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언니와 함께
지난 주 토요일에는 비가 왔다. 모처럼 엄마가 덕수궁에 가자고 제안했던 날이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비가 온다고 못 가겠다고 하셨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엄마를 통틀어 세 번 만나는데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았다. 이후로는 짐을 싸고 부치고 바쁘게 돌아갈 거 같았기 때문이다. 가던 안 가던 일단 토요일 오전 비를 뚫고 아침 일찍 9시 마을버스를 타고 엄마네 집으로 길을 나섰다. 손에는 필꽃에서 배송받은 꽃다발이 들려 있었는데 며칠 욕실에서 묵은 탓에 시들시들해져 버렸다. 엄마네 집에 가면 화병도 있고 엄마가 꽃꽂이도 할 줄 아시니 거기 가면 다시 환생하리라. 이번 한국 방문에는 정말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았다. 비가 온 날이 세 손가락 안에 뽑을 정도였는데 그 중 한 날이 이 토요일이었다.
엄마 집에 도착하자 10시 40분쯤 되었다. 엄마는 벌써부터 점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냉면과 닭다리 구이! 엄마를 도우며 부엌 살림 여기저기를 살피게 되었다. 엄마가 많이 늙으셨나 보다. 5년 전만 해도 반짝반짝 윤이 나던 찬장들은 여기저기 얼룩덜룩 묵은 때가 앉아 있었고 예전 같으면 엄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기자기한 부엌살림 구경을 하느라 정신 없었을 텐데 이번에는 뭐하나 제대로 구비된 것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 아팠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앉아 있는데 날이 서서히 개어 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짜잔하고 해가 다시 비쳤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하루 비는 다 끝난 것 같았다. 엄마를 다시 부추겼다. 엄마 무릎이 아파서 많이 걷지 못하시고 계단도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나가는 것을 주저하신다. 택시로만 모시고 언니도 불러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 엄마는 녹색 카라 셔츠에 베이지색 모자를 쓰고 옅고 화사하게 화장을 하고 손에 양산과 가방을 들고는 금새 준비를 마치셨다. 요즘 서울은 카카오택시가 너무나 편리하게 내 집 앞까지 와서 손님을 픽업하니 내가 감히 엄마 모시고 나들이를 강행할 수 있었다. 목동에서 덕수궁까지 이만원에 토요일 오후 서울 시내를 내달릴 수 있다니. 서울에서는 굳이 차를 살 필요가 없겠다.
덕수궁에 도착하니 주말이라 여기저기서 쿵쿵거리며 고래고래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는 데모 소리가 들려왔다. 그나마 비가 오는 날이어서 이정도라 한다. 덕수궁 입장료는 1000원이고 그나마 엄마는 65세 이상이라 무료였다. 오전에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아서 느리게 걷는 엄마와 걷기 좋았다. 언뜻 언뜻 낀 뭉개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그 사이사이 반짝반짝 비치는 햇살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도 촉촉했다. 엄마의 보속에 맞추며 걷다 보니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며 나무랑 길도 감상하며, 사진도 찍으며 우아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덕수궁의 예쁜 돈덕전을 먼저 둘러 보고 언니도 합류했다. 우리 셋은 사진도 찍고 깔깔거리며 궁궐을 탐색했다. 석조전 옆으로 내려와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는 혼자서는 감히 오르지 못할 높디 높은 층층 계단이었지만 언니와 나는 엄마 겨드랑이에 팔짱을 끼고 여차하면 엄마를 들어 올릴 심산으로 부축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마침 미술관에는 자수전이 열리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 자수를 취미로 하셨다. 학교 갔다가 돌아와 우당탕 신발주머니 던지고 안방으로 들어서면 엄마가 창문만한 수틀을 앞에 두고 비단 실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수를 놓고 계셨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봉황같은 화려한 새나 작약같이 화려한 꽃을 수놓으셨던 거 같은데 엄마 말씀으로는 그정도 실력 아니었다 하신다. 그런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인지 전시회가 참 재미있었다. 엄마 역시 관심을 갖고 하나하나 둘러 보셨다. 언니는 구경하는 엄마와 나의 뒷모습을 찍어 줬는데 팔십 엄마와 쉰 먹은 딸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많이 닮아 있어서 왠지 서글펐다.
