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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Dec 30. 2023

노부부를 덮친 과거, 기억은 재난이 됐다

오마이뉴스 게재, <45년 후>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127] 범람하는 지구, 범람하는 뇌혈관 <45년 후>

▲ 과거로부터 온 재난 이들의 결혼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평화로운 가정에 닥친 이들의 위기는 사랑과 결혼이라는 가치에 대해 되새김질 하게끔 만든다. ⓒ 판씨네마(주)


"결혼하라. 그러면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그래도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든 안 하든 그대는 후회할 것이다." - 쇠란 키르케고르


잔혹한 재난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집 안 한가운데 꽁꽁 얼어있던 빙하가 녹아 한순간에 평화로운 가정을 덮치는 이야기다. 한순간에 코앞까지 닥쳐온 쓰나미 앞에서 45년을 지켜온 신뢰와 평화는 무력하기만 하다. 가정의 달 5월, 결혼이란 제도 아래 안주하고 있을 많은 부부는 이 영화 앞에 한없이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마땅하다.


편지 한 통에 뿌리채 흔들리는 일상

  

▲ 45년 후 이 영화로 샬럿 램플링(우)과 톰 커트니(좌)는 이례적으로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 판씨네마(주)


앤드루 헤이의 <45년 후>는 한 쌍의 노부부가 겪는 일주일 남짓의 이야기를 다룬다. 결혼 45주년 파티를 며칠 앞둔 케이트(샬럿 램플링 분)와 제프(톰 커트니 분)는 은퇴 후 영국의 한적한 마을에서 평온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부부다. 아내 케이트는 오래 키운 개 맥스와 산책하는 게 낙이고, 몇 년 전 뇌혈관에 문제가 생긴 후로 몸이 다소 불편한 제프는 키르케고르의 책을 완독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의 평화로운 나날에 위기가 닥친 건 제프에게 첫사랑 카티야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면서부터다.


남편이 편지를 읽은 후 카티야의 유령이 집안을 배회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살아있는 아내의 집에서 종일 죽은 카티야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끝없이, 끝없이 고통받는다. 주름진 육체 아래 잠들어 있던 여자가 깨어나 불꽃을 튀긴다. 깨어난 불꽃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른다. 어쩌면 결혼생활 내내 카티야의 유령이 이 집에 살았는지도 몰라. 지난 45년의 무게도 오늘의 의심 앞에 가볍기만 하다. 불안이 그녀의 영혼을 잠식한다.


케이트에게 지난 45년을 증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이도 그 흔한 사진 한 장조차도. 있다면 함께 기른 개 한 마리와 더는 과거를 증언할 수 없는 오늘의 남편뿐. 그러나 턱밑까지 물이 차올랐다. 아내의 입을 떠나는 물어선 안 될 질문, 그리고 돌아온 들어선 안 될 대답.


"만약 그녀가 죽지 않고 함께 이탈리아로 갔다면 결혼했을 거야?"


"응."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남편을 사로잡은 첫사랑의 유령 앞에 케이트는 풍랑 위에 뜬 조각배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전을 뒤적여가며 편지를 해독하고,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서적을 찾아 읽으며 스위스행 비행편을 알아보고 다니는 남편 앞에서 애써 지어 보인 표정은 얄팍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참기 힘든 건 남편의 입에서 첫사랑의 이름이 불릴 때. 남편이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고 수차례 되뇌여 보지만 카티야의 이름은 칼날이 되어 가슴팍을 파고든다.


케이트를 침몰시키는 결정적 한 방은 다락에서 발견한 카티야의 사진. 카티야는 늘 그와 함께 이 집에 있었다. 어쩌면 45년 내내.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가졌다. 내게는 없는. 케이트가 임신한 카티야의 사진을 찾아낸 순간, 케이트의 지난 45년은 제프가 카티야와 보냈을 몇 년을 당해낼 수 없게 되어버린다. 적어도 그녀에겐 그렇다.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45년의 무게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제프가 수없이 다락에 올라 카티야의 사진을 보았을지, 45년간 카티야의 유령이 집 안을 배회했을지, 추측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세상의 수많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카티야는 지나간 추억으로 제프의 가슴 속 방 한 칸에 잠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문은 단단한 자물쇠로 잠겨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락이 집 안에 있지만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공간이 아닌 것처럼 카티야가 잠든 제프의 마음속 공간 역시 케이트와 지내는 동안엔 꽁꽁 얼어붙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뇌혈관 문제를 겪고 퇴행적 징후를 보이는 제프는 더는 건강한 시절의 그가 아니다. 그는 카티야가 잠든 방의 자물쇠를 열고 그녀는 방에서 나와 케이트의 앞에 나타난다. 카티야가 알프스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은 제프는 이렇게 말한다. "빙하에서 녹은 물은 지표 아래로 흘러들고, 불어날 대로 불어나면 쓰나미가 돼 도시 전체를 삼킨다"고.


뇌혈관 질환을 겪은 제프는 지구온난화에 처한 지구와도 같다. 지구온난화가 지구의 잘못이 아니듯 뇌혈관 질환 역시 그의 잘못이 아니다. 뇌혈관 질환으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절묘한 설정이다.


제프가 뇌혈관 문제를 겪고 퇴행증세를 보인다는 건 그가 저지르는 잘못으로부터 그를 면책시키는 요소다. 이로 인해 영화의 관심은 제프라는 개인의 도덕적 잘못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에 대한 것으로 옮아간다. 지난 45년의 무게를 입증할 수 있는 무엇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케이트는 스스로 카티야의 유령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들의 45년이 그녀에게 그럴 힘을 주었을까?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천착하는 주제다.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영화는 기승전결의 익숙한 전개를 기꺼이 포기한다. 제프가 건강했을 때 부부가 보낸 시간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마무리도 과감한 열린 결말로 맺는다. 그래서 관객은 오로지 상영시간 동안 드러난 몇 가지 단서만으로 그들의 결말을 추측해야 한다. 그 단서란 생략된 '기'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를 잡아챈 관객이라면 <45년 후>를 부부가 함께 지낸 45년의 무게에 대한 영화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제프를 탓하며 극장을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고. 물론 무엇이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는 명백하다.


힌트는 곳곳에 있다. 뇌혈관 문제를 겪은 후 사전 없이 간단한 편지 한 장 해석하지 못하면서도 키르케고르를 완독하려 했던 제프. 젊은 시절 대처 총리를 옹호하는 케이트의 친구를 못마땅해했던 그. 레닌을 추앙했던 친구가 이제는 금융권에 취업한 손자와 골프를 친다며 열을 내던 모습. 제프가 듣던 음악과 케이트가 고르는 음악의 선명한 차이. 케이트가 시내에서 <빅 이슈> 판매원과 말을 걸어오는 시민단체 관계자를 지나치는 장면. 기타 등등.


이제 생각해보자. 제프와 케이트가 함께 보낸 45년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맞이할 결말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들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 45년 후 결혼생활 한가운데 얼어붙어 있던 과거가 마침내 부부의 45년 세월을 집어삼키는 광경은 한 편의 재난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다. ⓒ 판씨네마(주)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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