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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찬재 Mar 13. 2019

오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75세에 그리기 시작한 그림으로 세계를 감동시킨 노부부 이야기

산다는 것이 힘들고, 괴롭고, 피곤한 것의 연속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아름다웠더라. 할아버지는 여태 그걸 몰랐는데 별들이 가르쳐주었어.
ⓒ 이찬재

들어가며

2015년 1월 딸네를 보내고 멍하니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을 아버지가 걱정된 건 멀리 떨어져 사는 아들이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말했다. “아버지, 그림을 그리세요.” 어릴 적 아버지가 엽서에 그림을 그려 보내주었던 걸 기억해낸 것이다. 하지만 세월 따라 어느덧 완고해진 아버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별소리! 안 하던 그림은 무슨!” 그러나 인스타그램이란 걸 알게 된 나는 아들과 연합했고, 남편이 일상의 이것저것을 하나씩 그리면, 나는 그것을 매일 올리는 일을 시작했다.

수개월 후, 아들은 일흔 살이 넘은 노인네가 왜, 어떻게 인스타그램을 하게 되었는지를 아주 간단한 영상으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 중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 이르면 나도 울컥해지고 만다. 


손자 보러 뉴욕에 온 아버지가 어느 날 저녁 식사하며 문득 묻는다. 

“우리 아스트로가 커서 이담에 어떻게 될까?”

“그건 왜요?”

“그때쯤엔 내가 이 세상에 없을 거 아니냐?”

아들은 순간 멍해졌다고 한다. 비로소 부모의 연로함과 내일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손자들이 장성했을 때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알게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버지께 손자들을 위해 그림 그리기를 제안했다고. 마침내 아버지는 동의했고, 손자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들이 만든 영상은 빠르게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가닿았고, ‘좋아요’는 몇백만에 이르렀다. 인스타그램의 이름을 ‘drawings_for_my_grandchildren’, 손자들을 위한 그림들이라 했고, 할머니인 내가 그림의 이야기를 쓰면 아들이 영어로, 딸이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주었다. 그림 사인은 For AAA. 손주들 이름인 알뚤Arthur, 알란Allan. 아스트로(아로)Astro의 첫 글자를 땄다. 어디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신통하게도 그 후 누구의 조력 없이 그림을 그려 사진을 찍고, 보정해 올리고, 공유하고, 댓글을 읽는 모든 과정을 해냈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를 많이 썼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어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노인들이 하는 일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고 하루만 안 해도 아리송해지는 게 컴퓨터나 휴대폰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영상이 BBC 기자의 눈에 띄어 기사화되면서 ‘손자들을 위해 그리는 할아버지의 그림들’은 유명해졌다.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옛 제자나 동문들이 연락해올 땐 참 신기했다. 전 세계에서 보내온 댓글들은 언제나 우리 가족을 감동시킨다.


한국말도 한글도 익숙하지 않은 채로 한국에 간 두 손자는 한국 생활을 좋아했다. 얼마나 놀랍고 고마웠던지……. 급식도 잘 먹고 자기들끼리 학교를 갔고 친구들과 공원에서 갖가지 운동도 즐겼다. 다만 한 가지. “할머니 할아버지 빨리 오세요.”

그래서 우리 내외는 2017년 10월 말, 36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한국은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젊은이들의 키가 커졌고, 미세먼지를 조심하라는 경보가 휴대폰에 울리는 놀라운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늘 그랬듯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고 오늘처럼 내일도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겠지.



작가 소개

ⓒ 불교신문

이찬재 그림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과를 졸업해 지학과 교사로 일했다. 브라질 이민 후 의류제품사를 운영했다. 코스타리카 산호세, 브라질 썽빠울로, 서울 브라질 대사관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안경자 글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 교사로 일했다. 브라질 이민 후 8년간 썽빠울로 한국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귀국 전까지 국제학교 한국문학 교사로 일했다.


두 사람은 스물여섯의 나이로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고, 1981년 브라질 썽빠울로로 이민을 갔다. 2015년부터 한국으로 돌아간 두 외손주를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 내외의 편지는 순식간에 전 세계 사람의 마음에 가닿았다. BBC, NBC, 《가디언》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의 뜨거운 관심과 극찬이 이어졌고, 현재까지 전 세계 35만 인스타그램 구독자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손주들의 부름에 36년간의 긴 브라질 생활을 접고 2017년 10월, 한국으로 영주 귀국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이찬재 그림, 안경자 글

도서 자세히 보기: https://goo.gl/AsGV5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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