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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Dec 18. 2020

#02 잘 쉬는 법을 모르겠어요

핸드폰을 끄다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일이 어려워졌다. 편집자라 주구장창 업무상 책을 읽는 일 외에 개인적인 독서 생활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한 권을 다 읽는 데에 한 달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세월아 내월아 읽다 보면 책의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완독을 위한 독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의미 없는 독서.

읽었다고 전시하기 위한 독서.


책 관련 팟캐스트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이런 나의 독서 패턴이었다. 일주일 단위로 두어 권의 책을 읽고 주제를 뽑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마음에 부담만 쌓여가고 속도는 나지 않았다.


마감도 마감이고, 규칙적으로 업로드해야 하는 유튜브도 유튜브다만, 비는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평소보다 바지런히 살고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분주한 상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분주하고,

분주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은

거짓 과로 상태.


문제는 스마트폰이었다. 10분 정도 휴대폰을 놓고 있으면 금단 현상이 일어서, 책을 보다가도 중간중간 휴대폰을 체크하게 된 지 오래다. 카톡은 집중을 할라 치면 끊임없이 울려대 맥을 또 얼마나 끊던지. 카톡 시스템은 잔인하게도 대답을 바로 해야만 하는 반응 환경이라 내게 실시간 집중을 요구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간에.



지난 주말 절반 이상 남은 <보건교사 안은영>을 다 읽을 참이었는데 좀처럼 손에 책이 잡히지 않았다. 인스타그램도 해야 하고, 트위터도 봐야 하고, 유튜브도 해야 하고, 온세상 천지 궁금한 게 널려 있어서 한참을 핸드폰에 사로잡혀 있었더니 어느 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망했다.

우선순위에 있던 일들은 해결도 하지 못했는데 일요일 밤이다.


급박한 마음에 책을 손에 쥐었고 독서를 시작했는데 금방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다시금 휴대폰이 만지고 싶은 거다. 뇌의 한 부분은 새로운 업무에 집중하려고 하고 한 부분은 익숙한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중독된 자의 뇌는 확실히 텐션이 떨어진다.

습득하고 빨아들이려는 학습력보다

풀어지고 안주하려는 습성이 강하다.

그래서 미루고 미루다 보면

결국 환멸의 새벽을 맞게 되는 거지.


‘나란 인간은 역시 쓰레기로구나.’



<여명기>라는 책을 편집할 때 씨네21 기자이자 에세이스트인 이다혜 작가님께 칼럼을 요청한 일이 있다. 단편 열두 작품의 소회를 적어야 하는 글이라 꽤 품이 들 거라 예상했던 일이었다. 기간도 길지 않았고, 분량도 짧지 않았다.


그런데 정확히 마감날 원고가 들어왔다. 궁금증이 일었다. 이렇게 집중력 있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생업 글쓰기도 있고, 다른 대외 업무도 병행하시면서 어떻게 마감까지 잘 지킬 수 있는 거지? 그것도 고퀄리티 원고를 주시면서? 작가님의 책들과 인터뷰를 찾아보며 비결이랄 것은 찾은 게 있다면, 집에 텔레비전이 없다는 것. 퇴근 후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는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사교주간을 따로 두는 것이었다.


집중과 효율을 위해 풀어져야 할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긴장감이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에 미치자 텔레비전은 갖다 버리지 못할망정 이놈의 스마트폰은 좀 어떻게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타이머를 맞췄다. 두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책에 집중하겠다는 의미였다. 긴장 속에서 나의 독서는 다시 시작되었다. 물론 중간중간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다시 부여잡기도 했지만 나는 두 시간을 20분 남기고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짜릿했다.

비단 시간을 잴 수 있는 독서도 그러할진데, 쉬는 일이야 얼마나 이 스마트폰에 방해를 받고 있을까.


대상포진을 계기로 나는 좀 더 효율적으로 (폭발적으로) 일하고 쉴 때는 피로감을 완전히 벗을 수 있도록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쉬는 삶에 대해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많은 일은 하기 위해서는 더욱 잘 쉬는 것이 필수인 데다가 내 몸이 그리 성능이 뛰어나지도 않기 때문에 쉴 때도 일하는 것 같은 생각의 흐름을 끊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타이머를 생각했고, 타이머가 돌아가는 동안은 스마트폰을 통한 자극은 멈추도록 했다. 책을 읽기도 했고, 차를 마시기도 했고,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고, 강아지와 체온을 느끼며 낮잠을 자기도 했다.


처음이라 백 퍼센트 가뿐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차단하는 것의 가치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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