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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바댁 린다 May 20. 2023

엄마 생신 선물은 딸기 두 알이었다

오랜만에 집이 북적북적해졌다.

둘이서만 있어도 깔깔 호호 옥상으로 왔다 갔다 하느라 분주했지만, 북적북적은 가끔 있는 일이었다. 이번 엄마 생신을 우리 집에서 하기로 해서 온 가족이 모이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빠들은 온 적이 있지만 이사 온 집에 엄마의 방문은 처음이라 남편은 살짝 긴장이 되었는지 전 날 늦은 밤까지 기다란 청소 막대기를 들고 온 집안을 구석구석 닦아대었고 정리의 여왕답게 나는 남편이 닦아낸 온 집을 깔끔히 정리하였다.


서울 시내 전망이 한눈에 보이는 앞이 확 트인 옥상이 멋들어진 집이라 그곳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싶었는데 전 날부터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저녁을 집 안에서 먹을지 옥상에서 먹을지 결정은 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 조카를 픽업하고 남편이 아침마다 해 주는 떠먹는 당근 사과 주스(정확히 말하면 주스는 아니고 당근과 사과를 믹서기에 갈아서 컵에 담아놓은 것)와 삶은 달걀을 함께 먹었다. 남편의 당근 사과 주스는 나의 최애 아침식사인데 조카에게는 그리 맛있지는 않았는지 많이 남겨서 맘이 쬐금 아팠다. 그래도 내가 만든 햄버거 패티에 복도에서 갓 따온 상추를 넣어 만든 햄버거는 맛있다며 금세 다 먹어서 다행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는지, 어느새 둘째 오빠와 조카가 엄마를 모시고 도착했다. 오르막길이 매력인 우리 동네는 평지 아파트에만 오래 사신 엄마에게는 놀라울 정도의 난이도라, "아이고, 나는 여기 두 번 다시 못 오겠데이." 라고 말씀하셨지만, 현관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오시고는 그 말씀이 무색해져 버렸다. 우리 집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남편은 집에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을 좋아하는데, 나에게 가장 소중한 엄마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는지 양손을 비비며 물어보았다.


"자기, 어머니가 뭐라고 하셔? 우리 집 맘에 드신대?"

"응, 엄마가 우리 집 아주 좋대."


그제야 남편은 긴장이 약간 풀렸는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함박 웃었고 집 내부 구경을 마친 엄마를 옥상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사 오고 얼마 후 다이소에 다녀온 남편이 적상추, 얼갈이, 방울토마토, 새싹, 해바라기, 메리골드, 꽃양귀비 등의 씨앗을 사 와서는 집주인이 옥상 창고에 숨겨둔 종이컵들을 찾아서 심었더랬다. 아직은 추울 때라 해가 잘 드는 거실에 종이컵들을 놓아두자 싹이 하나씩 올라오는데 눈만 뜨면 늘은 싹이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레는지! 며칠 후에 남편은 다이소에 다시 가서 딸기, 대파, 양상추, 비트, 당근을 사 왔고 또 다른 종이컵과 플라스틱 재활용 용기에 잘 심어 두었다. 쿠바에서도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고는 정성껏 가꾸었는데, 싹은 나고 자라났지만 해풍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열매 맺는 데에는 실패를 해서 마음이 아팠었다. 그때와 달리  이곳에서는 초록이들이 다 들 얼마나 쑥쑥 잘 자는지 볼 때마다 기특하고 대견했다.


