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hnny Mar 12. 2019

백화점은 백 바퀴 돌아서 백화점이야

왜 직업은 쇼핑하듯이 못 고르지?

"백화점은 백 바퀴 돌아서 백화점이야. 코트 한 벌을 사도 대여섯 개는 입어봐야 하는데, 내가 갈 길을 어떻게 한 번에 딱 찾아?"


친구들과 진로 이야기를 할 때면 자주 하던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크면 무엇이 될 것인지 참 많은 질문을 받았다. 내 인생 첫 번째 장래희망의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 그리는 미술 시간이었다. 하얗게 빈 스케치북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며칠 전 TV를 보다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대화가 떠올랐다. 외국 정상과 악수를 나누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을 보고 대통령이 뭐냐고 물었고, 어머니는 미취학 아동이 이해하기 가장 쉬운 언어를 고민하다가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답하셨다. 어린 나는 `그럼 대통령은 왕 같은 거구나`라고 생각했고, 왕관을 쓰고 망토까지 두른 내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장래희망의 첫 기억은 약간은 쓰라리게 끝났는데 반의 한 남자아이가 여자가 무슨 대통령을 하냐고 큰 소리로 놀려댔고, 정체모를 당혹감에 나는 눈물까지 쏟고 말았다.


 그 뒤로, 장래 희망은 끝없이 바뀌어왔다. 교사, 의사, 변호사(여기까지는 나의 장래희망이었는지 부모님의 장래희망인지 불확실하다), 건축가, 방송   PD를 거쳐 중학생 때는 진지하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가 무엇이 될지 여전히 몰랐지만, 선택의 순간을 대비하여, 만일을 대비해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고 대입 시즌이 되어 학과를 정해야 할 때는 이미 내 앞에 있는 선택지는 꽤 좁혀져 있었다. 고 1 때 한국사 연도를 외우다가 질색하면서(한 예로, 경복궁에 전기가 들어온 것과 우정국이 생긴 것 중 무엇이 먼저인가) 이과반을 선택한 결과 문과 및 예체능 전공은 제외되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의 얕은 경험치와 내 성적에 따른 부모님 및 선생님의 기대치까지 더하니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두 번이나 담임을 하셨던 화학 선생님의 수업을 재미있게 들었던 영향으로, 결국 나는 취직도 잘 된다는 화학 공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대학 동기들과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있다. 우리 졸업식 때 한 명을 랜덤으로 골라서 입시 때 썼던 자기소개서를 읽으면 어떻겠냐고. 다들 그건 공개처형이 아니냐고 질색을 했다. 그것도 자기소개서만 보면 미래의 아인슈타인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 천지였다. 무슨 과목을 듣고.. 이러한 연구 활동을 하다가.. 의 전개로 가다가 결국 연구원 아니면 교수, 학자로 마무리되었다. 식품 기업 빙그레가 제일 싫어하는 입사 지원 동기가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간 목욕탕에서 사 먹던 바나나우유의 추억이라고 한다. 아마, 나와 다른 동기들을 뽑은 교수님들도 바나나우유의 추억 못지않게 가득 차오른 노벨 뽕을 봐 오셨겠지? 하지만 고등학생 때의 나는 학과 선택이 가장 큰 진로 결정이라 생각했고, 대학에 입학하면 그 뒤의 인생은 나름 정해진대로 순탄히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자와 결혼한 공주의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처럼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1번부터 5번 선택지 중에서 잘 고르기만 하면 되었는데, 마치 선택지가 반쯤 가려지거나 몇 개는 아예 텅 빈 시험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학년이 올라가고,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할수록 내가 모르는 선택지들이 점점 늘어갔고 시험 문제에 그 선택지들을 써넣었다가 다시 지우기를 반복했다. 연구실에서 연구하다가 나에게 학문을 업으로 삼을 만큼의 지적 호기심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관심 분야를 다루는 회사 인턴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거기서 사회의 비정함을 짧게나마 간접 경험하고, 조직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고시판까지 들어갔다가 물에 덴 개구리처럼 반년만에 황급하게 뛰쳐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6개월 차 회사원으로, 또 다른 탈출구를 찾아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있다.


 이것이 답인가! 싶어서 걸쳐 보았던 새로운 꿈과 미래들이 생각보다 나에게 들어맞지 않을 때, 가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알고 보면 내가 좀 멍청하거나 게으른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한다. 울적할 때면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밤중에 일어나서 우는 아기처럼, 대체 내가 뭘 원하고 바라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편의점 냉장고 앞에만 가도 하이네켄을 들었다가 아사히에도 손을 댔다가도 "아.. 그래도 양꼬치엔 칭다오지.."라고 선택을 바꾸게 되는데, 직업이란 중요한 것을 한 번만에 딱 고르는 것은 요즘 같은 다이내믹한 세상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보자면

, 고민을 거듭한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도전과 자기 발전에 대한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다. 회사 욕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제일 오래  다닌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욕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내 삶을 사랑하고, 아직 스스로가 충분히 젊다고 생각하기에 조금 더 선택에 있어 까탈스러운 고객으로 남고자 한다.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은 힘들다, 행복은 취미에서 찾아라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렇지만, 나 자신이 백마 탄 왕자가 되어 숲 속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는 내 업을 찾고자 하는 낭만주의를 아직까지 버릴 수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