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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야 Oct 26. 2022

코로나 활개 속  노르웨이에서 이민자가 되다.

내 코 안을 수없이 찔리게 하며 얻은 코로나 결과 '음성'

때는 2021년 4월 4일,
내가 노르웨이에서 이민자로
첫 발을 디딘 날이다.


노르웨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나라라고 알려졌지만, 내가 도착한 당시 코로나가 활개를 치고 있어 공항에 도착해서 밖을 구경할 새도, 노르웨이의 맑은 공기를 느낄 새도 없었다. 북적이던 이전과 달리 한가로운 공항 그리고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줄 지어 기다리던 모습이 그날의 전부였다.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외국인의 경우 호텔에서 약 7일간의 내돈내산 자가격리를 이어가야 했다(당시 약 1박 당 500kr). 자가격리 호텔 입성 전에는 입국장에서 나오기 전 같은 비행기 탄 사람들 중 자가 격리해야 할 사람들을 기다려야 했고 이후 다 같이 코로나 검사장으로 이동해 검사를 받고 또 함께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수화물도 검사 결과 나오기 전까지 찾으러 갈 수 없다는 안내와 내가 속한 그룹 인원 전부가 결과를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30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고 했고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대기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숨이 턱 막혔고 출국 전 음성 결과지를 왜 요구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피곤함 그리고 무한 기다림에 짜증, 답답함 등 온갖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같은 무리에 있던 사람들 몇몇이 "만약 우리 수화물 없어지면 책임질 거냐"라고 묻자, 수화물 찾으러 가는 걸 허용해줬다. 그리고 부리나케 다 같이 짐을 찾아와야 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 맡고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들이랑 함께 다녀와야 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대략 한 시간 정도 기다렸던 것 같고 운이 좋게도 모두가 '음성'이 뜬 걸 관계자가 확인하고서야 우리는 공항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속한 그룹 중 한 명이라도 양성이 나왔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후 공항에서 다 같이 한 대형버스에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여력 했다. 내가 속한 그룹 중 두 명의 남자는 호텔 가기 전 담배를 피우길 원했고 관계자가 안된다고 하자, 화난 듯 "결과가 음성 떴는데 담배를 왜 못 피우게 하는 건가요?"라고 물으니, 마땅한 답을 못 찾은 관계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담배 피우고 싶은 사람 있나요? 그럼 이분들과 함께 다녀오세요. 다만 멀리 가지 말고 바로 담배만 피고 다시 돌아오세요"라고 담배 피우는 것을 허용해줬다.


그렇게 한 버스 기사 분이 이쪽으로 오라 안내했고 우리는 공항에서 차량으로 10분 이내에 있는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하게 됐다. 자가 격리하는 호텔은 자가 격리자가 지정할 수 없었고 공항에 도착한 당일 배정받는 시스템이라, 내가 어디로 가게 되는지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참으로 답답했다.


끝난 줄 알았는 데 또 무한 대기 시작.

그래도 호텔에 도착하면 모든 게 다 끝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관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야 했고 어떤 한 연회장이 진행될 것 같은 큰 공간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앉아서 호텔에서 나눠주는 서류를 작성해야 했고 해당 호텔 직원 한 명이 서류 작성을 마친 자가격리 대상자 2명씩 1조로 체크인을 도와준다고 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직원 1명만이 이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즉, 앞 조 체크인을 끝내고 다시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데리고 가기까지, 내 순서가 오기까지 무한 대기해야 했고 체크인까지 20분-30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자가격리 했던 호텔

이러한 오랜 과정 끝에 오후 9시가 다되어 호텔 체크인을 하고 들어간 호텔방. 피로가 몰려오고 밥도 못 먹어 배도 고프고 마스크를 하루 종일 착용해서 귀는 이미 땡땡 부어 아프지. 이제는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안도감과 서운함, 짜증 등이 몰아쳐 눈물이 났다.


노르웨이 자가격리 이래도 되나?

노르웨이 자가격리 규칙은 한국에 비해 엄청 유한 편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바로, 하루에 한 번 외출이 가능했고 아는 지인에게 음식을 전달받을 수 있고 외부인과의 접촉이 가능하다.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고 있지만 지켜보거나 관리하는 사람이 없기에 마스크 착용은 거의 자율선택이었지만 난 KF-94를 착용하고 다녔다. 자가격리 호텔에서 빨리 나가는 방법은 결과 음성이 뜨는 거니까. 그리고 음식도 호텔 측에서 삼시 세 끼를 챙겨줬는 데 점점 음식 퀄리티가 나빠져 거의 못 먹은 경우가 많아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 그리고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음식을 사다 줬었다. 호텔에서 나온 음식들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니 "감옥 아니야?"라고 물어볼 정도로 음식 퀄리티가 별로였다.

자가격리 시작 당일 저녁
이후 점점 뭔지 알수 없고 비주얼이 요상한 요리가 나왔다..
아침은 항상 똑같이 나왔다. 식빵, 햄, 치즈, 요거트, 주스, 사과, 삶은 계란.



