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시간 숏폼 중독자, 디지털 단식을 해봤더니.
디지털 단식 1일 차 도전, 휴대폰을 차에 두고 왔다.
그놈의 디지털 단식, 한번 실패해서 두 번째 도전이다.
휴대폰을 망치로 부숴야 내가 정신 차릴까.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차에 두고 내렸다.
차에서 내리는데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찾았다.
집에 오니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은 뭐지.
원래는 바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봤어야 하는데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마음이 붕 떴다.
마치 연인과 헤어져야 할 사이인데
미련이 남아 못 헤어지고 있다가 결단을 내려 끝을 낸 느낌이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중이다.
안 하던 짓을 했다.
24시간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나에게 없다니.
시간이 남아도는 느낌이 들어 뭔가 해야 할 것 같았다.
업무 책상에 옆에 쓰레기 비닐봉지만 두었는데 쓰레기통을 비치하기로 했다.
마침 창고에 방치됐던 먼지 쌓인 쓰레기통을 찾아 깨끗하게 닦았다.
급하지 않지만 언젠가 해야 할 일을 지금 끝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이제 무엇을 할까 찾아보다가 고객을 위한 VOD를 촬영을 끝냈다.
3주간 언젠가 해야지 하고 미루었던 일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한량처럼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약간 웅크린 자세로 숏폼을 봤을 텐데 말이다.
휴대폰 없이 밤 산책을 나갔다.
밤바다를 보러 나갔다. 자주 걸었던 길이 꽤나 낯설게 느껴진다.
예전이었으면 휴대폰을 중간중간 확인하며 걸었던 길이었는데
그놈의 휴대폰 하나 없어졌다고 이렇게 낯설기 있나.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인다.
산책하는 사람들, 바다, 밤하늘, 조형물들을 관찰하게 된다.
특히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져서 좋았다.
시골에 있으면 고요해서 좋지만 종종 바글바글한 사람들의 온기가 반가울 때가 있다.
술집 앞에서 담배 피우는 청년들,
그 맞은편에서 휴대폰을 보고 기다리는 대리기사님들,
공원 탁자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수다 떠는 여중생들,
오붓하게 손잡고 바다를 걷는 노부부,
바다에서 폭죽을 터트리며 사진 찍는 연인들,
그리고 삶의 변화를 위해 바다를 걷는 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의 이유로 이곳을 걷고 있다.
영일대의 밤하늘은 이렇게 다채로운 이야기로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미쳤다. 자기 전에 책을 읽었다.
샤워하고 나오면 침대에 누워 휴대폰 본다.
그렇게 새벽 1,2시에 자는 버릇이 생겼고 종종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오늘은 휴대폰이 없으니 이상할 정도로 허전하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멈춰진 느낌이다.
우리의 뇌는 늘 자극적인 도파민을 원한다.
원래는 유튜브를 봐야 하는데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으니
뇌에서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몇 년의 자극을 갑자기 멈췄으니 나의 뇌도 이제 뭔가 싶겠다.
그래서 공허한 느낌을 계속 받나 보다.
바로 잠은 안 와서 책을 읽었다.
침대 옆에 늘 책 2, 3권씩 쌓아두기만 하고 몇 개월째 읽지 않았던 책이다.
마침내 침대 옆에 두었던 책을 펼쳤다.
기적이다. 내가 자기 전에 책을 읽고 자다니.
예전엔 새벽까지 유튜브를 보다가 머리가 흐리멍덩하고
눈이 뻑적지근한 상태에서 잠이 들었는데 오늘은 뿌듯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머리가 맑아진 건 모르겠지만 심리적으로 뇌가 정화된 것 같은 기분이다.
하루뿐이었는데 성취감이 엄청나다.
나는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하루 만에 업무 생산성이 급격하게 늘었다.
다음에 해야지 하며 늘 미뤘던 나인데
고작 휴대폰 하루 안 봤다고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사실 우리는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게으른 사람은 없다.
그저 에너지가 고갈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온종일 일을 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하는데
그 시간마저 휴대폰을 보고 있으니 우리의 뇌는 쉴 수 있을까.
만약 공장의 기계가 끊임없이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점차 가열돼서 폭발할 것이다. 또는 고장 나서 제 기능을 발휘 못하겠지.
이처럼 우리의 뇌는 매일 가열되어 있는 상황이다.
고작 휴대폰 하나 때문에 말이다.
나는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루 종일 유튜브를 보고 나서 스스로 자책하고 죄책감 빠지곤 했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것 같아 죄인이 된 기분이랄까.
이젠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 대충 살고 있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모두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놈의 휴대폰 때문에 뇌가 늘 과부하에 걸려있어서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 됐을 뿐이다.
에너지가 없으니 계속 회피하고 미루니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만 휴대폰을 단식하면 알 수 있다.
와.. 내가 생각보다 부지런한 사람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