나는 박물관에 가면 꼭 기념품을 사곤 한다. 비싸지 않더라도 기품 있고 우아한 것들을 잘 골라내면 나중에 시간이 가도 그 때가 생각나고 진정 기념이 된다. 이번에도 소라색 손수건과 연분홍색 열쇠고리를 샀다. 이것들은 사실 나를 위해 산 것이 아니라 오타와에 돌아가면 드릴 분들이 있어서 샀다. 내가 없는 열흘동안 이것저것 반찬 해다 날라 주신 권사님과 우리가 한국으로 올 때 여비를 보태 주신 분들께 드릴 것이다. 여기에다 국산 들기름과 고춧가루도 좀 사서 같이 드리면 좀 손이 덜 부끄러울까. 선물은 항상 아무리 정성껏 고심하고 준비해도 드릴 때 왠지 부족한 것 같아서 항상 손이 부끄러워진다. 받은 은혜를 기껏 이런 물건들로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이겠지.
전시회를 다 둘러 보고 언니와 엄마 나 이렇게 셋이 등나무 밑에 앉았다. 사람이 얼마 없어 자리 싸움 할 일 없이 여유있게 앉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덕수궁 중앙에 있는 분수대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었다. 우리도 찍었다. 표정은 엉성하고 어색했지만 우리 세 모녀의 작은 여행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덕수궁을 빠져 나와 덕수궁 돌담길로 접어 들었다. 엄마는 오늘 정말 역대급으로 많이 걷는 날이었다. 엄마 괜찮아? 엄마 괜찮아? 자주 물으며 걸었지만 엄마는 힘드셨는지 한 소리 하셨다. « 니들 생각만 하지 말고 내 생각도 좀 하면서 걸어라. 힘들어 죽겄다. » 겨우 덕수궁 한바퀴 돈 건데도 엄마는 힘에 부치셨나 보다. 그 소리가 얼마나 웃긴지 한참 웃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김혜자 같은 엄마들 같으면, « 나는 괜찮으니 니들 좋은 대로 걸으렴 » 했을텐데… 역시 현실에는 우리 엄마가 있다. ㅋㅋㅋ
엄마도 쉬실 겸 아무래도 덕수궁 돌담길을 들어서기 전에 식후경이 좋을 거 같아 식당을 두리번 거리며 찾는데 마침 깔끔한 한식집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반쯤 지하로 들어가는 곳이라 망설이다가 들어갔는데 손님도 별로 없고 깨끗했다. 오늘이 가오픈 날이라 한다. 우리는 차돌박이 수육과 맑은 양지 곰탕, 얼큰한 곰탕을 한 그릇씩 시켰다. 그리고 종업원에게 사진도 부탁해서 또 한 컷 사진도 찍었다. 여행은 크던 작던 사진이 남는다지 않는가.
양껏 맛있게 먹고 드디어 덕수궁 돌담길 산책. 길 중간에는 바이올린을 스피커에 연결해 유재하, 이문세의 노래들을 연주하는 버스커가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들어도 심금을 울리는 유재하와 이문세다. 정동길을 천천히 걸으며 서울 시립 미술관 뜰도 한바퀴 돌고 예원 학교, 이화여고를 지나 Cafe Lusso라는 찻집으로 들어섰다. 완전 커피 전문점인데 우리는 저녁이 늦어 레몬차와 카모마일을 시켰다. 차를 앞에 놓고 어둑한 카페에 앉으니 마음이 울적했다. 언니도 엄마도 나도 이제 점점 늙어 가는데 나는 이제 다시 캐나다 먼 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언제 이렇게 또 돌아 다닐 수 있을지는 정말 미지수다. 인생은 영원할 것 같아서 서로에게 함부로 하기도 하고 걱정 근심으로 쓸데없는 허송세월을 하며 낭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순간순간 아름다운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마음이 울렁울렁해진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고 놓치기 싫지만 붙들어 놓을 수 없이 흘러가 버리는 게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 세 사람 마음속에는 오랫동안 간직되겠지.
이번 여행은 정말 오기 싫었는데 막상 갈 때가 되니 너무나 아쉽다. 참 좋았고 아름다웠고 위로가 되는 여행이었다. 언니네 집 창동에서 보냈던 날들이 정말 평안하고 휴식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특히 가족과 친구. 친구는 잘 살펴 구분해서 연을 이어가야 하겠지만, 가족은 내 선택이 아닌, 내가 받아들여야 할 나의 운명이다. 더 연락 자주하고 기도해야지. 어딘 가에서 읽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났을 때 인생 길에서 뭐가 제일 힘들었니, 뭐가제일 불행 했었니? 하고 묻지 않으시고, 뭐가 가장 행복 했었니? 하고 물어 보실 거라고. 이번 한국 여행 끄트머리에 우리 세 모녀가 비 개인 토요일 오후에 덕수궁 정동을 산책하고 돌아 온 이 날은 하나님 앞에 갈 때 이 날이 너무 행복했어요 하고 말할 수 있는 하루가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