한국에 공인인증서가 있다면, 노르웨이는 뱅크 아이디

한국에서 공인인증서 또는 휴대폰 인증이 가능한 업무들이 노르웨이는 뱅크 아이디(BANK ID)가 있어야 가능하다. 코로나 검사 결과도 어떤 한 사이트에 뱅크 아이디로 로그인해야 본인 검사 결과를 볼 수 있는 데, 당시 나는 갓 들어온 이민자로서 행정업무를 볼 수도 없이 자가격리를 먼저 해야 했기에 당연 뱅크 아이디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덧 자가격리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오전에 리셉션 직원이 찾아와 "코로나 검사받으시겠어요?"라고 물었고 당연 오케이하고 알려준 방 번호로 서둘러 가자, 이미 검사 대기자들로 가득했다.


어느덧 내 차례가 왔고 뱅크 아이디가 없던 나는 의사에게 "전 뱅크 아이디가 없는 데 결과는 어떻게 아나요?"라고 묻자, "뱅크 아이디가 없으면 문자로 결과 발송해줄 거예요."라고 했다. 찜찜했지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보통 검사 결과 나오는 데 12-24시간 정도 걸린다고 안내를 받았으나, 그다음 날 체크아웃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문자가 도착하지 않았고 공항에서 같은 그룹에 속했던 여자애와 번호를 교환하고 중간에 연락 주고받았던 이 친구는 결과가 오전에 나왔다고 해 이미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여기서 하룻밤을 더 지낼 순 없어!!!'

마음이 조급해진 나는 코로나 검사 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전화 대기자만 40명이 넘었고 나는 당시 선불요금제를 쓰고 있을 당시라 충전해둔 요금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호텔 리셉션은 결과가 음성인 게 확인되어야만 나갈 수 있다고 해 집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이 대신 전화를 계속 걸며 대기를 하고 있었고 앞에 대기자 2명이라고 했을 때 나에게 유선으로 전화를 돌려줬다.


그렇게 어렵게 연결된 상담원과의 통화가 그렇게나 떨리고 기쁠 수가 없었다. 코로나 검사와 자가격리에 지칠 때로 지친 나는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떤 일로 전화하셨어요?", 나 "코로나 검사를 어제 받았는 데 결과를 아직 받지 못했어요. 제가 뱅크 아이디가 없어서요. 혹시 결과 확인 가능한가요?"라고 물었고 상담원이 확인한 결과 음성이라고 했다.


"근데 제가 문자를 못 받아봤어요. 언제 결과가 나온 건가요?"라고 물으니 "오전에 나온 걸로 되어있고 문자가 안 갔나요?"라고 물었다... "네.. 제가 지금 호텔에서 나가려면 결과가 음성이라는 게 필요한 데 문자 좀 보내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고 상담원은 알겠다면 전화를 끊으려던 차에, 순간 또 이러다 안 오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잠깐만요!!! 전화 끊지 말아 주세요. 문자 온 게 확인되면 전화 끊고 싶어요. 그러니 문자 확인될 때까지 잠깐 기다려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고, 상담원은 "알겠어요. 잠깐만요.. 이름이 도유 킴.. 코로나 결과 음성, 지금 문자 보냈어요.", "잠깐만요...(하 빨리 와라..)" 이내 띠링! 하고 문자 알림음이 들렸고 상담원이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감사해요! 지금 도착했어요!! 진짜 감사해요~~"라고 말하며 통화를 종료하고 미리 싸 둔 짐을 황급히 들고 로비로 내려가 리셉션 직원한테 문자 보여주고 체크아웃하고 바로 호텔 밖으로 나와, 마스크를 벗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하.. 드디어 자유구나! 드디어 집에 가는 거야!

기다리고 있었을 남자친구(현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데리러 갈 테니 좀 기다리라고 했지만 한국인의 DNA를 가진 나는.. "아냐! 나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어. 그냥 내가 갈게! 지상철 역 앞에서 만나자!" 말하며 폭풍 걸음으로 지상철 역까지 걸어갔고, 드디어 내가 머물 동네,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


잠시 머물 집이었지만.. 남자 친구(현 남편)가 당시 친구 커플과 함께 공간을 셰어 하고 있었는 데 그 친구 커플이 코로나 걸릴까 봐 불안하다며 공동 사용하는 주방, 거실들을 시간을 나눠 일주일간 사용하기로 했고 거리를 유지하길 원했다.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면서도 당시 노르웨이 사람들은 마스크가 권고사항일 뿐 모두가 쓰고 다니지 않았기에 오히려 내가 이 친구들 때문에 감염될 수도 있는 상황인 데, 내가 자가격리까지 하고 음성 결과까지 받고 왔는데 외부에서 왔단 이유로 그렇게 하니 내심 서운했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싶어..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이들이 예민해졌었다고 생각하며 일주일을 무사히 보냈고, 이후 요리도 종종 같이 해 먹었다.


약 3개월 정도 머물 집으로 이제는 평온하게 내가 해야할 일을 하나씩 해나가면 되겠구나 안도했는 데.. 집주인의 갑작스러운 돌아이 행동으로 3개월도 못 채우고 새 집을 구한 에피소드는 다음 글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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