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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Sep 06. 2024

사이에서 '춤을 추었어'(이수지 작가 북토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수지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그림책 분야에서 노벨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을 받으신 이수지 작가의 작품을 더 가까이 만나고 싶어서였다. 오후 4시에 시작된 북토크는 야외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여름의 태양빛이 남아있어서인지 파라솔 그늘에도 오후의 뜨거운 열기가 남아있었다. 아마 이수지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열정이 더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행사장에는 마르쉐에서 농산물과 좋은 먹거리 등을 팔고 있어서 더 풍성했다. 열화당과 <춤을 추었어>라는 이수지 작가의 책을 출판한 <안그라픽스> 등 출판사 부스도 있었다. 마르쉐 구경을 하거나 북토크 이후 열리는 공연을 기다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설렘과 기쁨이 베여있었다.

나도 마치 여행자가 된 것처럼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며 구경을 하다가 북토크 시간이 되어 착석을 하였다.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오신 이수지 작가님은 인사 후 <거울 속으로>라는 그림책을 실물로 먼저 보여주셨다. 이수지 작가님 그림책은 글이 없는 책들이 많은데, 아이들에게도 그림책을 보여줄 때 정보를 많이 주지 말고, 오독의 즐거움 속에서 우리는 다른 곳으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림책 <거울 속으로> 中
'한 편의 시가 하나의 의미만 전달한다면 그것은 시일 수 없다.'


라는 이문재 시인의 글을 인용하시며,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으며 여러 이야기가 생겨나고 무너지고 확장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씀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수지 작가님은 그림책을 어른과 어린이, 글과 그림, 문학과 미술 '사이'에 있는, 예술적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것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평소 당신이 그런 사이에 관심이 많고,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무언가도 고민하던 중, 그림책에 영감을 준 음악과 함께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셨단다.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x4GIOTozTWs&pp=ygUa7YyM64-E7JW8IOuGgOyekCDruYTrsJzrlJQ%3D


그 후 NFT 관련 협업 제안이 오셔서 무엇을 작업해 볼까 고민하시다가 베토벤의 악보가 마치 그림 같았던 것을 떠올리며 모리스라벨의 볼레로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을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하셨다고 했다. 그 순간


'가슴에 불이 켜졌다.'


는 비유를 하신 것도 시각적으로 그려지며 그 의미가 생생하게 와닿았다.

<춤을 추었어> 中

볼레로는 같은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고 쌓이다 무너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를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까 하다가 그 시기에 기사에서 본 뉴스의 전쟁사진에서 포탄이 공중에서 터지는 사진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보인 것을 착안하여 여러 존재들과 춤을 추던 한 아이가 전쟁을 겪는 이야기가 써졌다고 하셨다. 폭탄으로 불꽃놀이를 어떻게 표현하시다가 책에 구멍을 뚫은 점 등의 작업 과정을 들으니 그림의 의미가 더 생생하고 깊이 와닿기도 했다.

<춤을 추었어> 中

이 외에도 작가님께서는 여러 자료들과 함께 작업 과정 등을 많이 공유해 주셨는데, <춤을 추었어>라는 제목처럼, 그림책 시작 부분에 지휘봉과 음표를 들고 있던 아이는 앞서 굴러가는 음표를 따라가다 만나는 존재들과 춤을 추는데, 그 그림들을 그릴 때는 음악을 들으시며 내 마음속에 춤추는 아이를 만나셨다고 하셨다.

<춤을 추었어> 中

그림책의 시작과 끝에는 눈을 감았다 뜨는 아이의 확대된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은 아이가 꿈을 꾸었다 깨어난 걸 수도, 다시 꿈을 꾸며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씀도 매우 흥미로웠다. 작가님의 여러 그림책들에는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의 경계를 건너 다니는 아이가 자주 등장해서 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작가님의 작업 구상과 작업 과정 등을 함께 듣고 보다 보니 그림책의 의미가 보다 잘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이날치밴드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장영규 감독님께서 볼레로를 바탕으로 여러 변형과 효과음을 넣어 그림책에 꼭 맞는 음악을 만들어 QR로 삽입하신 것도 너무나 멋진 콜라보처럼 느껴졌다.


춤을 추었어 Danced Away - YouTube


모든 강의를 마친 뒤 잠깐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한 독자분께서 작가님의 에세이인 <만질 수 있는 생각>이라는 책을 읽고,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좋은 것만 주시는지, 화를 안 낼 수 있는 비결을 물어보셨다. 작가님께서는 현재 고등, 중등 두 아이를 키우는데, 본인도 당연히 아이들에게 화를 내신다며 매일 아침 싸우고 밤에 화해를 하신다는 비유를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를 가장 많이 낸다며, 화를 낸 것과 잘못한 것을 빨리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싸웠으면 오늘밤을 넘기지 말자는 원칙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역시 너무 당연한 삶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이고 이번 생에 처음 미숙한 존재들 만나 커가는 과정이며, 서로 사랑한다는 큰 전제를 인정하며, 화를 안 낼 수는 없지만 서로 화내는 것을 쌍방으로 인정하며 사랑하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 답변을 듣다가 왠지 눈과 코가 시큰해졌는데 함께 북토크에 참석해 옆자리에 앉아있었던 어린이집 엄마들도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북토크 이후에는 작가님에게 사인도 받고, 국립현대미술관 안에 있는 테라로사 카페에서 숨도 고르고, 이후에 이어진 공연도 조금 보다가 집으로 향했다.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로 살아가다 잠시 주어진 사이의 시공간이 내겐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집에 가는 내내 나는 어떤 리듬과 박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에 맞춰 나는 어떤 춤을 추고 있는지를 물어보고, 돌아보게 되었다.

<춤을 추었어> 中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선 흐르는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수년 전 지리산의 실상사에서 도법스님과 차담을 나눌 때, 도법 스님께서 내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고 물어보셔서, (당시 내가 한창 여러 춤을 추고 다녔었기에) "춤을 추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더니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춤이냐, 아니냐?"
(잠시 고민하다) "춤입니다."
"우리가 차를 마시는 것은 춤이냐, 아니냐?"
"춤입니다."


등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나눈 뒤, 문을 열고 밖에 나갔을 때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와 풀들,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 빗질을 하는 사람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 등 온 존재가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있다면, 그 노래와 춤이 계속되기를... 그 노래와 춤이 모두를 더 행복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춤을 추었어> 中 '모두 춤을 추었어'



작가님께서

'한때는 어린이었던 어른들이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보자.'


라고 하셨던 말씀이 검은 밤을 밝히는 보름달처럼 선명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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