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2024.3.26.
2학년 아이들이 이틀 전 수학여행을 떠났다. 한국어학급 학생 5명 중 3명이 2학년이다.
오늘은 2박3일 수학여행 마지막 날이고, 1학년 아이들의 소풍 날이다. 요즘엔 현장체험학습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내 입에는 소풍이 입에 탁 붙는 말이다.
나는 한국어학급 담임이기도 하지만 1학년 7반 부담임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1학년 소풍에 함께 해야 한다. 필리핀에서 온 남학생 현이와 이틀 전 중국에서 와서 우리 학교에 입학한 지영이도 마침 1학년이다. 소풍에서 두 아이의 모습도 궁금하다.
현이는 한국 국적 아버지와 필리핀 국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위로 누나가 둘이다. 필리핀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시절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 생활 4년째이다. 그런데도 한국말을 못해도 너무 못한다. ‘일곱시’를 ‘칠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내 나름의 추리는 이러하다. 우선 너무 내성적이다. 친구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말을 하는 법이 없다. 시선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한국어를 못하고 눈길도 마주치지 않으니 친구 사귀기가 힘들었을 테고 그런 시간이 지금까지 지속된 듯하다. 두 번째 이유는 집에 혼자 있기 때문인 듯싶다. 누나가 둘이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누나들은 미용 계통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하니 뷰티, 패션 쪽에 관심이 많을 것 같은데 현이는 그런 쪽에 도통 관심이 없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잠들 때까지 게임을 한다고 한다. 엄마, 아빠는 밤 10시가 넘어야 돌아오신다고 한다. 엄마는 한국말이 서툴러서 현이와 영어로 대화를 한다. 그럼 아이에게 한국말로 말을 걸어줄 사람은 누나들과 아버지인데 관심사도 다르고 만날 시간도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게임에 빠진 아이는 그 세계에서 너무 바빠 말할 틈이 없다.
현이가 제일 잘 쓰는 말은 ‘괜찮아요’이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도 ‘괜찮아요’, 도와줄까 물어도 ‘괜찮아요’, 수학이 어렵지 않냐고 물어도 ‘괜찮아요’. 성격도 착하기 그지없다.
현이는 총체적 난국이다. 필리핀에서 돌아온지 오래된데다가 영어와 필리핀어로 주로 소통하는 사람은 엄마뿐인데 엄마랑 대화 시간도 부족하다보니 필리핀어와 영어는 까먹고 있고, 한국어 소통도 잘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나와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사달이 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