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친구는 평생을 가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 헤어져 버려 그리워만 하다가 끝나기도 하는데, 내 친구 YJ와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야말로 베스트 프렌드로 자타가 공인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YJ는 어릴 적에 우리 집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 살림살이가 어떻게 발전되고 나아졌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도 없이 자라왔으면서 이상하게 내 기억 속에는 YJ네 집 살림이 어떻게 점점 불어나고 안정되어 갔는지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내 집은 너무 익숙한 공간이지만 친구네 집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 인상이 강렬하고, 그 변화에 민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YJ네 집에 대한 기억은 굴속 같은 곳이었다. 그냥 길 중간 어디쯤의 벽에 짙은 녹색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YJ집이었다. 집이라기보다는 어떤 집의 셋방 살이었던 거 같은데 불을 켜지 않으면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세수하는 수도와 대야, 비누, 칫솔 같은 세면도구들이 놓여 있었고 거기를 지나면 방으로 들어가는 미닫이 방문이 있고, 더 들어가면 부엌이 나오고 그 너머에 건넌방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집이 그런 곳이라면 굳이 친구를 데려가고 싶지도 않았을 텐데 그만큼 구김살이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것이 어린아이의 사귐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없을 때 집에 나를 불러서 자기 물건 이것저것들을 보여 주며 놀곤 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YJ가 잔뜩 모아 놓은 지우개 단지였다. 그 당시 지우개 따먹기 놀이가 유행이었는데 YJ가 지우개를 따서 모은 것인지 함부로 굴러다니는 지우개들을 모아 놓은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 초등학교 일이 학년인 시절 그렇게 알뜰히 지우개를 모아 놓은 YJ를 보고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구나 하는 경외감을 느꼈다. 나보다 훨씬 올되고 어른 성싶어 보였다고나 할까.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미장센은 성경 읽기 그래프이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경을 통독하게 할 요량으로 매일매일 성경을 읽은 만큼 표시하게 하는 성경 읽기 그래프를 나누어 주었는데 그 그래프가 벽에 딱 붙어 있고 빨간 사인펜으로 하루에 50장이 넘게 읽어 재낀 막대기가 쭉쭉 뻗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나는 그래프를 받았던 기억도 없이 어느 구석에 쳐 박아 놨는지도 모르는 터에 내 친구는 확실이 나와 다른 아이였던 것이다.
YJ는 어려서부터 매사에 욕심이 많고 성실했던 아이였는데 이런 기질이 나와 맞아떨어져 선의의 경쟁 구도로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줄곧 붙어 지내었다. YJ와는 여러 가지 추억이 너무 많은데, 한 번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바둑, 오목, 장기를 두며 놀던 일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몇 명 더 있었다. 나는 언니와 동생, 때론 아빠와 오목을 종종 두었고, 겨우 삼사 학년 꼬마들의 바둑이래 봐야 네 돌 놓아한 집 지어 한 알 따먹는 게 다였다. 하지만 이런 원리에 익숙하지 않은 다른 친구들은 이미 나에게 지고 나가떨어져 다른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YJ는 끝까지 약이 올라 나를 이기려고 몇 번이나 도전을 했다. 기껏해야 한 집 지어 한 알 따먹는 바둑 놀이였건만 요리조리 집을 지어가며 한 알 한 알 따 먹는 내 손놀림까지도 얄미워 죽을 지경이 되어 버려 얼굴이 벌게진 YJ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승부욕이 강하고 무슨 놀이에서든 이기고 싶은 어린이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고 나는 그런 YJ를 너무나 이해했다. 급기야 나는 내 친구를 이겨서 화나게 하고 급기야 이러다가 YJ가 화가 나서 자기 집으로 가 버릴 까 봐 불안해졌다. 우리 우정에 금이 갈까 두려워진 나는 YJ가 눈치 못 채게 슬슬 YJ가 세를 얻을 수 있도록 뒷걸음질 치며 따먹을 수 있는 집도 일부러 놓쳐 버렸다. 점점 YJ가 이길 수 있도록 바둑을 마무리했고 다행히 우리는 평화로운 분위기로 모임을 파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나 혼잣 맘속으로, 그래 내가 YJ를 감싸주고 품어 줘야지 하는 마음이 은근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왜 그랬을까. 그 마음은 아마도 나도 모르게 우리 집이 YJ네보다 형편이 좀 낫기 때문에 갖게 된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인생이 언제나 가난으로, 언제나 부유함으로 일관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직장생활을 하다 우수한 인재를 만나 결혼한 YJ는 해외 주재원을 거쳐 지금은 서울 한복판에서 떡하니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다. 나는 YJ의 이런 경제적 여유로움을 바라볼 때, 뿌듯하고 대견하고 장하다는 마음이 든다. 마치 누구에게 자랑하듯 의 YJ의 성공시대를 이야기해 주고 싶은 자랑스러움이 내 안에 있다.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친구였다. 50이 다 돼 가는 지금 우리는 여전한 친구다. 이 나이 되도록 여러 가지 어려움 겪을 때마다 서로서로 곁에서 다독이고 품어주고 감싸주던 친구다. 이런 친구가 인생에 하나라도 있으면 복이라는데, 과연 YJ는 내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