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17
오고야 말았다.
매년 한 번씩 내가 징징거리는 글을 쓰는 그날. 바로 죽음의 스케일링을 하는 날이다.
나는 치과가 참 싫다. 비명, 고통 그리고 뜻밖의 큰 지출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곳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아마, 모두들 어른이라, 사회적 체면이 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티 안내는 거겠지. 다들 치과 가기 전 날부터 나처럼 전전긍긍할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_
나는 치아가 약한 편이다. 나의 약한 치아는 친가, 외가의 유전인데, 그래서 우리 아부지는 나이 60세에 대부분의 이를 임플란트로 교체하셨다. 그래서 사실상 입 안은 인간이 아닌 기계라 볼 수 있다. 어머니는 어느 래퍼처럼 웃을 때 입안이 번쩍번쩍한데, 입 속 어금니가 대부분 금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혹시 남미 여행을 하게 된다면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입 속이 금광인걸 그 동네 질 나쁜 친구들에게 걸리면 표적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도 치과와의 악연이 깊다. 내 치아 구석구석 치과 선생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금니도 서너 곳. 아말감도 서너 곳. 크라운도 서너 곳. 신경 치료받은 곳도 몇 군데 있다. 그래서 앞니를 제외하고는 이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었다. 내 치아는 다양한 재질과 모양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먼 훗날, 미래 사람들이 2000년대 한국 치과 기술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어, 역사적 사료로써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게다가 사랑니. 그 이쁜 이름이 무색하게, 오로지 인간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데 제 일생을 헌신하는 사랑니의 저주도 정통으로 받았다. (사랑니라는 이름보다는 지옥니, 악마니, 혹은 지옥에서 돌아온 공포와 죽음의 이빨 정도가 더 맞는 이름이 아닌가 싶다.) 나는 사랑니가 날 수 있는 모든 방향에서 사랑니가 다 났다. 게다가 그 녀석들은 반쯤만 머리를 내보인 매복 사랑니이거나 혹은 가로로 자라는 사랑니. 그리고 이가 잘 썩는 집안의 저주까지 겹쳐, 나는 사랑니로 고생을 진탕 했다.
여하튼 이런 끔찍한 이유로 치과를 싫어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기에 자주 가야 한다. 오랜만에 치과를 찾으면 그간 쌓인 업보로 인해 신경치료라는 악마의 고문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치아와 주변 사람들의 코를 위해서도 정기적으로 악마의 스케일링도 받아야 한다.
_
이번에 받는 스케일링도 너무나 아팠다. 받기 전부터 직감했다. ‘오늘은 나의 기일이 되겠군.’ 그래서 입 안에 이빨을 갈아내는 흉기가 들어가기 전,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친절한 간호사분이 마취제도 주고, “가장 약하게 할게요.”라고 약속해도 주었다. 그럼에도 너무 아팠다. (아마 풀파워로 했다면, 방년 31세로 인생 하직했을 것이다.) 손에 손톱자국이 나도록 꼭 꼬집었고, 다리는 꼭 인두로 지져는 것 마냥 부들부들 떨었다. 아니 인두로 지져지는 것과 같았다. 마음만은 우리 기지가 어딘지 불고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지만, 불 기지도 없고, 이 고통은 모든 치석을 제거하거나, 내가 졸도하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평소에 부지런히 한 양치질과 치실이 빛을 발했다는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치석이 별로 없다는 말과 치아 관리를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소 치과에 가면 흉측한 이빨 모형과 화장실 청소 때나 쓸 법한 큰 칫솔로 양치질 수업을 10분은 받아야 했다. 물론, 혼쭐이 나면서.) 하지만 약이 있으면, 벌도 있는 법. 하나 남은 마지막 사랑니도 썩어서 발치가 필요하다고 하신다. 제발 지구 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