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이민 생활 현실
노르웨이에서 한국으로 오게 된 지도 어연 2년이 지난 지금, 10년 넘게 타국에서 지내온 이민자 분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새내기다. 나는 중국,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도 큰 어려움 없이 지냈던만큼 적응력이 나름 빠른 편임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란 나라는 나에게 쉽지 않은 곳이였다고 한치의 망설임없이 얘기할 수 있다.
현지에 적응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덕분에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가지 경험들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나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막 이민을 오게 된 시점, 한국과 다른 문화를 몸소 보고 느끼며 달라진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존재하는 사회, 조직이란 곳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극히 제한됨에 따라 제2의 사춘기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고서야 알게 된 소중한 것들.
그 과정을 거쳐오며 나의 생각,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변화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지나온 과거를 글로 작성해 내가 겪어온 길을 돌아보며,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러한 당신에게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말하고자 작성하게 되었으며, 해당 글을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뤄진 글임을 미리 밝히며 시작합니다.
그때는 이해가 안 가고 몰랐던 것들
1.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다
현지인과 결혼해 온 이민자이지만 현지인들과 어울리기란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파트너가 노르웨이가 아닌 사람들 또는 난민신분으로 온 사람들은 현지인 배우자가 있어 네트워크가 마련되어 있어 좋겠다고 하지만 노르웨이 사람들 특성을 알게 되면 부러워할 것도 말 것도 없는 문제다. 뭐 당연 플러스 되는 부분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현 글에서는 내가 나고 자라온 한국의 사고방식으로 이해가 안 가는 현지문화와 현지인들의 사고방식을 새로움,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이기엔 당시 나의 마음은 부스러질만큼 작았고 또 닫혀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친구'라는 한 단어로 통틀여지지 않는다.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그 말은 즉, 더 이상 공부만 알면 되는 시기, 친구하고 뭐하고 놀지 고민하는 시기를 벗어나 나의 인생을 탐구할만한 폭이 나도 모르게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라, 성별을 불문하고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한 결혼 그리고 이민 같은 어떠한 인생의 큰 이벤트를 선택할 시간을 맞이했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타국에서 내가 놓이는 인간관계의 폭은 나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단지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또래 친구를 사귈 때에만 적용되지 않고 어떠한 공간에서 낯선 이와 스쳐 지나갈 때도 그리고 이벤트 등에 참여할 때도 볼 수 있다.
예로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경우라면, 나의 아이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데 이미 그 나라의 모국어로 하하 호호 웃으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현지 부모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고, 또 학부모 상담 등이 있는 경우 현지어, 제2 외국어로 소통해야 하는 데 그마저도 내 실력이 충분치 않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등 그 외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것들, 파생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이벤트는 나의 고국에서는 전혀 어려운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이보다 더 어려진 나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다른 예로 수십 번 이력서 지원은 당연한 말이고 그리해서 어찌어찌 간신히 얻어낸 인터뷰, '나 00에서 온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자신을 보다 어필해야 하고 그 어필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자괴감과 예측 불가능한 현지인들의 생각을 무자비하게 추측하다 보면은 현재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가리는 안대가 되어 내적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물론, 내 발로 걸어 들어온 곳이지만 누구나 인정 욕구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 만나는 과정 속 배척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환영하지 않는 그러한 존재가 된 느낌을 받게 되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란 사람의 모습에 의심을 가하면서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초연적인 질문을 앞세우기도 했다.
2. 노르웨이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것을 극도로 삼간다.
이 항목은 노르웨이에 살면서 가장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중 하나이다. 노르웨이에서 부정적인 말을 삼간다는 것은 험담과 같은 반경에서 훨씬 크고 과분할 정도로 넓게 포함시켜 봐야 한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한국에서는 부정적 얘기라 할 수 없을 정도의 일였는데도 노르웨이 사람에게 내가 겪었던 일 중에서 이러이러한 점에서 기분이 상했고 왜 그랬는 지 모르겠다는 등 기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를 했는데 침묵을 유지하거나 대답을 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해당 항목에서의 추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한국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거지'라는 말도 있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언성을 높이면 정신 질환 있다고 의심받는 확률이 매우 높다. 그만큼 다르게 반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화나거나 삐져서 말 안 하고 있으면 답답하다고 뭐라 하는 데 노르웨이에서는 '이런 것조차도 부정적으로 보는 건가'할 정도로 가족, 친구 사이에도 나쁘다, 싫다, 안 좋다 등 각종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언급을 극도로 삼간다고 보면 된다.
