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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야 Oct 29. 2022

노르웨이에서 셀프 이사하기

운이 좋게도 우리가 살 집을 일찍 구하게 돼서 안도감을 느끼고 우리의 거주지가 정해졌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노르웨이에서의 이사는 한국에서의 이사와 정말 달랐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직접 스스로 ‘셀프 이사’를 한다. 물론 노르웨에이도 이사업체가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한국처럼 경쟁이 크지 않기 때문에 가격도 큰 차이가 없다.


남편과 같이 살던 커플 또한 이사 업체에 의뢰해본 적 없고 모두 직접 이사를 했다고 말했다.

커플 중 한 명은 다른 지역에서 이사할 때는 아버지가 직접 대형 트럭을 운전해서 이사하는 것을 도와줬다고하는 데 이사업체의 도움을 받아 이사하는 한국에서 자라온 나는 직접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신기하기도 하고 처음 겪는 상황에 대응하려니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직접 하거나 아니면 큰 비용을 지불해업체에 의뢰하거나 둘 중의 하나로 이사 외에도 세입자가 나가기 전에 집 청소를 깨끗이 해놓고 나가야 하는데 이 또한 업체에 의뢰할 경우 집 크기가 적어도 큰 비용이 들고 집 크기가 크면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부분 직접 청소 도구를 사다가 한다고 한다. (부자들은 사람/업체를 고용하는 것은 여기도 일반적)


물론 외국인의 경우 잘 모르기도 하고 또 집주인한테 흠이라도 잡힐까 걱정돼 비싼 돈을 주고 업체를 고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지만 현지인들의 경우 스스로 하기를 택하고 꼼꼼하게 열과 성을 다해 직접 청소하는 편이다.


나야 현지 사정 잘 모르니 남편과 그들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고, 같이 살던 커플은 6월 초에 새로운 집에 입주해야 한다고 했고 월세를 이중으로 내는 것을 피하고자 우리는 8월 1일에 입주하는 것으로 집주인과 얘기를 했다.


우리 커플 따로 같이 살던 커플 따로 이사 갈 것이라 예상됐으나, '대형 트럭을 렌트해서 같이 한 날에 이사하는 것이 더 비용적으로 저렴하다 우리에게 같이 한 날에 이사 가는 게 어떻냐'는 제안이 왔다.


또 거주하고 있던 집 계약 마지막일이 7월 말로 새로운집에 입주하기 전까지 하루정도 우리의 짐을 놔둘 곳이 필요한데 그럼 총 우리는 이사를 두 번 하게 되는 것이라 번거롭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 고민 끝에 이중 월세를 내고 6월 중순에 이사를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가 이사 갈 집 전 세입자가 6월 초에 이사를 간다고 해 우리도 무리 없이 6월 중순에 이사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대형 트럭의 경우 대형차 운전면허증이 필요한 데 같이 살던 커플 중 한 명의 삼촌이 해당 면허증이 있다고 해 이사하는 곳까지 운전해주기로 했지만 웬걸 이사를 일주일 앞두고 여행을 간다면서 운전을 못해주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심지어 자기 여행 가있는 동안 반려동물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행동하면 욕먹을 일이지만 노르웨이에서 생각보다 이런 일을 빈번하게 겪게 됐다.)


여하튼 나는 너무 대책 없는 행동에 짜증이 확 났지만 다들 너무 무덤덤해 그게 더 이해가 안 가고 황당했다.


이후 결국 시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고 시아버지가 이삿날 운전을 해주시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사가 얼마 안 남은 만큼 우리는 짐을 하나 둘 정리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이사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이사 당일날 아침, 남편과 같이 살던 커플의 친구들이 이사를 도와주러 왔다. 그리고 여행 때문에 운전 못해주겠다 말한 같이 살던 친구의 삼촌은 이사 전날 자기 반려견을 맡겨놓고 홀연히 떠났다. 하하..


