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호 Jan 10. 2024

점이 아닌 선으로

단상

나는 자주 나은 선택을 하였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을 설득할 수 없으리란 걸 많은 순간 느낀다. 때로는 넓은 이해심을 가진 이나 큰 애정을 가진 이조차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고는 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 길로 가느냐, 이게 아니라 저걸 택한다면 훨씬 나아질 게 아니겠냐고.


 나는 설득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 그건 그와 내가 생을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나를 달리 판단하기 때문이니까.


 생을 단절적 점으로써 이해하느냐 지속되는 선으로 보느냐는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한다. 생이 점이라면 한 인간은 그가 선 순간과 지점으로 모든 것이 이해된다. 생김과 성품, 직업과 연봉, 태도와 가치, 그야말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이 판단의 기준이 될 테다.


 그러나 선이라면 말이다. 오늘 가진 것이 내일은 없을 수 있고 내일 없는 것이 모레는 있을 수 있다. 이차원을 넘어 삼차원, 사차원까지 생을 바라볼 수 있다면 오늘 따지는 가치가 내일은 완전히 무의미해질 지도 모를 일이다. 선으로 생을, 그로부터 인간을 이해하는 이라면 오늘 못한 이를 더 낫게 보거나 오늘 나은 이를 더 못하게 보는 것도 늘상 있는 일이다.


 말하자면 나는 생을 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생은 지속되는 것이며 나는 내 생을 다루는 기준점을 늘 현재보단 조금은 앞에 두고 살려 애쓴다. 쉽게 말하여 나는 내일 더 낫기 위하여 오늘 더 못할 수 있다. 그로 인한 불편 쯤 언제고 감당하려 한다. 생이란 인간의 이해를 넘는 것이어서 못한 것이 나은 것의 씨앗이 되고, 나은 것이 못함의 근거가 된다. 고난과 불편이 이해를 깊게 하고 생의 접힌 주름들에서 멋드러진 이야기가 태어나는 것이다. 인간을 잘 교육하려는 수많은 시도가 적어도 예술과 철학에 있어 온갖 시시한 것을 낳았음을 떠올린다. 인간의 이해란 너무도 비좁아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멋진 인간을 키워내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을 키우는 건 오롯이 생이지 교육일 수 없다. 신영복 선생은 일찍이 이와 같은 견지에서 퇴화한 집오리의 한유와 무익조의 비상하려는 몸부림을 대조하지 않았나. 스스로를 재능 있다 여기는 사내라면 마땅히 후자를 좇을 일이다.


 오늘도 무엇을 거절하였다. 그에겐 나의 선택이 시대에 역행하고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스스로도 알고 있듯, 어느 일은 인간을 쇠락하게 하는 법이다. 그것이 비록 오늘을 더 낫게 보이게 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의 말대로 더 예쁜 여자들과 어울리게 할 수는 있겠으나, 내일을 더 못하게 하리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설득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그 역시 나를 설득하는 법을 알지 못하여 우리는 서로의 접점에서 한 잔 술을 기울이며 더 나은 관계를 도모할 뿐이다.


 실은 누구도 다른 누구를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존중할 수만 있는 것이다.



2023. 4

김성호

매거진의 이전글 언제까지 삶을 낭비할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