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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도영 Aug 12. 2023

최후의 말

여행소회 (31) - 인천 강화

이별은 바로 내 뒤에서 쏜살 같이 달려왔다. 필사적으로 도망치기 위해 나는 달렸다. 무서워 뒤를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호야를 안고 달리느라 엉성한 본새의 나와는 다르게 - 죽음은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바로 내 등 뒤에서 어깨를 잡아 채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여행은 잠시만 죽음의 신을 피해 도망을 쳐볼까? 하는 어리석은 희망을 기반으로 준비됐다. 시간이 조금은 더 내 편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하지만 나는 너무 느려도 한참 느렸다. 여행의 전날 밤, 죽음이 싫다는 나에게서 호야를 소중히 안아 들었다.


“이제 보호자는 나야”


매정한 그가 호야의 마지막 숨을 거둬 그에게로 가져갈 때 난 어린아이처럼 그녀를 내게로 붙들어 두기 위해 바보 같이 호야의 심장 부근을 두드리며 그녀를 불렀다. 호야는 아마 들었겠지만 나를 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때부터 몇 달간 틈만 나면 아이를 빼앗겨 야속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



우리는 사람을 보내는 것만큼이나 신경 쓴, 잘 관리된 장례를 치르고 여전히 피가 철철 흐르는 기억에 대충 밴드만 붙인 채 예정된 여행을 갔다. 사실 장소만 같았을 뿐 일정은 완전히 달랐다. 반려견 동반 가능. 이 단어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벌겋게 부어 오른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모자를 눌러쓰고 찾아간 절의 은행나무는 절경이었다. 바람은 찼지만 은행을 먹은 햇살은 다정했다. 그 착한 아이가, 자신을 신경 쓰느라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 우리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하루 전 떠났나 같은 생각을 했다. 온통 그 아이였다.


.



서쪽 바다의 섬. 강화는 낙조가 유명했다. 경포대나 해운대에서의 일출이었다면, 보러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와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운이 좋았어. 호야를 사랑한 뒤로 항상 빌어왔던 소원이었다. 제가 지켜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 순간, 옆에 있을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그녀가 가기 십 여분 전쯤일까, 호야를 안아 들자 그녀가 나를 봤다. 그 눈가에 맺힌 다정함이 나에게 최후의 말을 걸었다.


언니, 거기 있네.

지금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사랑해 줘서 고마워.

나도 언니를 사랑해.


우리,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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