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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Vada Oct 02. 2024

글렌데일 힐스

언제 봐도 아름다운  우리 집

‘하루가 즐거우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이 즐거우려면 결혼을 하고, 1년이 즐거우려면 집을 사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라’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 집 식탁 옆에 큰 유리창이 있다. 내가 항상 앉는 자리는 그 유리창의 바깥풍경이 바로 직통으로 보이는 자리라 그 의자에 앉아서 밥을 먹거나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실 때가 좋다.
우리 집은 그렇게 View가 좋은 집은 아니지만 나름 아랫집의 나무들과 건너길의 공원이 아스라이 보이는 산속동네에 있어서 기본으로 나무들이 많다.

15년 전 글렌데일 콘도에서 살다 학군 좋은 곳으로 이사하려고 라크라센타 지역을 매주마다 돌아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다 낡아 60년이 넘어 옆집이랑 바짝 붙어 있고 개 짖는 소리, 아이들 소리들이 적나라하게 다 들리는 그런 하우스들이었다.
가격도 비싸면서 그 정도 수준에는 못 미쳐 보여 쉽사리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부동산 에이전트가 잠시 쉬어가자며 들린 동네가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글렌데일 Hills이다. 베버리힐스만 Hills냐 싶어 우리 동네 사람끼리만 부르는 이 동네 이름인데 정말 언덕도 많고 부잣집들도 많다.
이 동네를 한번 구경하고는 그만 눈이 높아져서 다시는 라크라센타 집들이 눈에 안 들어왔다. 글렌데일 힐스는 라크라센타보다 학군이 안 좋다고 하는데도 우리는 마법에 걸린 듯 덜컥 오퍼를 넣었었다.
막상 가격이 라크라센타랑 비슷하면서 집은 더 새집이었고 평수도 큰 집이었다. 마당도 앞뒤가 널찍해서 어머님은 오퍼만 넣은 상태인데 무슨 나무들을 심을까 행복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우리 집이 되려고 그런 건지 오퍼를 넣은 다음은 모든 게 수월하게 척척 진행이 됐다.

2달 후 우리는 예전 집에서 덜렁 옷가지만 싸 오고 모든 것을 집에 맞게  배치했다.

이때가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었나 싶다.
작은 콘도에서 6 식구가 옹기종기 살다 방 4개짜리 고래등 같은 하우스로 이사오니  치과의사인 시누이들까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남편이랑 둘이 결혼해서 풀타임으로 일하며 8년을 안 먹고 안 쓰며 새집을 위해 저축했다. 물론 남편의 비즈니스가 잘 됐고 어머님이 우리 결혼을 위해 미리 준비해 주신 콘도가 3배나 올라서 이 집의 40% 씨드머니가 된 것이다.


어머님은 이사 오면서 향나무, 목련나무, 복숭아, 대추, 감나무 등등 트럭에 가득 나무들을 싣고 오셨다. 평생 마당 있는 집에 못살아본 게 한이 되셨는데 우리가 그 꿈을 이루어 드린 거였다.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집 앞마당은 어느 누구네보다 나무들이 빽빽하다. 이사 오면서 작은 나무들을 심은 거뿐이었는데 무럭무럭 옆으로 위로 자란 것이다. 남편의 친구는 한번 놀러 오더니 앞마당이 숲이 되었네 하면서 놀렸다.
처음 이사 와서 나는 시간만 나면 동네를 산책했다. 우리 집에서 2블록 위로는 라카냐다, 4블록 아래로는 파사데나, 차 타고 5분만 가면 알타 데나라는 동네가 나오는 그런 위치였다.
산책하다 보면 "여기부터는 글렌데일입니다"라는 푯말이 보이면 내 눈에는 우리 동네가 제일 길도 널찍해 보였다. 라카냐다 동네는 밤에는 가로등도 없이 캄캄하고 인도조차 없이 길이 좁았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친구들을 자주 집에 초대해서 뒷마당에서 뛰어놀았다. 생일파티, 플레이데이, 핼러윈 등등 자주 건수를 만들었고 우리 부부 교회모임, 친구들 모임으로 집을 자주 오픈했다.

이렇게 사랑한 집인데 아이들이 하나둘 자라서 집을 떠나가고 있다. 시부모님들도 운전하지 않고서는 마켓조차 갈 수 없는 우리 집이라 점점 운전하는 게 부담스러우시다.
그럼 이 집을 팔까? 방이 4개가 다 필요 없는데 작은데로 이사해서 그 남는 돈은 은퇴자금으로 저축해 놓을까?

남편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말해주지만 꼼짝도 안 한다. 아이들이 컸지만 언제고 돌아올 고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을 팔고 또 다른 것을 사야 한다면 에이전트에게 이리저리 커미션을 많이 나간다고 하면서 그냥 이 집에 살 수 있을 때까지 버텨보자고 한다.

거기다가 요즘 다른 집 집값도 너무 올라서 이거 팔고 방 3개로 옮겨봤자 모기지나 집세금은 비슷할 수도 있단다.

엊그제 동네 공원에 갔더니 놀이터를 아주 새로운 스타일로 리모델 한다고 한다. 아들이 보더니 나중에 우리 애들이 놀러 오면 좋아하겠다! 하는 거다. 이제 20대인 아들이 벌써 손주들 데리고 놀러 올 생각을 하다니.. 역시 이 집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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