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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링 Nov 29. 2021

가방에 책을 맞추다


아주 춥진 않지만 그래도 추운, 지금의 날씨엔 항상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 두어 개의 간절기 겉옷이 있긴 하지만 스타일이 애매하다.​


어제는 춥다고 하길래 허리가 들어간 두껍지 않은 패딩을 입었는데, 신발이 망했다.  패딩에는 이상하게도 부츠컷 바지만 어울린다. 목과 소매 끝에는 까만 밍크가 달려있고 소매 끝으로 가면서 풍선처럼 살짝 부푸는 형태의 옷이다. 내가  옷은 아니고 엄마 친구분이 작아서 못 입는 다고 주신 로베르토 까발리 옷이다. (명품이라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받았다. )

이 패딩을 입으면 부티가 난다. 하지만 살짝 내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느낌도 있다. 코디를 잘못하면 내가 생각하는 한 끗 차이의 아줌마 패션이 될 것만 같다. 아줌마 패션이라고 명명하기는 싫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을 때까진 이 단어가 필요하다.

어쨌든  패딩에 청바지를 입고 반스 운동화를 신으면 나름 좋았다. 세련된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운동화가 낡아서 사망했다는 거다. 어제는 아무리 신발장을 봐도 신을 만한 신발이 없었다. 확신은 없었지만 얼마 전에 새로 구매한 까만 스니커즈를 신을 수밖에 없었는데,, 분명  신발은 예뻤고 어디에나 신어도 내가 완성되어 보였다. 최소 오 년은 신으려고 얼마 전에 슈콤마보니에서 신중하게 구매했다.  부츠컷 청바지를 운동화에 신으면 뒷부분은 끌리지 않으면서 앞에서 보면 살짝 오그라들어 보이는 길이가 나에겐 최적이다. 분명 반스는 그랬다. ​


아마도  신발은 자체 굽이 있어 내가 생각한 모습은 나오지 않을 거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 나갈 시간이다. 일단 후다닥 나와서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의 문에 비친  모습을 슬쩍 보면서 길을 재촉했다. 아차 싶었다. 여기에  신발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색이 문제 같다. 그리고 신발에 벨벳 리본이 달려 있어서 디자인이 여성스러운  패딩과는 더더욱 안 어울렸다. 망했다. 빨리 집에 가서 착장을 벗어야지.​


마침 어제 반차인 청설모를 아이 학교에서 만났다. 우리는 아이를 학원에 내려준 뒤 집으로 왔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둘이 섰는데, 그의 신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침에 나갈 때 윗부분만 봐서 신발을 미처 못 보았던 터라 한숨이 나왔다.


신발이 그게 뭐야. 그 옷에 왜 그걸 신고 나갔어?


내 말이. 왜 안 봐줬어? 미치겠어 지금.


근데 나도 신발 이상해.


몰랐어? 나 아까 보고 놀랐잖아.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그러니 오늘은 저 패딩을 입을 수 없다.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 카키색의 반코트가 있으니 그걸 입기로 한다. 근데 이 코트는 가방 선택이 어렵다. 앞부분을 여미는 단추나 벨트가 없어 크로스백을 메야 앞 마무새가 정돈이 된다. 여기에는 내가 겨울마다 즐겨 드는 토즈 블랙 짧은 크로스 백을 메야 완성이 된다. 오늘은 지인의 전시장에 방문할 예정이라 짐이 있는데  이 가방에 다 넣을 수 있을지 고민이다. 가면서 읽고 싶은 책도 있는데 들어갈지 모르겠다.

어쨌든 가방은 바꿀 수 없다.  여기에 들어가는 책으로 바꾸자. 작가님께 드릴 선물은 작은 쇼핑백에 넣자. 작은 쇼핑백이 없다. 시간이 없다. 가방에 들어가나 봐야겠다. 들어간다. 지갑이랑 핸드폰을 빼면.

됐다. 나가자. 선물을 드리고 나면 지갑을 가방에 넣을 수 있을 거다. 오늘은 통바지에 예쁜 양말을 신었다. 어제 신었던 까만 스니커즈를 신고 거울을 보니 이제 되었다.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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