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춥진 않지만 그래도 추운, 지금의 날씨엔 항상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 두어 개의 간절기 겉옷이 있긴 하지만 스타일이 애매하다.
어제는 춥다고 하길래 허리가 들어간 두껍지 않은 패딩을 입었는데, 신발이 망했다. 그 패딩에는 이상하게도 부츠컷 바지만 어울린다. 목과 소매 끝에는 까만 밍크가 달려있고 소매 끝으로 가면서 풍선처럼 살짝 부푸는 형태의 옷이다. 내가 산 옷은 아니고 엄마 친구분이 작아서 못 입는 다고 주신 로베르토 까발리 옷이다. (명품이라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받았다. )
이 패딩을 입으면 부티가 난다. 하지만 살짝 내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느낌도 있다. 코디를 잘못하면 내가 생각하는 한 끗 차이의 아줌마 패션이 될 것만 같다. 아줌마 패션이라고 명명하기는 싫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을 때까진 이 단어가 필요하다.
어쨌든 그 패딩에 청바지를 입고 반스 운동화를 신으면 나름 좋았다. 세련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 운동화가 낡아서 사망했다는 거다. 어제는 아무리 신발장을 봐도 신을 만한 신발이 없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얼마 전에 새로 구매한 까만 스니커즈를 신을 수밖에 없었는데,, 분명 그 신발은 예뻤고 어디에나 신어도 내가 완성되어 보였다. 최소 오 년은 신으려고 얼마 전에 슈콤마보니에서 신중하게 구매했다. 부츠컷 청바지를 운동화에 신으면 뒷부분은 끌리지 않으면서 앞에서 보면 살짝 오그라들어 보이는 길이가 나에겐 최적이다. 분명 반스는 그랬다.
아마도 이 신발은 자체 굽이 있어 내가 생각한 모습은 나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 나갈 시간이다. 일단 후다닥 나와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의 문에 비친 내 모습을 슬쩍 보면서 길을 재촉했다. 아차 싶었다. 여기에 이 신발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색이 문제 같다. 그리고 신발에 벨벳 리본이 달려 있어서 디자인이 여성스러운 이 패딩과는 더더욱 안 어울렸다. 망했다. 빨리 집에 가서 착장을 벗어야지.
마침 어제 반차인 청설모를 아이 학교에서 만났다. 우리는 아이를 학원에 내려준 뒤 집으로 왔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둘이 섰는데, 그의 신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침에 나갈 때 윗부분만 봐서 신발을 미처 못 보았던 터라 한숨이 나왔다.
신발이 그게 뭐야. 그 옷에 왜 그걸 신고 나갔어?
내 말이. 왜 안 봐줬어? 미치겠어 지금.
근데 나도 신발 이상해.
몰랐어? 나 아까 보고 놀랐잖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 오늘은 저 패딩을 입을 수 없다.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 카키색의 반코트가 있으니 그걸 입기로 한다. 근데 이 코트는 가방 선택이 어렵다. 앞부분을 여미는 단추나 벨트가 없어 크로스백을 메야 앞 마무새가 정돈이 된다. 여기에는 내가 겨울마다 즐겨 드는 토즈 블랙 짧은 크로스 백을 메야 완성이 된다. 오늘은 지인의 전시장에 방문할 예정이라 짐이 있는데 이 가방에 다 넣을 수 있을지 고민이다. 가면서 읽고 싶은 책도 있는데 들어갈지 모르겠다.
어쨌든 가방은 바꿀 수 없다. 여기에 들어가는 책으로 바꾸자. 작가님께 드릴 선물은 작은 쇼핑백에 넣자. 작은 쇼핑백이 없다. 시간이 없다. 가방에 들어가나 봐야겠다. 들어간다. 지갑이랑 핸드폰을 빼면.
됐다. 나가자. 선물을 드리고 나면 지갑을 가방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오늘은 통바지에 예쁜 양말을 신었다. 어제 신었던 까만 스니커즈를 신고 거울을 보니 이제 되었다.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