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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Nov 14. 2021

나는 다이소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211114

벌써 5만 원째.


이번 달에만 다이소에 쓴 돈이 5만 원이 넘어간다. 내가 한 달에 쓰는 생활비가 50만 원 살짝 넘어가니, 내 소비 인생이 일정 부분 다이소에 저당 잡혔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다이소에 이렇게 돈을 쓰려고 한 게 아니었다. 이건 다 교묘한 [다이소 소비 패턴]에 당한 탓이다. 처음에는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주방세제라던가, 건전지라던가. 일종의 다이소용 물건이 똑 떨어져서 천 원짜리 이천 원짜리 생활용품을 사러 가는 것이 그 악랄한 함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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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다이소는 정감 있는 쪼끄만 동네 1000원 샵이었는데, 요즘 다이소는 명예 백화점이다. 그래서 외형부터 1km 밖에서도 ’나 다이소다’라고 드러나도록, 거대한 3층짜리 건물 전체가 시허연 시트지로 돌돌 말려 있다. 그리고 형광등 100개를 켠 듯한 다이소 특유의 시허연 아우라도 가지고 있다. 다이소는 얼마나 돈이 많길래 시내 거대한 건물 하나를 통째로 다이소로 쓰는 걸까 매번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튼 요즘 다이소는 내 방 수만 배 크기의 대우주. 나는 이천 원짜리 주방세제를 찾으러 우주복 하나 없이 맨몸으로 이 우주 속을 유영해야 한다. 그 와중 내가 사려는 건 주위를 기울이지 않으면 찾기 힘든 우주 소립자. 그렇기에 미리 리스트업 한 물건들 하나하나 찾으려면 높은 집중력과 관찰력이 요구된다.


그렇게 겨우겨우 물건을 담다 보면, 꼭 옆에 시선을 사로잡는 물건들이 있다. 쓸모없지만 흥미로운, 예컨대, 계란에서 노른자를 간편하게 분리해주는 상품이라던가, 자동으로 사과를 깎아주는 기계 같은 거다. 그렇게 한눈팔기 시작하면 우주 대유쾌 유영이 시작된 거다.


어느새 정신 차리면 어린이용 사이즈 파이프 렌치와 운동용 저강도 라텍스 밴드를 양손에 들고 내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최고급 유기농 고양이 사료의 성분을 구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시간이 30분쯤 지났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렇게 허겁지겁 다이소에 2만 원을 헌납하고 나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빼먹고 안 사 온 물건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린다. 그렇게 다음 주에 또 다이소로 향하고, 이 사이클이 벌써 한 달 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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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예상할 수 있는 것에는 재미란 없다.’


요즘 나의 삶에 재미가 고갈된 것도, 그리고 취미생활이 다이소 구경이 된 것도 다 이 말로 설명 가능한 듯싶다. 자본주의의 미노타우르스 미로인 다이소는 항상 예상하지 못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출구가 찾기 힘든 미로지만, 값싼 새로운 물건들로 인해 출구를 찾고 싶지도 않아진다.

그에 비에 나의 삶은 두 달치 미리 쓰는 여름방학 일기 같다. 안 살아봐도 훤하게 꿰고 있다. 월화수목금 일하고, 토일 아무것도 안 하고. 다 예상할 수 있는 나의 삶에서는 재미란 우주에서 바늘 찾기다. 요즘 재미없어 죽겠다.


다이소에서 길 헤매듯이 못 살까? 파이프 렌치 옆 고양이 모래처럼. 한 발자국도 예상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싶다. 내일도 이따 오후에 다이소나 들러서 저번에 깜빡하고 못 산 수세미나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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