아마 당신이 어떤 안 좋은 일, 경험에 대해 친하다고 생각해 공유하고자 얘기했는 데 상대(노르웨이 사람)가 무반응으로 일관하거나 모르겠다고 한다던가 하면 '그 주제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다' 또는 '그 일에 포함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친해지기 어려운 일본인들과도 시간은 걸렸지만 친구가 된 나에게 노르웨이 사람들과의 대화란 어나더레벨이었다. 한 작가는 극도로 추운 날씨에 깨부술 수 없는 얼음 장벽이 내 앞에 서있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노르웨이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제한되어 있고 많지 않기에 좋은 것만 말해야 하는 부담감이 좀 자리 잡았고 위에 언급한 항목 1을 느낄 만한 상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그럼 노르웨이 사람들은 아예 나쁜 감정을 안 느끼는 건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상위권에 속한 것처럼 인생이 편하고 행복해서 그러한 감정은 모르는 건가?라는 궁금증이 발현했지만, 살다 보니 노르웨이 사람은 시시비비 가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기에 부당한 상황, 불편한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하겠어라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선택하는 편이 많다. 즉 해당 상황에서 느껴지는 안 좋은 감정을 소화하기로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없으니 무시하고 잊으려/피하려 택하는 것.
노르웨이 사람들과 사석에서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는 사이가 됐다면 당신의 부정적인 경험에 공감하거나 또는 그들이 겪었던 일들을 공유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데, 이에 한국에서의 인간관계와 같이 친하다고 해서 당신 편을 들어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지만, 막상 행동이 필요한 때에 '난 빼줘'라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해봐 등의 조언 대신 안타깝지만 어쩌겠어, 나도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돼.라는 등의 소극적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노르웨이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채득 했고 그들의 문화, 사고방식을 알아가는 이런저런 한 일들이 살이 되고 뼈가 되었다. 99%의 진담을 담아, 당신에게 직접적 행동을 통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노르웨이인을 만났다면 '귀인'임이라 말하고 싶다.
3. 왜 미리 알려주지 않는 걸까
어느 나라건 신입의 경우 교육기간이 주어지는 데 당연 해당 기간에 모든 것을 숙지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일할 수 없으니 일을 하며 배우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노르웨이에서 직장에 다니면서 교육을 받고 이후 동료가 어떤 것을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 일을 했는 데, 이후 아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줘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불쑥 튀어나와 '아님 그럼 애초에 부탁할 때 이걸 이렇게 해줘라고 말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왜 미리 안 알려주는 거지?'라는 짜증 섞인 감정과 더불어 내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 같은 느낌에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갔다. 이러한 일들은 직장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상황이라 예를 설명하자면 끝이 없기에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한국 사회는 다수에서 소수가 특이한 행동을 하면 손가락질하거나 안 좋게 보고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해야 돼라는 정해진 틀, 사회에서 주는 평균치가 있지만, 노르웨이에서는 각자의 방식을 더 받아들이는 것에 속한다.
모르고 실수한 일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했어? 상식(기본)이 있다면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특정 평균치를 요구하는 반면, 노르웨이에서는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뭐 그렇게 했을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말하는 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하는 것,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것을 안 좋게 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동료나 사수가 알려주지 않아 발생하게 된 실수에 너무 상심하거나 전전긍긍하지 말자.
괜찮다.
여기까지 노르웨이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현실에 대해 세가지로 추려봤다. 이민자라는 신분, 그리고 고국이 아닌 타국이라는 단어가 주는 그 무게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 데 나의 글이 타인이 낭독할만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또 현재에 몰두하고 집중하다보니 잠시 한켠으로 몰아두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 항상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에서야 그 하나를 풀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