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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 Valerie Jul 13. 2019

나는 창업을 했다, 돌잔치 다음날!

정부지원금 3천만 원을 투자받다.

 브런치를 시작해 글을 한두 편 써나가며 다시 삶의 의욕을 찾기 시작했다. 어쩌면 글을 쓰며 세상에 나갈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인생의 '다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아이가 내 삶에 찾아왔고 나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던 나는 혹 하나를 더 달게 됐다. 준비되지 않았을 때가 가장 준비됐을 때란 걸 깨달았지만 그래도 아이를 가졌을 때가 세상 살아가며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였음은 분명하다.


정신 못 차리고 있던 그때, 나는 나 스스로와 약속을 했다.


'딱 돌잔치 때까지 만이야. 그때까지만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세상에 나가자!'


아이의 첫 번째 생일, '돌잔치'는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였다. '1년,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을 거야'란 위로 아닌 위로를 하며 조금씩 세상에 나갈 준비를 차근차근해 온 것 같다. 그렇다고 집에서 24시간 육아에만 매달린 건 아니다. 100일이 지나고 2시간부터 시작해 3시간...4시간...돌봄 선생님께 맡기는 시간을 점차 늘려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디 갈 때는 딱히 없었다. 10분 거리의 집 앞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두드리며 이것저것 할 거리들을 찾았던 것 같다. 얼마나 그 카페에서 커피를 많이 시켜 먹었던지 요즘은 그때 모아둔 쿠폰으로 무료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를 않는다. 돈이 굳어 좋다가도 내가 얼마나 이곳에 돈을 쏟아부었으면... 이란 씁쓸함도 함께 밀려온다...






 2017년, 남편과 함께 창업했던 온라인 서비스는 미련 없이 접고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구상하던 중 '어디 가지'란 프로젝트를 잠시 진행한 적이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어려움 중 하나가 매년 축제를 크게 열지만 모객 하는 데에 힘들어한단 사실이었고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갈지 고민하는 가족들에게 지자체에서 열리는 좋은 축제, 행사들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운영해보면 어떨까란 논의가 잠시 있었다. 하지만 진행 단계에서 스톱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생각보다 사업범위가 너무 넓었고 지금 있는 수익사업을 진행하기도 벅찬 작은 팀에서 서비스를 구축할 인력도, 에너지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이를 낳고 나름 집콕 생활 1년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매일 그리고 매주 하는 고질적인 고민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 가지?'란 질문이란 걸 몸소 느끼게 됐다. 나부터도 이런 답답함을 해소시켜줄 서비스가 없단 사실이 너무 불편한데....라고 생각하다 몇 년 전 진행했던 '어디 가지'프로젝트 파일을 열어보았고, 그 '어디 가지' 프로젝트가 여러 공정을 거쳐 '헤이키도'란 우리 동네, 우리 아이를 위한 원데이 클래스 예약 서비스로 완성되게 됐다.


이제 아이디어는 다듬어졌는데 창업할 머니$$$가 필요했다. 지난번 3F(Family, Friend, Fool) Money, 엄밀히 말하면 남편, (당시에는 남친. 매번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사업 망했는데 헤어지면 지구 끝까지 쫒아 올까 봐 결혼해 애까지 낳아줬다고...ㅎㅎㅎ) 돈으로 시작했다 한번 말아먹고 나니 이제 창업은 내 돈으로 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생겨버려 정부에서 창업지원금을 대거 푸는 시기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아들 돌잔치가 12월 말이니 한두 달 정도 준비하고 3월 쯔음부터 공고가 나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지원해야 지란 rough 한 계획을 가지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갔다.


모든지 그렇지만 한 번에 되는 일은 없다. 뭔가 반전이 있어야 인생도 살 맛 나듯 말이다.


오히려 안정빵으로 넣었던 서류들이 1차 통과도 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하루하루 진이 빠져갔다. 말이 서류 작업이지 매번 다른 양식에 그 틀에 맞는 글들을 써내려 가려니 죽을 맛이었다. 점점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돼 갔지만 금년에 진행 못하면 끝이다란 생각으로 끝까지 스퍼트를 올렸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한국관광공사에서 진행한 예비 관광벤처 공모전에 몇 안 되는 아이디어만 가진 팀으로 선정됐다. 지원금 3천만 원 (그 안에는 자부담 몇 %, 선지출 후 지급 등등 복잡하지만.. 어찌 됐든 창업자금은 받은 거니.. 만족한다!)을 펀딩 받았다!





최종적으로 5분 PT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디데이 3일 전, 남편이 "대형사고"를 치는 바람에 일도, 결혼생활? 까지도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너무 괴로운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멈추면 더 괴로워질 거란 사실을 알기에 힘든 몸과 마음을 다스려가며 초집중해 당일날 12장짜리 PPT를 5분 안에 1초도 안 남기고 PT를 끝마치는 진기록?을 세웠다. (5분안에 끝내지 않으면 감점이란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들었을만큼 중요했다!)


정말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라도 한다고... 이틀 동안 하두 울어 눈이 안 떠 질정도로 퉁퉁 부어 있던 내가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나중에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PT 하러 가는 당일 관광공사 로비에 나보다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공동창업자 친구 덕이였다.


 참 신기한 건 내가 뭔가를 너무도 간절히 원하면 그게 잘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몇 번 좌절을 겪으며 몸에 들어갔던 힘이 풀리면서 ‘아이씨 될 대로 되라고'란 마인드로 세상에 결정을 맡겨버리는 순간 나에겐 마음의 여유와 자유가 찾아온다. 그렇게 되면 그 일들은 또 이상하게 원하는 대로 된다. 관광공사건도 그랬다.


몇 주간의 전쟁 같은 시간을 지나 남편의 '내가 죽을죄를 지었오. 원하는 건 다해주겠소.' 저자세에 마음이 누그러져 평화 협정을 치르러 운치 좋은 카페에 앉아 절대 남편 사전에는 있을 수 없는 만원 넘는 커피를 시키고 앉아 있는데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나보다 먼저 곁눈질로 '축하'단어 하나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 쳐주는 남편의 축하를 받은 그 날, 난 인생의 몇 번 남지 않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찍었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다. 지난 몇주간은 어린이집을 입소한 아들 적응시키고 육아하며 일을 해내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글을 쓰며 힐링도 하며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정리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불과 몇일 전부터 아들이 제법 어린이집도 적응해가고 시작한 일도 조금씩 윤곽이 잡혀가고 있단 생각에, 지난 3개월간의 시간들을 정리해 보고자 돌아왔다.


삶은 살아가다 분기별로 잠시 멈춰 정리할 시간, Closure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되는 것 같다.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의 제대로 된 방향성을 찾기 위해, 걸어온 삶에서 얻은 지혜로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주변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고 표시하기 위해서 말이다.


Great to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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