남편은 시아버지와 함께 트럭 렌트하는 곳으로 향했고트럭이 도착하면 우리는 짐을 트럭으로 옮길 계획이었다.

생각보다 우리의 짐은 우리가 지내던 방에 여유롭게 다 들어가 사실상 우리의 짐은 많지 않아 우리가 이사 갈 집을 먼저 가길 바랬는 데, 같이 살던 커플이 자기네 짐이 더 많으니 2,3번 왔다 갔다 하느니 대형 트럭에 한 번에 자기네 짐을 다 채운 담에 자기네 집을 먼저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짐을 싣고 이사한 다음 트럭을 반납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난 제발 그러길 바랬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들의 짐은 대형 트럭이 넘칠 만큼 너무 많았고 트럭 짐칸 문을 겨우 닫으며 폭우 속에 출발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기다림에 지친 나는 남편에게 현 상황을 묻고자 전화했으나 걔네 집 골목이 너무 좁아서 운전하기 까다로워 방도를 찾다가 이제야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는 말을 듣고 짜증이 폭발했다.


그리고 오후 5시가 다돼서야 그들은 다시 돌아왔고 나는 남편에게 "우리 집 먼저 가자. 나 더 이상 못 기다려 우리 짐이 지금 남은 쟤네 짐보다 훨씬 적어... 그러니 우리 집 먼저 가자고 하자. 빨리 끝낼 수 있는 걸 먼저 끝내는 게 맞지. 그리고 우리 쟤네랑 이사 같이 안 했으면 진작 끝났고도 남았어"라고 말하자, 남편은 화난 나의 모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후 같이 살던 커플 남자애에게 "우리 집 먼저 가자. 나 더 이상 못 기다려. 그리고 우리 짐 얼마 안 되는 데 우리 집 먼저 갔다 온 뒤 너네 집으로 계속 가는 게 더 나을 거 같아."라고 말했고, 그는 "나도 다 안 들어갈 줄 몰랐어. 근데 우리 지금 남은 짐 별로 없어서 우리 것도 같이 넣을 수 있어. 우리 꺼 먼저 실고 너네 짐 실자. 그래야 너네 집 먼저 가지."라고 답했다.


남은 짐이 별로 없다는 말은 예상과 달리 이미 트럭의 반이상이 차기 시작했고 우리 짐을 넣자 트럭 문턱까지 차올라 겨우겨우 문을 잠갔다. 이때 비는 엄청 오지, 넘쳐나는 짐 때문에 문도 계속 안 잠겨서 정말 나는 짜증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사실 그날은 기다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같이 이사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들이 당일이 되니 자기네 이사만 신경 쓰고 우리는 뒷전이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짐 부피가 정말 넘사벽이었다.


우리의 짐을 숫자 1로 표현하자면 그들의 짐은 7이었다. 이 정도의 차이라 사실 대형 트럭이 필요한 건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었고 우리는 사실 침대도 새로 살 거였기 때문에 부피가 큰 짐이 없어 아마 8인용 정도 되는 큰 승합차 빌렸으면 될 정도였는데 같이 살던 커플의 짐이 그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이미 그들은 6월 초에 입주하기로 계약한 상태라 이사하기로 한 날짜 전까지 6번 정도 자차로 왔다 갔다 거리며 자기네 짐을 옮기기 시작했고 우리랑 이사 같이 하자고 해 어느 정도 짐 부피가 작아진 줄 알았는 데 그게 아니었다.


마침내 우리가 이사할 집에 도착했고 짐을 꺼내고 몇 번 옮기니 우리 이삿짐 옮기는 것은 30분도 채 안되어 끝났다. 진짜 그때 그 허무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끝날 거였는 데 아침부터 몇 시간을 기다린 건지. 그렇게 이사는 완료됐고 난 한참을 소파에 앉아 멍을 때리며 '괜찮아'라는 말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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