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의 진심을 알아줄 때

미국의류 회사로 가다 -1 회

by BlueVada

남편과 함께 미국에 이민 온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미국 엘에이 다운타운의 속칭 ‘자바시장’으로 불리는 LA 패션 디스트릭에서 패턴 의류디자이너로 20년째 일하던 중 지난 9년 전에 어이없이 해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의 내가 느꼈었던 그 고통은 배우자의 죽음이나 이혼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 다음으로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4위에 해당하는 수위였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후회가 막심했고 특히 나를 모함했던 동료가 준 상처는 두고두고 용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시 새 직장으로 이직해서 그 힘든 시기를 모면하고 싶어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렸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지나고 보면 그 당시가 40대 초반이어서 그나마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40대 후반의 나이에서 만약 똑같은 일을 겪었다면 아마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도전한 지금의 미국회사의 회사생활은 내 인생 전체를 바꾸어준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미국사회에 잘 적응해서 영어도 멋지게 하며 살아갈 날들 꿈꾸며 이민 왔었다. 하지만 당시의 내 현실은 LA 코리아타운 근처에 살며 여기가 외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리게 하루 종일 한국어만 사용하며 지냈다. 한국인 교회에 다니고, 아이들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학원에 보내고, 주말에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이민생활이라고 해봤자 딱히 영어 쓸 일 없이 교민들이 운영하는 다운타운 도매 의류 회사에서 일하다 때가 되면 퇴직할 줄 알았다. 그런 내 인생이 어쩌다 새로운 곳에 직면하게 되고 언감생심 미국 회사에서 백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하게 되다니 회사 입구에 들어설 때마다 아직도 신기할 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머릿속에 한두 번은 꿈꾸던 일들이 행운처럼 찾아올 때가 있다. 우여곡절 이었던 지난 6년 동안의 시간을 소설처럼 기록하고 싶었고 가슴에 남았던 추억을 책 안에 담아보고 싶었다. 참고로 아래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가명을 사용하였다.


2015년 가을 LA 글렌데일에서 친하게 지내는 지인분과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나는 백수가 되어 평일 낮 시간에 모처럼 여유가 있던 참에 마침 같은 교회에 다니던 권사님이 점심을 사 준다고 해서 카페에서 만났다. 밀린 내 근황을 그분에게 털어놨더니 기운을 내라며 해준 말이 떠올랐다.

비비안 씨는 전에 창문도 없는 사무실에서 없는데서 일했다고 했죠? 다음번에는 분명 창문이 있는 멋진 회사에서 일하게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권사님! 꼭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요.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를.”

누가 들으면 무슨 창살 없는 그런 데서 일했는가 싶을 거다. 하지만 다운타운의 패션의류 사무실들은 사방이 꽉 막힌 건물 안에 창문도 없이 답답하게 구조돼 있는 곳들이 많다. 그런 곳에서 오래도록 일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해서 억울한 가운데 권사님의 말 한마디가 내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이탈리아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