히어로는 되어가고 있었다. 걸으면서 확실히 나는 행복했는데 덕분에 일상에서, 본거지에서 무언가의 치임으로 오는 우울감을 보다 잘 다루는 노련함을 익히고 있었다. 스스로를 짧은 시간 동안 한계에 몰아넣으면서도 걷는 힘을 만드는 나의 의지를 나는 사랑하게 됐고, 그래서 가끔 우스울 정도로 쉬운 삶의 순간을 위기라며 허우적대는 나를 더 간편하게 구해낼 수 있었다.



“축하해요” 영어가 유창한 성당 관리소 직원이 나에게 활짝 웃으며 인증서를 건넸다. 묵주를 사고 나는 관리소 뒤편의 정원으로 나갔다. 아침에 보았던 물안개 대신 몸이 뚫릴 만큼 밝고 찬란하게 내리는 태양이 힘을 과소비 중이었다. 벌컥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날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냥 고작 5일 만을 걸었을 뿐인데.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생맥주 거품처럼 솟아 올라와 멈출 새도 없이 빠르게 흘러내렸다. 아, 맥주는 너무 겸손한 표현인 것 같다.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 활화산의 폭발이었다.



성당의 종이 도시를 감싸며 울렸다. 그 순간이, 청량한 봄과 여름의 경계를 살고 있는 나의 젊음이, 미친 듯 키스하고 싶게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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