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J Valerie Jan 06. 2022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2020년을 돌아보며

코로나19로 페인이 된 남편을 바라본 ex임산부가 쓰는 2020년 회고록


2020년 1월 15일 코로나19의 국내 상륙 직전 둘째 임신 소식으로 이미 멘붕 상태였던 난, 몇 번의 멘붕 사태가 2020년 날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정신을 차리고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2019년 연말 남편 회사는 창업이래 최고 매출을 찍어 많이 들떠있던 상태였다. ‘이렇게만 계속 쭈욱 가면 되겠구나’란 희망으로 가득 찼고, 이제 남편 회사가 안정을 찾았으니 내 일에 더 집중해 나아갈 수 있을 거란 안도감도 잠시, 둘째 임신과 듣도보도 못한 코로나19가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남편의 회사는 억대 매출을 찍고 내 배가 불어 나는 속도를 추월해 더욱더 빠르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너무도 괴로웠던 기억이었기에 기억 속에 지웠지만, 아마 출산 때까지 매출은 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나마 재작년 벌어놨던 수익으로 버텨갈 수 있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던 스타트업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오프라인 클래스를 예약받는 플랫폼이었기에 잠시 서비스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나부터도 코로나가 무서워 아이를 데리고 어딜 나가지를 않는데 계속 서비스를 운영하는 게 맞는지? 에 대한 의문도 있었고, 임신 상태에서 사무실을 계속 나가는 것도 부담이 됐다. 잠시 재택으로 일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앞으로 이 사업을 계속 이끌고 가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사업은 차치하고 코로나로 사업이 말 그대로 박살난 남편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마도 한두 달간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이참에 좀 쉬어가자로 버텼다면 점점 이 사태가 길어지고 더더욱 희망이 보이지 않자 그의 방황의 시간도 길어지고 있었다.


주택에 살고 있는 우리 집 옆에는 서재 같은 “작업실”이라 부르는 작은 공간이 있다. 집에서 업무를 볼 때나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 가지고 싶을 때 도피하는 곳이기도 하다.


1월부터 일이 ‘뚝’ 끊긴 남편은 그곳에 자신의 동굴을 만들어버렸다. 비주얼 터지는 빠방 한 모니터 세팅에 그립감 좋은 마우스, 맛깔난 타입 감의 타자기. 그리곤 아이들이 잠든 밤부터 사이버 친구들과 사이버상에 집합해 축구 게임을 시작했다. 나와 큰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그제야 쾡해진 눈으로 집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 페인 생활을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힘든 마음을 이해하기에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남편이 반강제적으로 쉴 수 있게 휴식 시간을 신이 만들어주신 거라며 인내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이 아니고 부처가 아니기에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페인 생활 3달 정도 뒤에는 밤에 맛난 음식 준비하며 면담을 했던 것 같다. 그 힘든 마음은 알겠는데, 이럴 때일수록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앞으로 사업을 이 상황에 어떻게 적응시켜 나갈지 공부하고 고민하는 시간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해보고 조언도 해보고 애원도 했던 것 같다. 배불뚝이인 내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느끼는 게 있겠지란 마음으로 더 부지런히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하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게임에 더욱 빠져 가는 모습에 인내심이 한계에 달았던 어느 날, 목숨과 같았던 키보드를 옷장 깊숙이 숨겨버렸다. 키보드가 어딨냐며 소리치는 그에게 “지금 내일모레 애가 태어날 건데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보면 우리 가족이 누굴 믿고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며 울부짖어 보기도 했던 너무도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덤덤하게 말할 수 있지만, 그때의 고통은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힘들었던 시간들이다. 어린이집을 못 가는 첫째와 뱃속의 아기,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 그리고 방황하는 남편까지 너무도 버거웠던 시간들이다. 그래서 더욱더 집착에 가깝게 변화하는 세상을 공부하고 공부해 갔다. 집안의 기둥이 지금 잠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나라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버텨야 된단 일념 하나로 버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둘째는 무럭무럭 자라 돌이 됐고, 남편은 코로나로 새로운 기회를 맞아 회사가 성장해 사무실 확장 이전 준비를 앞두고 있다(2021년 12월 이전 완료). 그리고 2019년 창업했던 헤이키도는 지독한 공부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 중에 있다.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는 그 말을 믿으며 버텼던 시간들,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이야기를 글로 쓰며 치유받고 다시 영감을 얻어 달려 나가던 내 삶의 선순환이 끊겨 버렸던 지난 2년이지만, 다시 그 순환을 시작해 보려 한다. 힘듦의 깊이만큼이나 성장했고 풀어낼 이야기들이 많기에 기대되는 2022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