딸기를 아주 좋아하는 남편은 딸기 씨앗을 애지중지 키웠는데 다른 식물들에 비해서 잘 자라지 않아 아쉬워하는 걸 보고는 딸기 모종 하나를 주문해 보았다. 모종이 아주 튼튼해서 얼마 후에 하얀 꽃이 피더니 어느 날 딸기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딸기 농장에 가 본 적은 있었지만, 딸기 잎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못하기에 딸기 꽃이 어찌 생겼는지 당연히 몰랐는데  어쩜, 작고 하이얀 꽃이 이토록 고귀해 보이는지.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하이얀 꽃이 지고 나니 열매가 맺히는데, 투명한 색에 참깨 같은 씨앗들이 박혀있다가 점점 빨간색을 띠는 걸 보며 매일매일 기뻐했더랬다. 그러다 새빨간 딸기로 완벽한 자태를 갖춘 모습을 보았을 때, 남편도 나도 너무 예뻐서 이걸 과연 먹을 수 있을까 하며 따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계속 두면 썩어버릴 테니, 어느 날 남편이 가위를 가져와 과감히 자르고는 작은 접시에 올린 후 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짠 하고는 각자 입으로 넣었는데, 작은 딸기가 새콤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작은 딸기의 반이었지만 그 기쁨은 지금까지 먹었던 어떤 딸기보다 맛있었고, 크나큰 행복이었다.


그렇게 세 번을 따서 먹었는데, 이번에는 2개의 딸기 열매가 동시에 열려서 새빨갛게 맺혀 있었다. 옥상 구경을 다하고 내려오신 엄마께 딸기 화분을 보여드리자 엄마가 '딸기도 있냐'며 놀라셨다. 남편이 가위를 가져와서 딸기 커팅식을 하고 엄마께 딸기 두 알을 드렸다.


엄마 생신 선물은 우리가 키운 딸기 두 알이었다.


작은 텃밭을 매일 아침 가꾸시는 엄마는 우리의 그 기쁨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말도 안 통하는 하나뿐인 까만 사위가 "어머니, 생신 축하해요!"라고 하며 드리는 작고 빨간 딸기 두 알을 생일 선물로 받고는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인지 하하하 하며 웃으시더니 반을 나누어 조카랑 오빠랑 나누어 드셨다. 그러고는 "아우, 맛있어 새콤달콤. 정성들여  해 놓은 걸 먹으니 아주 맛있네."라고 말씀하셔서 딸기를 선물 한 남편의 눈은 반짝반짝, 얼굴에는 감동이 한가득인 게 보였다.

남편의 딸기 두 알 선물에, "이게 뭐고?"라고 하지 않으시고, 진심으로 좋아하시며 남편 장단에 잘 맞춰 주신 엄마가 어찌나 고맙던지. 역시 엄마가 최고다!


딸기 두 알을 선물한 후 저녁에는 다행히 비가 그쳐 결국 옥상에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캠핑 전문가인 둘째 오빠가 불을 피운 후 고기를 굽고 남편과 내가 정성껏 키운 상추, 양상추 그리고 얼갈이 잎을 엄마가 한껏 수확하셨다. 집에서 이렇게 잘 키웠냐며 수확하시면서도 엄마가 놀라시길래 남편이 식물을 너무 잘 키운다며 남편 어깨에 뽕을 한껏 올려주었다. 우리가 키운 유기농 상추에 야들야들 맛있게 굽힌 고기 한 점을 올리고 엄마가 견과류까지 넣어서 정성껏 만들어 오신 쌈장까지 올려주면 세찬 비바람 따위는 물러날 수 없는 그런 맛이 한 잎 가득히 채워졌다. 술을 못하시는 엄마가 얼마나 행복하셨는지 소주를 세 잔이나 마시고는 노래도 한 곡 뽑으셨다. 일 때문에 늦게 온 올케가 너무나 이쁜 케이크를 사 와서 또 감동하신 엄마는 그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이셨다. 자식, 손주들이 모두 함께 모여 즐거워하는 모습이 엄마에게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행복이리라. 부디 내 년에도 그리고 내 후년에도 엄마가 이토록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이어지길.


엄마의 맘껏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본 남편이 엄마가 떠나신 후 가슴에 손을 얹더니 벅차다는 듯이 말했다.


"자기,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아주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봐서 너무 기쁘고 감동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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