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점점 랜선 친구들이 늘고 있다!
요즘 즐겨 듣는 팟캐스트 비혼세에서 오픈채팅방이 생겼다. 불특정 다수가 함께하는 오픈채팅방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데, 어쩐지 같은 감수성을 가진 친구들이 모여 있을 것 같아서 발 하나를 살짝 걸쳐 보게 되었다. 하루에 천여 개가 넘는 메시지가 올라올 정도로 시끌벅적한 방에서 주로 하는 이야기들은,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로 건강 이야기, 취미 이야기. 그밖에도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생활 정보들도 오고갔다. 이를 테면 자궁 경부 검사랄지, 생리컵이랄지, 와이어 없는 편한 속옷에 대한 정보랄지. 가끔 여성으로 살면서 겪었던 분한 일들과 망한 연애에 대한 한풀이도 하면서 말이다.
얼굴도 모르고, 각약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지만 특별히 기분 나쁜 언사가 오고 가거나 사고가 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도리어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쓸 건강한 궁리를 하며 공동체의 양적 성장뿐만 아니라 내적 성장까지 추구할 정도이니, 연대라는 단어가 잘 들어맞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코시국으로 대도시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멈춰버렸다. 그래서일까. 소위 ‘인친'이라고 말하는 온라인 친구들과의 친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나에게는 인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들이 제법 있다. 함께 유방암을 이겨내고 있는 친구들이 있고, 유튜브를 통해서 친구가 된 이들도 여럿 있다. 또 랜선 댕친들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나는 이들이 올린 피드를 보며 수다스럽게 댓글을 달고, 애정을 표현하는, 랜선에서 만큼은 외향인이 된 지 꽤 되었다.
오늘 트위터를 보다가 풋, 하고 웃음이 터졌는데, 오늘 줌으로 하는 송년회가 두 개나 있어 바쁠 예정이라고 누군가가 쓴 글을 보고 모두 같은 마음이구나 해서 웃음이 나온 것이다. 비혼세 오픈채팅방에서는 연말 정모를 줌으로 계획하고 있다. 대도시의 가게들은 문은 닫았지만 랜선에서는 다들 환하게 불을 켜고 친구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아무래도 혼자 보내게 될 것 같다. (뭐, 언제라고 시끌벅적하게 지낸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엊그제 마켓컬리에서 홈파티용 메뉴를 잔뜩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고, 뱅쇼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며 그렇게 주말을 맞았다. 토요일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환기를 하고, 크리스마스 스웨터로 갈아입고, 집안을 연말 분위기로 꾸미고, 나름 성대한 집콕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나홀로 집에'다.
아니다.
엄연히 나홀로는 아니다.
나는 파스타를 볶고, 양갈비를 굽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고, 영상으로 기록해 나의 인친들에게 공유한다. 친구들은 각양각색의 댓글을 달며 이 파티에 참여한다. 올 크리스마스는 이렇게 인친들과 함께일 것 같다. 코시국은 우리를 집에 가두었지만, 우리의 시선만큼은, 우정만큼은 더 멀리 뻗어나가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친구들은 이제 지척에도 있지만, 저 멀리에도 있다.
정세랑 작가님이 <시선으로부터,>를 출간하고 한 인터뷰에서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시선을 멀리 던지세요."라는 답을 한 적이 있다. 시선을 멀리 두니, 나에게도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취미가 맞고, 코드가 맞고, 같은 감수성인 여성들. 서로의 일을 관심 있게 지켜봐주며, 사려 깊은 위로를 할 줄 아는 선배이자 동료인 사람들.
올해 크리스마스는 인터넷 피드로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하겠지만, 언젠가 정말 얼굴을 마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섞고 싶으네.
불 꺼진 대도시의 어느 네모난 방구석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출판사 편집자로 종종 글을 쓰고 왕왕 영상 편집을 합니다. 글에서 남긴, 나홀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록한 영상입니다. 혼자라고는 했지만 내 친구, 내 단짝친구, 내 소울메이트 순심과 함께였네요. 즐겁고 가벼운 걸음으로 놀러오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hYWeQvVA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