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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스쿨 Nov 01. 2024

결혼기념일과 퐁듀

9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했다. 어느새 부쩍 자란 아이들은 빨래를 개거나 집안일을 하고 받은 용돈으로 축하케이크를 사주었고, 그림에 더해 축하공연까지 해주었다.

평소에 잘 안 먹는 음식을 먹어보려고 스위스식당에서 퐁듀 등을 먹었는데 금방 질려서 다 먹기가 힘들었다.

특별한 날, 특별한 음식이 아니어도 매일 따스한 밥을 차려 먹고, 비가 새지 않는 집에서 자고,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사는 일상 속에 이미 축복이 가득했다.

며칠 전 한 지인이 내게 요즘은 명상 안 하냐고, 어떤 수행을 하냐고 물어봤다. 그 말에 나의 매일을 돌아보게 되었다.

요즘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와 앉아 숨을 고르며 기도를 한다. 매일 아침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신랑을 따라 가능한 성경을 한 장씩 읽고, 좋은 말씀 구절은 서로 나눈다.

그 후에는 아침을 차리고 집을 나선 뒤 학교나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가능한 밝은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한다.(잘 안 되는 날엔 기도를 더 많이 하거나 달콤한 짜이를 마신다.)

아이들과의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더 많이 웃으려 한다. 아이들이 웃을 때 내 영혼도 피어난다. 나로 인해 하루에 한 명이라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퇴근해서는 짧게 낮잠을 한숨 자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냉장고 재료들과 조화를 맞춰 저녁을 차린다. 야채를 다듬어, 썰고, 미역을 불리고, 뜨거운 국을 끓이고, 생선이나 고기를 구우며 이를 전해준 자연과 존재들에게 감사한다.

저녁을 먹기 전후로는 운동을 다녀와서 다 같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과 오목을 두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어주다 잠든다. 이러한 하루 일과 중 틈틈이 글을 쓰며 일상을 기록하고 소화시킨다.

매일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정성스럽게 살아내는 일, 그 반복 속에서 깊어지는 리듬 안에서 때로는 요동치는 마음의 중심을 잡는 일, 그것이 지금의 내게 가장 큰 수행이 아닐 수 없다.

어젯밤엔 저녁을 다 같이 목욕탕을 다녀왔는데, 신랑이 아이와 함께 목욕하고 떼를 밀어주며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와 목욕탕에서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마치 시간이 그대로 이동해 그때의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고, 공허함을 채우는 충만한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내 마음도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몇 번의 내외부적인 고난과 갈등 후에 찾아온 일상 속 평화가 더욱 소중하다. 더 단단한 가족이 될 수 있게 지켜주신 많은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이처럼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매일 사랑으로 가슴을 채우며, 넘쳐나는 행복을 잘 전하는 그런 삶을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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